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훈 본부장, 전격 방미…사실상 '특사' 역할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사진)이 1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를 전격 방문했다. 북한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고 군사행동을 예고하는 등 남북관계가 악화일로를 걷는 상황에서 미국과의 협의를 통해 반전의 계기를 만들지 주목된다.

이 본부장은 이날 낮 워싱턴DC 인근 덜레스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이 본부장의 워싱턴DC 방문은 지난 1월 이후 5개월여 만이다. 그는 방문 목적 등을 묻자 “지금 말하면 안 됩니다” “죄송합니다”고 답할 뿐, 말을 아꼈다.

이 본부장의 이번 방미 일정은 최근 남북관계가 급속도로 악화되기 이전부터 조율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가 급속도로 경색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방미가 이뤄진 만큼 사실상 ‘특사’로서 미국을 방문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는 이를 부인했지만, 북한의 폭로로 드러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서훈 국가정보원장 대북특사와 마찬가지로 미국에도 상황 타개를 위한 특사를 보낸 것 아니냐는 관측이다. 그간 외교부는 이 본부장의 방미 사실을 취재진에 알려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 본부장이 미국행 비행기를 타고 한국을 출발한 이후에도 확인해주지 않았다.

이 본부장의 미국 체류 일정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워싱턴DC에서 며칠간 머물며 백악관과 국무부 인사 등을 두루 접촉할 것으로 예상된다. 외교부에 따르면 이 본부장은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를 겸직하는 자신의 카운터파트인 스티븐 비건 국무부 부장관과 만날 계획이다. 북한의 대남 압박 의도를 비롯한 한반도 정세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대북 공조 및 대응책을 조율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대북 제재로 인해 손발이 묶여 있는 남북경협과 관련한 진전된 조율이 이뤄질지 관심이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문제 삼았던 한·미 간 북핵 협상 협의체인 ‘한미워킹그룹’에 대해서도 논의가 오갈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북제재 완화와 같은 반전의 계기는 만들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 교수는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대북(對北) 외교에서 정치적 리스크를 감수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며 “대북제재는 미국 국내법과도 얽혀 있기 때문에 단기간 내에 완화하기는 쉽지 않다”고 전망했다.

한편 북한의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과 관영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의 주요 매체들은 이날 오전 보도에서 전날 우리 정부의 강경 대응 방침에 대해 별도의 언급을 하지 않았다.

임락근 기자 rkl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