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으로 10채 산다…정부 규제 비웃는 갭투자자들 [집코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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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규제 나왔지만 지방 소액 투자 막기 어려워
수십채씩 사들여 시장 교란…선제 대응책 나와야
수십채씩 사들여 시장 교란…선제 대응책 나와야
정부가 대출규제 중심의 ‘갭투자 방지대책’을 내놨지만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다수 갭투자자들은 대출을 활용하기보단 높은 전세를 레버리지 수단으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규제지역에 관계없는 세제 강화나 ‘규제 예고제’ 등을 통해 갭투자 수요 자체를 잠재워야 한다고 지적한다.
◆대출 안 받는 ‘선수’들에게 대출규제?
22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분기 16개 예금취급기관의 전세자금대출 규모는 107조2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분기 대비 8조9000억원이 늘어 증가폭이 사상 최대를 기록한 데 이어 처음으로 100조원을 넘어섰다. 반면 주택담보대출은 같은 기간 3조1000억원이 감소한 532조3000억원을 나타냈다. 정책대출 등을 포함해 규모가 늘어나는 전세대출은 갭투자자들의 밑천이다. 주택을 매입할 때 투입비용을 낮추려면 매매가격 수준만큼 높은 전세가격을 치를 세입자가 필요한데, 이들 세입자에게 그만한 돈을 대주는 게 전세대출이기 때문이다. 전세대출이 갭투자자들의 진입장벽을 낮춰주는 유동성으로 활용될 수 있는 셈이다.
‘6·17 대책’은 무주택자나 1주택자들이 자신은 전세로 거주하면서 전세대출이나 주택담보대출을 이용해 다른 집에 갭투자하는 걸 막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서울 등 매매가격과 전세가격의 차이가 수억원대인 지역에서 대출금을 투자에 전용하는 걸 차단하는 것이다. 이마저도 조정대상지역 이상의 규제지역에 한정시켰다.
그러나 집을 한 번에 수십채씩 사들이면서 시장을 교란하는 갭투자자들은 정부 규제와는 결이 다르게 움직이다. 자신이 대출을 일으키진 않는다. 전세대출을 받은 세입자의 집을 산다. 보증금을 턱턱 내주는 만큼 매매가격과의 차액을 좁힐 수 있기 때문이다. 1억원의 여윳돈이 있다면 이렇게 비(非)규제지역에서 1000만원씩 10채를 사는 식이다.
빌라시장의 경우 이 같은 일이 더욱 흔하다. 아파트보다 매매 선호도가 떨어져 전세가격이 매매가격에 육박해서다. 신축빌라를 분양할 땐 전세대출을 받는 세입자를 먼저 맞춘 뒤 수분양자를 구하는 게 공공연한 일이다. 수분양자는 세입자 덕에 1000만~2000만원으로 빌라 한 채를 사는 셈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전세대출을 막기는 쉽지 않다. 고제헌 주택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전세대출은 부작용이 있더라도 서민의 주거비와 밀접하기 때문에 당국에서도 손대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자칫 투자와 거리가 먼 사람들이 규제를 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방 선제대응 필요”
갭투자자들은 지방 부동산시장 공략에 나선 지 오래다. 이번에 규제지역으로 지정된 인천과 대전, 군포 등은 1~2년 전부터 이미 전문 갭투자자들이 쓸고 지나간 곳이다. 정부 규제가 뒷북에 그치고 꼬리만 잡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갭투자자들이 지방으로 몰리는 건 앞으로 규제 가능성을 낮게 보는 시각도 깔려 있다. 해당 지역 부동산시장의 부작용을 우려해 섣불리 지정할 수 없거나, 아예 지정을 검토하지 않을 만큼 야금야금 오르는 곳들이다. 한 전업투자자는 “당분간 규제지역으로 지정되지 않을 만한 곳에 미리 투자하는 게 원칙”이라고 귀띔했다.
이들이 노리는 곳은 앞으로 입주가 줄어들 예정면서 전세가율(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 비율)이 높은 지역이다. 소액 투자가 가능한 데다 공급감소는 전세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1년 보유 요건을 맞춰 일반세율로 정리할 때 보증금을 높이고 매각할 때도 가격을 올릴 수 있다. 최근엔 그동안 공급 폭탄으로 집값이 눌려 있던 울산이나 경남 창원 등 산업도시에 갭투자자들이 몰린다. 구미 등 경기침체가 심각한 곳도 가리지 않는다. 올해를 기점으로 입주가 감소하기 시작해 내년엔 더욱 줄어들기 때문에 선제적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지난해 1만2000가구가 입주한 울산의 입주물량은 올해 3000가구, 내년엔 600가구로 줄어든다. 창원 4년 만에 처음으로 공급량이 1만 가구 아래로 떨어지고 내년엔 800가구에 불과하다.
구미 임은동 ‘삼도뷰엔빌W’는 입주 5년차 신축 단지인데도 전용면적 60㎡의 전세가격과 매매가격 차이가 2000만원에 불과하다. C공인 관계자는 “올봄엔 가격차가 1000만원에 그쳤지만 이마저도 투자자들이 몰려 오른 것”이라며 “입지나 지역경제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매수하는 이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갭투자자들이 몰린 곳에서 역전세(전세가격이 2년 전보다 낮아지는 현상)나 깡통전세(매매가격이 2년 전 전세가격보다 낮아지는 현상) 같은 일이 나타나면 피해는 고스란히 세입자의 몫이다.
