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형규 칼럼] '오병이어 기적' 이루겠다는 정치인들
기독교 신자가 아닌 이들이 가장 낯설어하는 성서 속 기적이 ‘오병이어(五餠二魚)’가 아닐까 싶다. 오병이어 기적이 4대 복음서에 모두 등장하는 걸 보면 실제 일화로 보인다. 예수가 갈릴리 언덕에 모인 5000명을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배불리 먹이고도 남은 음식이 열두 광주리를 가득 채웠다는 내용이다.

기독교인은 이를 예수의 전지전능과 신성(神性)의 증거로 믿는다. 반면 비신자들은 음식이 하늘에서 떨어질 리 없으니 믿기 힘들다고 본다. 종교와 현실 가능성 사이에 접점이 안 보인다. “믿으면 보인다”와 “보여야 믿겠다”의 차이다.

요즘 정치권에서 뜨거운 기본소득 논란에서도 종교적 이적을 대하는 신자와 비신자 간 관점 차이 같은 게 엿보인다. 정치가 종교화하면서 기본소득을 증세와 기존 복지 축소 없이 줄 수 있다는 호언장담에도 ‘믿습니다’가 적지 않다. 반면 사회주의 배급제나 다를 바 없다는 극단의 반론까지 논쟁 스펙트럼은 알파에서 오메가까지다.

연초만 해도 낯설던 기본소득이 일상어가 된 데는 코로나 사태와 전 국민 긴급재난지원금이 결정적이었다. 국민의 99.5%가 받았고, “받아보니 좋더라”는 반응이다. 세금을 내기만 했지 돌려받은 적이 거의 없는 중산층이 더 환호한다. 그러니 대선 잠룡들은 빠짐없이 기본소득 논란에 한 다리 걸치고 있다.

하지만 어느 나라, 어떤 정치인이든 구세주를 자처한다면 포퓰리스트일 확률이 100%다. 수백조원 재원 문제는 함구한 채 ‘모두에게 조건 없이 현금을 주겠다’는 것은 몽상가이거나 사기꾼 중에 하나일 것이다. 기본소득을 기존 복지에 얹어주는 보편복지이고, 빈곤 문제를 풀 만병통치약인 양 주장하려면 먼저 보편증세를 이끌어내야 한다. 자신의 정치 명운을 걸고 부가가치세율 인상에 앞장설 정치인이 과연 있기나 할까.

기본소득을 줄 돈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1982년부터 유일하게 기본소득을 매년 지급(올해 1인당 992달러)하는 미국 알래스카주는 석유라는 화수분이 있다. 월 30만원씩 줘도 연간 200조원이 드는 판에, 무슨 돈으로 줄지부터 답해야 한다. 국민도 25%대인 국민부담률을 유럽 선진국처럼 두 배로 높일 의향이 없다면 헛물켜지 않는 게 속 편하다.

미국 워싱턴포스트가 10여 년 전 독자 응모를 받아 선정한 신조어로 ‘intaxication’이 있다. ‘tax(세금)+ intoxication(도취, 중독)’의 합성어로 사전에도 올랐다. ‘세금을 환급받을 것이란 생각에 기분 좋은 상태’란 뜻이다. 물론 그 기쁨은 본인이 낸 돈임을 깨닫기 직전까지다. 기본소득이 ‘세금 왕창 더 내고 받는 돈’이면 반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소득 상위 10~20%에 자식은 미국 유학 보내놓고 ‘1 대 99’를 외치며 약자에게 묻어가려는 강남 좌파들도 반대할 듯싶다.

더욱 참담한 것은 청년과 어린이, 태어나지도 않은 미래세대다. 취업도 막막한데 취업한들 평생 세금·사회보험료 부담에 허리가 휠 세대다. 게다가 정부는 파탄날 게 뻔한 국민연금 개혁을 차기 정권으로 떠넘겼다. 청년세대 앞날에는 진짜 ‘헬조선’이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이런 기성세대의 음모를 진작에 간파한 청년들은 빨리 큰돈 벌어 돈에서 해방되는 소위 ‘경제적 자유’를 꿈꾼다. 비트코인, 동학개미, 원유파생상품 등 고위험 투자의 주역이 2030이고, 이미 결혼파업·출산파업으로 저항하고 있지 않은가.

다시 오병이어로 돌아가보자. 일군의 신학자들은 오병이어의 믿음과 현실 가능성 사이에서 교집합을 찾아냈다. 상상해보라. 2000년 전 먼 길을 걸어서 예수를 찾아온 이들이라면 적어도 며칠 동안 자기가 먹을 것은 챙겨오지 않았을까. 예수는 그런 군중이 마음을 열고 각자 감춰둔 음식을 꺼내 함께 나누게 했다는 것이다. 그 설득의 도구가 어린아이가 내민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란 얘기다. 정진석 추기경도 “꽁꽁 닫힌 사람들의 마음을 연 게 바로 기적”이라고 했다.

전 국민 기본소득은 ‘전 국민 연대감’이란 유토피아에서나 있을 법한 환상이다. 사사건건 갈라져 대립하고 충돌하는 나라에선 기본소득 논쟁을 벌이는 것 자체가 소모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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