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디지털세 도입을 위한 국제적 협상을 일방적으로 중단했다. 또 유럽연합(EU) 등이 이를 강행할 경우 보복하겠다고 경고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유럽 국가들이 디지털세를 강행하고 미국은 보복관세로 맞대응하면 무역갈등이 격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WSJ 등에 따르면 17일(현지시간)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사진)은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4개국 재무장관에게 편지를 보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등 더 중요한 사안이 쌓여 있는 상황에서 디지털세와 같이 까다로운 이슈를 협상할 입장이 아니다”며 협상 중단을 선언했다. 므누신 장관은 “이르면 올 하반기 협상을 재개할 수 있을 것”이라며 “협상을 통하지 않은 일방적 디지털세 도입은 보복을 부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프랑스 재무부는 편지를 받은 사실을 확인하면서 4개국이 공동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디지털세는 구글, 애플, 페이스북 등 온라인·모바일 플랫폼 기업이 자국 내에서 올리는 디지털 매출에 매기는 세금이다. 법인세와는 별도다. 과세 대상이 대부분 미국 기업이어서 미국 정부는 디지털세 도입에 반대해왔다. 하지만 프랑스는 지난해 7월 법을 통과시킨 뒤 과세를 강행했다. 영국 이탈리아 등도 뒤를 따랐다. 이에 미국은 작년 12월 무역법 301조를 적용해 보복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압박했다. 양측은 지난 1월 1년간 휴전하기로 합의했으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를 중심으로 과세 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협상을 벌여왔다.

WSJ는 “협상이 연내 타결을 목표로 진행돼 왔으나 진전은 크지 않았다”며 “코로나19에 따른 경제난으로 유럽국가의 세수는 줄어든 반면 미국 기술기업의 수익은 늘어나면서 협상이 더욱 꼬인 상태”라고 설명했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도 이날 하원에서 기술기업에 대한 과세를 중단하지 않으면 보복관세를 매길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EU와의 긴장은 여전하다”며 “궁극적으로 합의를 도출해야 하겠지만 단기적으로는 상황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