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 뭇매에…'재포장 금지' 내년 1월로 연기
환경부가 묶음할인 상품을 사실상 금지하는 ‘재포장 금지법’의 본격 시행을 다음달에서 내년 1월로 6개월 미뤘다. 각계 의견 수렴으로 가이드라인을 원점부터 재검토하고 계도기간을 두기로 했다. 법 시행 열흘 전까지 금지 대상을 명확히 규정하지 못해 묶음할인 자체를 막을 수 있다는 우려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환경부는 혼란을 야기한 점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본지 6월 20일자 A1, 3면 참조

환경부는 2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이 같은 내용의 ‘제품의 포장 재질·방법에 관한 기준에 관한 규칙(재포장 금지법)’의 세부지침(고시 및 가이드라인) 재검토 일정을 발표했다.

재포장 금지법은 대형마트 등에서 이미 생산된 제품을 다시 포장해 판매하는 걸 금지하는 법령(시행규칙)이다. 생활폐기물을 줄이자는 취지다. 올 1월 말 공포해 오는 7월 1일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적발 시 제조사와 유통사에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린다.

문제는 시중의 무수한 제품과 포장 형태 중 어떤 것이 재포장에 해당하는지 환경부가 명확히 답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행일을 열흘 앞둔 현재까지 관련 세부 지침을 마련하지 못했다. 업계에서는 “이대로면 묶음할인이 불가능하다”고 호소했다.

한국경제신문 보도 등 문제 제기가 이어지자 환경부는 뒤늦게 세부 지침을 전면 재검토하기로 했다. 7~9월 3개월간 제조사, 유통사, 시민사회, 소비자,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협의체에서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서 7월 1일 시행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재포장 금지법엔 7월 1일로 시행일이 못박혀 있지만 10~12월 3개월간 계도기간을 두기로 했다. 이 기간 동안은 단속과 과태료 처분이 이뤄지지 않을 예정이다.

이영기 환경부 자원순환정책관(국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재포장 금지법) 시행을 위해서는 필요한 세부 지침이 마련돼야 하는데 국민들, 업계와 충분한 협의가 되지 않아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며 “혼란을 야기한 데 대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협의체를 몇 명으로 구성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이채은 자원순환정책과장은 “참여를 원하는 업체, 시민사회, 전문가를 포함해서 희망하는 사람은 최대한 참여시킬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가격 할인에 대한 세심함을 놓쳤다”면서도 “묶음할인 자체를 규제한다는 것은 오해”라고 주장했다. 이 과장은 “금지 대상인 재포장 제품 여부를 구분하는 기준을 ‘가격 할인 등 판촉 행위’로 제시하다 보니 오해가 생겼다”며 “재포장 행위를 금지하는 것이지 가격 할인 자체를 금지한 건 아니다”고 했다. 이어 “가격 할인 외에 재포장 제품을 구분할 다른 어떤 기준이 있는지를 의견 수렴을 통해 모색해 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환경부의 해명에도 업계 반응은 싸늘하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기준을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하면 묶음할인 자체를 막는 효과를 낸다”며 “환경부 설명대로라도 소비자가 낱개로 제품을 들고 가야 하고 기업도 수천 개의 제품 바코드를 매번 재입력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한 포장업체 관계자는 “포장에 쓰이던 재질과 양을 무조건 못 쓰게 할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대안을 마련하는 방식으로 기업을 유도해야 할 것”이라며 “기업들이 법망을 피해갈 편법만 더 고민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환경부는 본지 보도와 관련한 해명 과정에서 담당 사무관이 기자에게 폭언한 것에 대해서도 공식 사과했다. 송형근 환경부 자연환경정책실장은 이날 브리핑에 앞서 “지난주 언론 대응 과정에서 담당 사무관의 적절하지 못한 발언이 있었던 데 대해 사과의 말씀드리겠다”고 했다.

구은서/김보라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