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이야기] 디지털 전환을 위한 '신호'와 '소음'의 분리
‘동학개미운동’이 한창이다. 코로나19 대감염 사태로 주가가 폭락하자 ‘개미’라고 불리는 개인투자자가 쌈짓돈을 들고 주식을 매입하기 시작했다. 1894년 반봉건·반침략을 가치로 내걸고 일어난 농민들의 사회개혁운동인 동학농민운동에 빗댄 반기관·반외인 운동인 것이다. 외국인이 쏟아낸 20조원이 넘는 매도 물량을 개인투자자가 받아냈다. 수익률도 높다. 지난 3월 19일 이후 6월 5일까지 개인투자자가 사들인 코스피 10개 종목의 수익률은 66.5%에 달한다.

값비싼 대가의 근시안적 경영

동학개미운동의 진정한 의미는 개미들의 대량 매입이라는 점에 있지 않다. 무엇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매수’라는 점에 있다. 단기적인 소음에 연연하지 말고 코로나19를 계기로 바겐세일이 시작된 가치 있는 주식을 장기간 보유한다면 노후 보장이 가능한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근시안적으로 판단하지 말라는 것이 동학개미운동의 핵심이다. 동학개미운동의 시사점은 디지털 전환을 목표로 하는 많은 기업에 유용하다. 기술기업을 표방하는 벤처기업은 물론 기존 영역에서 경쟁우위를 갖추던 전통적인 기업들 모두 근시안적 목표 달성을 추구하느라 장기적인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기 목표 달성에 목을 매는 기업들은 특정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다양한 출처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최고경영자(CEO)와 최고재무책임자(CFO)의 80% 이상이 분기별 수익 목표를 맞추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연구개발비를 줄일 용의가 있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장기적 관점을 지닌 기업의 움직임은 달랐다. 맥킨지글로벌연구소가 미국의 615개 상장회사가 14년간 기록한 성과를 살펴본 결과 164곳이 장기적 관점으로 경영을 했다. 즉 약 4분의 1의 기업이 미래에 사용할 자원을 단기목표 충족을 위해 끌어다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미래의 성장을 지원한 기업들의 이득이 매우 컸다는 사실이다. 장기적 관점을 지닌 기업은 다른 기업에 비해 연구개발비를 평균 50% 더 지출했으며, 거의 1만2000개가 넘는 일자리를 추가로 창출했다. 이들 연구팀은 미국의 모든 기업이 장기적 관점으로 경영을 했다면 미국 국내총생산(GDP)은 1조달러가 늘어났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근시안적인 경영의 대가를 살펴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근시안적 경영에서 탈피하는 법

근시안적 경영에서 탈피하는 첫걸음은 신호와 소음을 구별하는 것이다. 신호와 소음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목표를 떠올릴 때 구분해낼 수 있다. 장기투자를 지향하는 이글캐피털매니지먼트를 설립한 보이킨 커리는 어떤 투자 종목의 주가가 떨어질 때 그 종목을 산 이유를 떠올려 본다. 그는 2006년 마이크로소프트가 클라우드 컴퓨팅 분야의 선도자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주식을 매입했다. 3년 뒤 이 주가가 40% 이상 떨어지자 많은 사람은 주식을 되팔았지만, 그의 조사 결과 주가 하락의 이유가 개인용 PC의 수요 부진과 이로 인한 윈도 소프트웨어의 판매 부진임을 파악했다. 주가 하락의 원인이 주식을 매입한 이유와는 전혀 무관한 것이었다. 신호와 소음이 구분되자 그는 오히려 마이크로소프트 주식을 추가로 매입했다.

보상의 기준을 바꾸는 것도 한 방법이다. 많은 기업이 단기적인 성과 달성을 기준으로 보상을 책정한다. 펀드매니저가 받는 보상의 약 74%가 1년 안에 현금으로 지급된다. 주식지분이나 스톡옵션처럼 미래에 누릴 수 있는 보상은 4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이런 보상구조는 지금 당장의 손실이 가져다주는 공포에 따라 행동하도록 만든다. 신호와 소음을 분리하고, 장기적인 지표의 달성을 중심으로 근시안적 시각에서 벗어난 대표적인 기업이 아마존이다.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는 거의 20년 동안 주주들에게 배당금을 거의 지급하지 않으면서 소매유통업 및 클라우드 컴퓨팅의 제국을 건설했다. 기존의 회계방식보다는 성장을 선택했고, 직원들에겐 현금보다 스톡옵션을 지급해 회사의 미래에 투자하도록 유도하겠다고 주주들을 설득했다. 20년 동안 아마존의 수익은 제로에 가까웠지만, 2018년 9월 아마존은 시가총액 1조달러로 평가되면서 애플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큰 기업이 됐다.

새로운 제도의 필요성

근시안적 경영의 시각을 버려야 하는 것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인간의 새로운 역할을 찾고, 디지털 전환을 이루기 위해 매우 중요하다. 새로운 시대의 생존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는 것이다.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이 기술과 경쟁할 수는 없다. 데이터에 존재하는 패턴을 찾는 일은 기계가 월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계는 데이터 축적의 기반이 되는 사회 구석구석을 이해하지 못한다. 과거의 추세와 전혀 관련 없는 사회에 내재적인 요인을 이해하고 깊이 있는 전환을 감지하는 분야에서는 여전히 인간이 기계를 능가한다.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제도적인 노력도 필요하다. 제도란 인센티브 체계를 설계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디지털 전환을 이뤄내야 하는 벤처와 기존기업 모두 주주로 대표되는 투자자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관점에서 ‘차등의결권 제도’ 도입을 검토해볼 필요도 있다. 설립자와 장기투자자가 보유한 주식의 투표권이 단기 거래자를 포함한 일반투자자가 보유한 주식 투표권보다 많은 제도다. 단기거래자가 내리는 의사결정의 영향을 줄이겠다는 의도다. 유럽 국가들이 도입하기 시작한 ‘테뉴어보팅’도 좋은 대안이다. 주식을 오래 보유한 주주들이 더 많은 투표권을 갖는 제도로 차등의결권 제도의 한 형태다. 기업과 국가, 개인 모두가 자신들이 보유한 자원을 미래에 유익한 것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한 도구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 포인트

디지털 전환 전략 위해서는
소음과 신호의 구분이 필수
근시안적인 시각 탈피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