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한 신발 브랜드가 지난 4월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와디즈’에서 운동화(오른쪽) 제작과 관련해 펀딩을 받으려다 이탈리아 브랜드 ‘부테로 카레라’(왼쪽)의 디자인을 그대로 베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계획을 취소했다.    /쓱닷컴·와디즈  제공
국내 한 신발 브랜드가 지난 4월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와디즈’에서 운동화(오른쪽) 제작과 관련해 펀딩을 받으려다 이탈리아 브랜드 ‘부테로 카레라’(왼쪽)의 디자인을 그대로 베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계획을 취소했다. /쓱닷컴·와디즈 제공
지난해 크라우드펀딩에 참여했다가 피해를 본 소비자가 1년 전에 비해 세 배로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돈을 낸 펀딩 참여자에게 중국산 모조품이나 하자 제품을 속여 판 사례가 속출했다. 사실상 불량 제품을 산 것이지만 크라우드펀딩 중개업체는 ‘투자’라는 이유를 들어 환불해주지 않는 등 피해자 구제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19일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지난해 크라우드펀딩 관련 피해구제 요청 건수는 66건으로 2018년(22건)의 세 배로 증가했다. 2017년엔 1건이었다.

피해 유형은 배송 지연, 모조품 및 하자 제품 판매 등 다양하다. 지난해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와디즈’에서 펀딩한 2500원짜리 미세모 칫솔 ‘다모칫솔’은 중국 온라인 쇼핑몰 ‘알리바바’에서 같은 제품이 300원에 판매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돼 펀딩이 중단됐다.

크라우드펀딩 업체를 상대로 한 법적 대응도 늘고 있다. 지난 4월 소비자 1695명은 공정거래위원회에 환불 약관이 불공정하다는 이유로 와디즈를 신고했다. 와디즈에서 스마트 고양이 화장실을 구매한 소비자 25명은 이달 초 서울서부지방법원에 환불을 요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크라우드펀딩을 장려해온 정부는 사실상 관리·감독을 방치하고 있다. 금융위원회 공정위 등 관련 부처는 관리·감독 책임을 서로 떠넘기고 있다. 황경태 스프링앤파트너스 변호사는 “유관기관에 따라 매매인지 투자인지 해석이 달라 소비자 피해만 늘고 있다”고 했다.
'혁신 가장한 판매' 크라우드펀딩…피해자 속출해도 구제 안돼
짝퉁·하자제품 등 환불 거절…플랫폼사선 판매사에 책임 돌려

자영업자 정모씨(32)는 2018년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와디즈’에서 스마트 고양이 화장실 ‘라비봇’에 71만원(2대 기준)을 펀딩(실제로는 구매)했다. 개발업체는 라비봇이 고양이 배설물을 자동으로 청소한다고 홍보했다. 스마트폰으로 화장실 내부를 실시간 확인하는 기능도 내세웠다.

실제로 받은 제품은 이와 달랐다. 배설물 치우는 삽이 부러진 상태로 배송됐다. 고양이가 화장실 안에 있는데 삽이 갑자기 움직여 다칠 위험도 컸다. 스마트폰 연동 기능도 먹통이었다. 정씨는 곧장 환불을 요구했지만 2년 넘게 처리되지 않았다. 결국 그는 서울서부지방법원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정씨는 “제작업체가 환불해주지 않는데도 와디즈는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호소했다.
플랫폼 “피해 나 몰라라”

크라우드펀딩은 온라인에서 불특정 다수에게 돈을 모으는 자금조달 방식이다. 후원형, 증권형, 대출형 등으로 구분된다. 크라우드펀딩 규모는 매년 커지고 있다. 업계 추산에 따르면 2016년 250억원이던 크라우드펀딩 시장 규모는 지난해 3100억원으로 12배 넘게 커졌다. 최근 5년간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와디즈는 펀딩 규모가 연평균 250% 성장했다.

