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석 ‘슈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 ‘한국은행 민주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에 노동자 자영업자 등 계층을 대변하는 위원 몫을 할당해 이들의 이해관계를 통화·금융안정 정책에 반영하자는 제안이다. 한은이 금통위에서 특정 계층의 정치적 입김을 받게 된다면 중앙은행으로서의 중립성이 훼손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17일 정치권에 따르면 최배근 전 더불어시민당 대표는 전날 민주당 당내 모임인 ‘경제민주화와 평화통일을 위한 국민연대’(민평련) 주최로 국회에서 열린 전문가 초청 간담회에서 “한은 금통위 의사결정 구조가 사회 대다수의 그것(의견)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더불어시민당은 지난 4·15 총선 과정에서 창당한 민주당의 비례대표 선거용 ‘위성 정당’으로, 총선이 끝난 뒤 지난달 민주당과 합당했다.

최 전 대표는 “우리 경제에서 가장 공정하지 않은 분야가 금융”이라며 “금융이 굉장히 기울어진 운동장인데도 한은이 너무 역할을 안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금통위 구성을 문제 삼았다. 그는 “금통위 위원 일곱 명 중 한 명은 전국은행연합회, 한 명은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추천한다”며 “소비자·노동자·자영업자·청년을 대변하는 위원은 한 명도 없다”고 말했다.

최 전 대표는 금통위 구성 전환을 통한 ‘계급적인 정책 결정’을 주장했다. 그는 “한은이 돈을 마구 찍어서 물가가 100배 상승했다고 하면 돈 100억원 가진 사람은 돈의 실질가치가 1억원으로 줄지만 돈이 없는 사람은 피해가 없다”며 “한은이 물가 안정만 신경쓰지 말고 돈 없는 사람이 돈을 확보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평련은 고(故) 김근태 상임고문 계열의 민주당 당내 모임으로, 당권 주자인 우원식 의원이 대표로 있다. 이날 간담회에는 우 의원 외에 대권 잠룡인 이낙연 의원, 이인영 전 원내대표 등도 참석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이날 간담회가 끝난 뒤 ‘한은·금융 민주화’를 잇따라 공개적으로 거론했다. 설훈 의원은 간담회 당일 SNS에 “기울어진 운동장인 금융의 민주화 등 과제가 많다”며 “국회에서 제도 개혁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우원식 의원은 SNS에 “물가안정을 넘어 고용창출과 자영업·중소기업 부담 완화를 위한 금리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경제계는 이 같은 민주당의 기류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은은 행정부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독립이 돼야 한다”며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통화·금융안정 정책에 특정 계층의 이해관계를 반영시키자는 건 통화정책도 정치 논리로 가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