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우 눈물 본 재판부, 피해자들의 '피눈물'도 봐야 한다 [남정민 기자의 서초동 일지]
세계 최대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의 운영자 손정우는 지난 16일 베이지색 수의를 입은 채 법정에 나왔습니다. 이날 재판부는 손씨에 대한 범죄인 인도 청구와 관련해 그를 미국으로 보내 처벌받도록 할지 말지를 다투는 두 번째 심문기일을 열었습니다. 관심이 큰 사건인 만큼 법원은 본법정 외 두 개의 법정을 더 열어 재판 과정을 생중계했습니다.

손정우는 심문에 관해 전반적인 입장을 말해달라는 재판부의 요청에 “한국에서 재판 받을 수 있다면 그 어떠한 중형이라도 달게 받고 싶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변호인과 검찰 간 치열한 다툼이 있은 뒤 마지막으로 하고싶은 말을 하라는 재판부의 요청에도 같은 취지의 답을 했습니다.

실제 6월 16일 법정 발언
▶재판부 : 범죄인, 재판부에 마지막으로 하고싶은 말 있나요?
▶손정우 : 제 철없는 잘못으로 사회에 큰 심려를 끼친 점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납득하지 못할 정도로 용서받기 어려운 잘못을 한 것을 잘 알고 있어 송구스럽니다. (울먹) 제 자신 스스로도 부끄럽고 염치가 없지만 대한민국에서 다시 처벌받을 수 있다면 어떠한 중형이라도 다시 받고 싶습니다.
그…이렇게 제가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는데 (울먹) 그동안 어리석게…컴퓨터로 게임하면서 하루하루 허비했는데 정말 다르게 살고 싶습니다. 아버지와도 많은 시간 못 보냈고…정말 죄송합니다.

손정우는 마지막 발언을 하는 내내 울먹이면서 코를 훌쩍였습니다. 손으로 눈물을 닦기도 했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손씨 아버지도 눈물을 훔쳤습니다. 재판부도 사람이다보니 손씨가 울기 시작하자 조금은 먹먹한 표정을 지어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손정우의 눈물 뒤에는 수많은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의 피눈물이 있다는 점을 잊을 순 없습니다. 법정에 직접 출석하지 못했다 해서 피해자들의 이야기와 그들의 눈물이 간과돼선 안 됩니다.
손정우 눈물 본 재판부, 피해자들의 '피눈물'도 봐야 한다 [남정민 기자의 서초동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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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재판의 당사자는 어디까지나 ‘피고인’과 ‘검사’입니다. 피해자는 재판의 당사자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법정에 직접 출석할 의무가 없습니다. 출석하고 싶다 하더라도 피고인과 직접 마주봐야 하는 등 심리적 부담이 있어 법정에 직접 나와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따라서 법정에서는 주로 ‘피고인의 목소리’가 들리곤 합니다. 물론 검사가 있긴 하지만 검사는 어디까지나 공소유지를 담당하고 소송행위를 수행하는 역할을 할 뿐, 피해자의 목소리를 직접 전달하진 않습니다. 피해자 측 변호사가 법정에 나올 수도 있지만 흔한 경우는 아닙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법조계서는 “판사들이 당장 눈 앞에 있는 피고인에게 감정 이입을 하면 안 된다”, “피해자의 이야기를 ‘기록’으로만 보면 안 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한 재경지법의 판사는 “특히 형사 재판 때 법관들이 ‘내가 한번 선처해주면 앞으로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앞날이 창창한데 내가 한번 선처해주면 달라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라며 “그 생각만으로 선고를 내리진 않지만 피고인의 반성하는 모습이나 최후진술 등이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할 수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그래서 잘 산다면 좋겠지만 이후 재범자가 돼 다시 돌아오기도 한다”며 “그땐 이미 늦은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피해자가 재판 과정에서 직접 본인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법적 근거들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헌법 제 27조 제 5항은 ‘형사피해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당해 사건의 재판절차에서 진술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형사소송법 제 294조의 2는 ‘법원은 범죄로 인한 피해자 또는 그 법정대리인의 신청이 있는 때에는 그 피해자 등을 증인으로 신문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피해자가 실제로 법정에 나와 피고인을 마주한다는 게 쉽지 않다는 게 법조계 대다수의 분석입니다. 그래서 피해자의 대부분은 ‘서면’으로 본인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재판부는 그 기록으로 피해자들을 만나게 됩니다.
손정우 눈물 본 재판부, 피해자들의 '피눈물'도 봐야 한다 [남정민 기자의 서초동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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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손정우로 돌아오면, 손씨는 2015~2018년 약 3년동안 ‘다크웹’을 통해 세계 최대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를 운영했습니다. 인터넷 암시장이라고도 불리는 다크웹은 특정 브라우저로만 들어갈 수 있는 비밀 웹 사이트입니다. 손씨는 그곳에서 아동 성착취물 22만건을 유통했습니다.

영상 중엔 생후 6개월 된 아기가 나오는 성착취물도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손씨는 해당 혐의와 관련해 아동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복역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국내 법원에서 처벌받은 범죄 혐의 외 ‘국제자금세탁’ 부분에 대해선 미국측으로부터 범죄인 인도가 청구된 상태입니다.

손씨는 한국에서 처벌받는다면 어떤 처벌이든 달게 받겠다며 국내에 있게 해달라고 울먹였습니다. 그러면서도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자신의 ‘마지막’,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는 모양새였습니다. 손씨 아버지는 ‘아빠 입장에서는 불쌍한 마음이 든다’, ‘불쌍한 아들 마지막에라도 살리고 싶은 심정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수많은 피해자들의 아버지들은 지금 과연 어떤 심정일까요.

피고인의 눈물 뒤에는 피해자들의 피눈물이 있습니다. 재판부가 이를 단순히 ‘사건 기록’으로만 판단하는 과오를 범하진 않았으면 합니다.

손씨의 미국 송환 여부는 다음달 6일 결정됩니다.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