규모가 커짐에 따라 소비자 피해는 갈수록 늘고 있다. 지난해 11월엔 한 업체가 이미 중국에 판매되고 있는 와인냉장고를 새 상품으로 둔갑시켜 와디즈에서 펀딩을 받았다는 논란이 일었다. 가격도 중국 현지(58달러)보다 비싼 10만원으로 설정했다. 와디즈에서 펀딩한 티타늄 안경테가 알고 보니 값싼 니켈 도금 안경테로 밝혀진 일도 있었다. 국내 한 신발 브랜드는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부테로 카레라’의 디자인을 그대로 베꼈다는 의혹으로 와디즈 펀딩이 취소되기도 했다. 유튜브에는 크라우드펀딩 제품의 부실을 고발하는 영상이 수십 건 올라왔다.

하지만 피해 구제는 쉽지 않다.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대부분이 후원형 펀딩을 ‘투자’로 규정해서다. 와디즈는 투자위험고지서에 “해당 상품은 자본시장법에 따른 ‘증권’에 해당한다”고 알렸다. 와디즈 관계자는 “투자위험 고지는 증권형 펀딩에 해당하는 설명”이라고 해명했지만, 해당 투자위험 고지에는 증권형을 특정하지 않았다. 소비자보호법을 적용받을 수 없다. 플랫폼업체는 이런 이유로 제품 하자 등 책임을 판매업체에 돌린다. 제품에 하자가 있을 땐 배상이 아니라 펀딩 취소 등에 그친다.

투자라는 사실조차 제대로 고지하지 않은 플랫폼이 많다. 와디즈는 투자위험고지를 사이트 맨 아래쪽에 표시했다. 스크롤을 끝까지 내려야 나온다. 텀블벅은 투자위험고지서 자체를 찾아볼 수 없다. 판매업체 정보도 부실하다. 회사명, 이메일 주소, 홈페이지 주소, 연락처가 전부다.

와디즈는 지난 1월 제품에 심각한 하자 등이 있을 때 제품 수령일로부터 7일 이내 환불받을 수 있는 ‘펀딩금 반환정책’을 내놨다. 다만 전자상거래법이 정한 환불 규정(공급받은 날로부터 3개월 이내, 하자 사실을 안 날로부터 30일 이내)보다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와디즈 관계자는 “문제된 펀딩은 전체의 1% 이하”라고 해명했다.

공정위·금융위 “우리 책임 아냐”

정부는 소비자 피해를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 금융위와 공정거래위원회는 후원형 크라우드펀딩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을 부인하고 있다. 금융위가 증권형 펀딩의 감독만 인정할 뿐이다. 금융위가 지난 16일 내놓은 ‘크라우드펀딩 발전방안’에도 후원형 펀딩에 관한 내용은 빠졌다. 금융위 관계자는 “후원형 펀딩은 통신판매업으로 분류돼 자본시장법상 투자 행위로 볼 수 없다”며 “자금을 후원하고 제품을 받는다는 점에서 매매 성격이 강하다”고 했다.

통신판매업을 관할하는 공정위는 다른 시각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판매업체가 펀딩에 나선 목적이 제품 생산비 등 자금 조달이라는 점, 이미 판매되는 제품이 아니라 개발 중인 제품을 거래하는 점에 비춰볼 때 투자의 성격이 강하다”며 “전자상거래법 적용 대상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이어 “2016년 한국소비자원에 연구 용역을 맡긴 결과 크라우드펀딩은 현행 전자상거래법상 통신판매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결과를 받았다”고 덧붙였다.

스타트업업계가 크라우드펀딩을 바라보는 시선도 싸늘해졌다. 당초 크라우드펀딩 사이트는 스타트업 ‘등용문’ 역할을 했다. 아이디어만으로 미리 시장성을 검증할 수 있어서다. 이그니스가 선보인 간편식 랩노쉬는 최초로 펀딩액 1억원을 모아 화제가 됐다. 이는 올리브영 등 다양한 유통채널에 입점하는 계기가 됐다.

지난해 와디즈에서 펀딩을 했던 한 스타트업 대표는 “참신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새 제품을 출시하려는 스타트업보다 물량 공세를 펼 수 있는 ‘보따리상’이 크라우드펀딩에 몰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 크라우드펀딩

자금을 필요로 하는 수요자가 온라인 플랫폼 등에서 불특정 다수에게 자금을 모으는 방식. △후원형(펀딩 대가로 제품 등을 받는 방식) △기부형 △대출형 △증권형 등 네 가지 형태로 나뉜다.

양길성/김남영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