전문가들은 이 때문에 선제적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문한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실장은 주택 숫자가 일정 규모 이상일 경우 규제지역 소재 여부와 관계없이 양도소득세를 과감하게 부과해야 비정상적 투자수요가 감소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정책적인 선제 대응을 하는 방법은 규제 예고제가 유일하다”며 “특정 지역에 규제가 가해질 수 있다는 신호를 줄 경우 실제 지정과 동일한 효과를 주면서 부작용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
◆대출 안 받는 ‘선수’들에게 대출규제?
22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분기 16개 예금취급기관의 전세자금대출 규모는 107조2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분기 대비 8조9000억원이 늘어 증가폭이 사상 최대를 기록한 데 이어 처음으로 100조원을 넘어섰다. 반면 주택담보대출은 같은 기간 3조1000억원이 감소한 532조3000억원을 나타냈다. 정책대출 등을 포함해 규모가 늘어나는 전세대출은 갭투자자들의 밑천이다. 주택을 매입할 때 투입비용을 낮추려면 매매가격 수준만큼 높은 전세가격을 치를 세입자가 필요한데, 이들 세입자에게 그만한 돈을 대주는 게 전세대출이기 때문이다. 전세대출이 갭투자자들의 진입장벽을 낮춰주는 유동성으로 활용될 수 있는 셈이다.
‘6·17 대책’은 무주택자나 1주택자들이 자신은 전세로 거주하면서 전세대출이나 주택담보대출을 이용해 다른 집에 갭투자하는 걸 막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서울 등 매매가격과 전세가격의 차이가 수억원대인 지역에서 대출금을 투자에 전용하는 걸 차단하는 것이다. 이마저도 조정대상지역 이상의 규제지역에 한정시켰다.
그러나 집을 한 번에 수십채씩 사들이면서 시장을 교란하는 갭투자자들은 정부 규제와는 결이 다르게 움직이다. 자신이 대출을 일으키진 않는다. 전세대출을 받은 세입자의 집을 산다. 보증금을 턱턱 내주는 만큼 매매가격과의 차액을 좁힐 수 있기 때문이다. 1억원의 여윳돈이 있다면 이렇게 비(非)규제지역에서 1000만원씩 10채를 사는 식이다.
빌라시장의 경우 이 같은 일이 더욱 흔하다. 아파트보다 매매 선호도가 떨어져 전세가격이 매매가격에 육박해서다. 신축빌라를 분양할 땐 전세대출을 받는 세입자를 먼저 맞춘 뒤 수분양자를 구하는 게 공공연한 일이다. 수분양자는 세입자 덕에 1000만~2000만원으로 빌라 한 채를 사는 셈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전세대출을 막기는 쉽지 않다. 고제헌 주택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전세대출은 부작용이 있더라도 서민의 주거비와 밀접하기 때문에 당국에서도 손대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자칫 투자와 거리가 먼 사람들이 규제를 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방 선제대응 필요”
갭투자자들은 지방 부동산시장 공략에 나선 지 오래다. 이번에 규제지역으로 지정된 인천과 대전, 군포 등은 1~2년 전부터 이미 전문 갭투자자들이 쓸고 지나간 곳이다. 정부 규제가 뒷북에 그치고 꼬리만 잡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갭투자자들이 지방으로 몰리는 건 앞으로 규제 가능성을 낮게 보는 시각도 깔려 있다. 해당 지역 부동산시장의 부작용을 우려해 섣불리 지정할 수 없거나, 아예 지정을 검토하지 않을 만큼 야금야금 오르는 곳들이다. 한 전업투자자는 “당분간 규제지역으로 지정되지 않을 만한 곳에 미리 투자하는 게 원칙”이라고 귀띔했다.
이들이 노리는 곳은 앞으로 입주가 줄어들 예정면서 전세가율(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 비율)이 높은 지역이다. 소액 투자가 가능한 데다 공급감소는 전세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1년 보유 요건을 맞춰 일반세율로 정리할 때 보증금을 높이고 매각할 때도 가격을 올릴 수 있다. 최근엔 그동안 공급 폭탄으로 집값이 눌려 있던 울산이나 경남 창원 등 산업도시에 갭투자자들이 몰린다. 구미 등 경기침체가 심각한 곳도 가리지 않는다. 올해를 기점으로 입주가 감소하기 시작해 내년엔 더욱 줄어들기 때문에 선제적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지난해 1만2000가구가 입주한 울산의 입주물량은 올해 3000가구, 내년엔 600가구로 줄어든다. 창원 4년 만에 처음으로 공급량이 1만 가구 아래로 떨어지고 내년엔 800가구에 불과하다.
구미 임은동 ‘삼도뷰엔빌W’는 입주 5년차 신축 단지인데도 전용면적 60㎡의 전세가격과 매매가격 차이가 2000만원에 불과하다. C공인 관계자는 “올봄엔 가격차가 1000만원에 그쳤지만 이마저도 투자자들이 몰려 오른 것”이라며 “입지나 지역경제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매수하는 이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갭투자자들이 몰린 곳에서 역전세(전세가격이 2년 전보다 낮아지는 현상)나 깡통전세(매매가격이 2년 전 전세가격보다 낮아지는 현상) 같은 일이 나타나면 피해는 고스란히 세입자의 몫이다.
전문가들은 이 때문에 선제적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문한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실장은 주택 숫자가 일정 규모 이상일 경우 규제지역 소재 여부와 관계없이 양도소득세를 과감하게 부과해야 비정상적 투자수요가 감소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정책적인 선제 대응을 하는 방법은 규제 예고제가 유일하다”며 “특정 지역에 규제가 가해질 수 있다는 신호를 줄 경우 실제 지정과 동일한 효과를 주면서 부작용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