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 칼럼] '공정경제' 제대로 해보자
세상에서 말이 안 되는 것 같은 일이 벌어지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속사정을 제대로 아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잘못된 걸 바로잡을 수 있다. 그렇게 하지 않고 야유와 비난만 퍼붓는 건 감정 배설을 넘어 사회적 소모일 뿐이다. 요즘 기업 노사관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도 그런 관점을 갖고 짚어볼 때가 됐다.

한국경제신문에 얼마 전 보도된 <적자 뻔한데…월급 올려달라는 르노삼성 노조> 기사와 <현대·기아차 온라인 판매…한국만 빠졌다> 기사에는 “대기업 노동조합이 억지를 부린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르노삼성자동차 노조가 올해 큰 적자가 예상되는 터에 임금 5% 인상을 요구하기로 했고,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가 미국 유럽 등 해외에 구축하기로 한 비대면(非對面) 판매 플랫폼을 정작 국내에서는 노조 반대에 부딪혀 엄두도 못 내고 있다는 내용이다.

두 사례가 최근 발생한 것이어서 예로 들었을 뿐, 기업들이 노조 몽니를 호소하는 일이 허다하다. 특정 제품이 아무리 잘 팔려도 노조에 발목이 잡혀 추가 생산이 불가능하고, 임금·단체협상 과정에서 노조가 파업 장기화 등 극단적 행동에 나서더라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는 등의 하소연이 끊이지 않는다. 그런데 노조에 “이런 억지는 잘못된 것이니 자제하라”고 요구한다고 해서 받아들여질까. 이제까지 그런 지적이 수없이 되풀이돼 왔지만 달라진 게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세상을 움직이는 건 무기력한 호소가 아니라 제도와 그에 따라 작동하는 인센티브이기 때문이다.

노조는 조합원들의 이익을 최대한 얻어내는 게 존재이유다. 조합원들의 투표를 통해 선출되는 노조 집행부에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지지 기반을 지키고 확장하는 일이다. 대형 사업장 노조에는 적어도 서너 개, 많게는 10개 가까운 파벌이 경쟁한다. 위원장과 대의원을 뽑는 선거 때마다 조합원들을 솔깃하게 하는 공약을 내걸고 치열하게 다툰다. 선거를 치를수록 노조 각 진영이 내거는 ‘쟁취목록’이 늘어나는 건 당연하다. 대기업 노조들이 ‘철밥통’ 비판에도 아랑곳 않고 기득권 장벽을 갈수록 쌓아 올려 나가는 배경이다.

노조 간부들이라고 해서 “언제까지 이래도 되는 건가”에 대한 고민이 없을 리 없다. 회사가 지속적으로 성장해야 좋은 일자리를 지켜낼 수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강성 노동운동의 본산으로 통하는 민주노총 산하 전국금속노조는 지난해 ‘미래형 자동차 발전 동향과 노조의 대응’이라는 272쪽 분량의 보고서를 내놓고 현대자동차 등 사측과 공동포럼을 진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노조 운동가들에게 조합원 선거에서 선택받는 것보다 중요한 건 없다. 노조가 억지를 부려도 통할 수 없도록 제도를 바꾸지 않는 한, 그 이상을 기대할 수는 없다.

“이래선 안 되는데…”를 속으로 되뇌면서도 강성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는 노조 운동가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도록 돕는 일이 시급하다. 어려운 일도 아니다. 노사 간 어느 한쪽이 독주할 수 없도록 상호견제장치를 작동시키면 된다. 노조의 막무가내 파업을 막는 확실한 방법은 사측으로 하여금 파업기간에도 조업을 이어갈 수 있게끔 대체근로자를 투입할 길을 터주는 것이다.

한국보다 오랜 노동운동과 노사갈등·진통의 경험을 쌓은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등 선진국이 대체근로 허용을 통해 노사 간 진정한 대화·상생의 발판을 마련한 데는 이유가 있다. 그런데도 한국만 이 장치를 봉쇄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노동운동의 대부’를 책임자로 앉혀 노사 대타협을 호소하고 있지만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공정경제’를 내세워 오히려 노조에 더 힘을 실어주는 쪽으로 속도를 내고 있다. 해고근로자도 노조에 가입할 수 있게 해 투쟁력을 더 키워주겠다는 게 그런 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기업인들을 불러 “정부와 기업이 한 배를 타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다”며 “함께 으쌰으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위기상황을 타개해나가기 위한 노사 합의와 사회적 대타협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그런 방향으로 갈 수 있게끔 말이 아니라 제도 환경을 살피고 필요한 조치를 내놓는 게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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