경찰, 국과원에 당시 속도, 제동장치 작동 여부 등 감식 의뢰
민식이법 적용 여부 검토하지만 전문가는 "적용 어려울 수도"
부산 스쿨존에서 발생한 어린이 교통 사망사고와 관련해 경찰이 원인 규명에 주력하고 있다.

부산 해운대경찰서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차량 블랙박스 영상 분석과 사고 당시 차량 속도, 브레이크 제동 여부 등 감식을 의뢰했다고 16일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국과수 감식과 함께 조만간 사고 관련 차량 운전자 조사도 추가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고는 전날인 15일 오후 3시 32분께 부산 해운대구 한 초등학교 앞 스쿨존에서 발생했다.

여섯살인 유치원생 A양은 당시 엄마, 언니와 함께 스쿨존 보행로를 걷다 보행로 난간을 뚫고 돌진한 승용차에 들이받혀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러나 의식불명 상태로 치료받다가 사고 다음 날인 16일 오전 2시 41분 병원에서 숨졌다.

사고 지점은 초등학교 정문에서 불과 10m 떨어진 어린이 보호구역이었다.

엄마는 경상을 입고, 언니는 화를 면했다.

경찰에 따르면 사고 지점에서 20m 떨어진 곳에서 중앙선을 넘어 좌회전하던 SUV가 직진하던 승용차 옆을 들이받았다.

이후 중심을 잃은 피해 승용차가 내리막길을 따라 갑자기 가속했고, 초등학교 정문 앞 보행로를 걸어가던 모녀를 덮친 것으로 전해졌다.

두 차량 운전자는 사고 직후 경찰 1차 조사를 받았다.

SUV 운전자는 승용차와 발생한 접촉사고 과실은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승용차 운전자는 '접촉사고 이후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사고는 올해 3월 25일부터 시행된 '민식이법' 이후 부산지역 첫 스쿨존 사망 사례다.

민식이법은 스쿨존 내 안전운전 의무를 위반해 사망이나 상해 사고를 일으킨 운전자를 가중처벌하는 것을 골자로 한 개정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등을 일컫는다.

경찰 관계자는 "이번 사고는 스쿨존에서 발생한 것이기에 민식이법 적용 여부를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통사고 전문 한문철 변호사는 "민식이법 적용은 아주 어려운 문제"라고 설명했다.

한 변호사는 차 대 차 사고에 따라 발생한 중앙선 침범이나 보도 침범 사고는 인정하지 않은 대법원 판례에 따라 민식이법 적용이 어렵다는 결론이 나올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그러나 경찰과 검찰이 조사 과정에서 어린이 보호를 더 중요시하면 민식이법을 적용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 변호사는 "(민식이법 적용 여부를 떠나) 의식불명에 빠졌다가 숨진 아이와 그걸 지켜본 엄마와 언니 트라우마가 있다"며 "이번 사고를 계기로 '단순한 교통사고는 실수'라거나 '보험으로 처리하면 돼'라는 생각은 잘못됐다는 것과 교통사고는 범죄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고 원인 규명과 민식이법 적용 여부에 관심이 쏠리는 가운데 스쿨존 시설 개선에 대한 의견도 나온다.

당시 영상을 보면 접촉사고를 당한 승용차가 내리막길을 내려와 모녀를 덮치는데 도로와 보행로 사이에 설치된 철제 난간이 아무런 완충 작용을 하지 못하고 순식간에 파손됐다.

경찰 관계자는 "지지력이 강력한 난간을 설치했더라면 차량을 튕겨낼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스쿨존 보행로 주변에 설치된 여러 현수막도 지적된다.

모녀가 사고를 당한 지점 난간과 그 난간 위에는 코로나19와 관련한 '생활 속 거리두기' 실천 등을 당부하는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A양 자매와 같은 어린이들은 성인보다 키가 작아 현수막에 가려지게 된다.

사고 현장과 같은 T자형 내리막 도로에서는 차량이 초등학교 방향으로 직진하다가 좌회전이나 우회전을 하게 되는데 현수막에 시야가 가려 그 너머에 있는 보행자를 제대로 발견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해운대구 관계자는 "스쿨존에 설치된 난간은 관련 규정에 따른 것"이라며 "앞으로 스쿨존에는 현수막을 게시를 지양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