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에 물이 빠지고 나면 누가 수영복도 안 입고 물놀이를 했는지 드러나죠. 현재 증권사 등 비은행권이 꼭 그런 상황입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사진)은 17일 한경 밀레니엄포럼에서 “코로나19 이후 금융시장에 또다시 위기가 찾아온다면 비은행 금융회사가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며 이같이 말했다.

은 위원장의 발언은 지난 3월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팬데믹) 직후 금융시장에서 발생한 혼란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당시 유로스톡스50 등 해외 주요 지수가 급락하자 국내 증권사들이 주가연계증권(ELS) 위험 회피를 위해 사놓은 파생상품에서 하루 최대 수조원에 이르는 마진콜(증거금 추가 납입 통지)이 쏟아졌다. 증권사들이 증거금 납입을 위해 보유 자산을 급히 내다 팔고 외화를 사들이는 과정에서 단기자금시장과 외환시장은 큰 혼란을 겪었다. 증권사의 유동성 리스크가 금융시장 전체를 뒤흔드는 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될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워준 계기였다.

은행권은 과거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등을 거치며 위기 대응능력이 비교적 탄탄해졌지만 비은행권은 아직 그렇지 못하다는 게 은 위원장의 진단이다. 그는 “이번에 증권사의 콜차입(금융회사 간 초단기 자금시장에서 신용만으로 돈을 빌리는 것) 한도를 일시적으로 확대하는 등 규제를 조금 풀어줬다”며 “취약점이 분명 드러난 만큼 증권사들이 얼마나 준비태세를 갖췄는지 점검할 것”이라고 말했다.

관가에서 은 위원장은 경제위기 때마다 국내외 금융정책 최일선에서 일해온 관료로 꼽힌다. 그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재정경제원 금융정책과와 청와대 구조조정기획단에서 공적자금 조성 실무를 맡았다. 2011년 유럽 재정위기 땐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장으로 일본·중국과 통화스와프를 체결하고 ‘거시건전성 3종 세트(외환건전성 부담금, 선물환 포지션 한도, 외국인 채권투자 과세)’를 마련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은 위원장은 현재의 위기 상황에 대해 “예측하지 못한 일이 발생하는 ‘블랙스완’을 넘어선 ‘네온스완’에 직면해 있다”고 평가했다. 스스로 빛을 내는 백조라는 의미의 네온스완은 절대로 발생 불가능한 상황을 지칭한다. 그러면서 은 위원장은 “당면한 위기 상황에 대응하는 데 그치지 않고 향후 10년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아 금융정책이 나아갈 길을 고민하겠다”고 덧붙였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