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턴 회고록, 사실 크게 왜곡…美정부의 적절한 조치 기대"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사진)은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이 “사실을 크게 왜곡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볼턴의 일방적인 주장으로 북한, 미국과의 관계가 곤란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며 청와대가 서둘러 ‘선긋기’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 실장은 “회고록은 한국과 미국 그리고 북한 정상 간의 협의 내용과 관련한 상황을 볼턴 자신의 관점에서 본 것을 밝힌 것”이라며 “정확한 사실을 반영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고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22일 전했다.

정 실장은 “정부 간 상호 신뢰에 기초해 협의한 내용을 일방적으로 공개하는 것은 외교의 기본 원칙을 위반한 것으로 향후 협상의 신의를 매우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며 “미국 정부가 이런 위험한 사례를 방지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부적절한 행위는 앞으로 한·미 동맹 관계에서 공동의 전략을 유지 발전시키고 당국의 안보 이익을 강화하는 노력을 심각하게 저해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정 실장의 입장은 하루 전인 21일 저녁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전달했다고 윤 수석은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볼턴의 개인 시각이 반영된 회고록이 남·북·미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정 실장이 입장을 발표한 것으로 분석했다. 볼턴은 회고록에서 미·북 정상회담과 한반도 종전 선언 추진 등이 모두 한국의 아이디어였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미·북 대화에 대한 치밀한 준비가 없었고, 소득이 없었다고 비판했다. 한국 정부가 이 회담을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했다고도 폭로했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위한 문재인 대통령의 노력을 심각하게 폄훼하는 동시에 남·북·미 교착 상황이 길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현 정부의 책임론이 나올 수 있는 주장이란 분석이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개인의 시각이 반영된 일방적인 주장을 하고 있지만 전 국가안보보좌관이 썼다는 점에서 반향이 클 수 있다”며 “파장이 길어질수록 북한, 미국과의 관계가 곤란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청와대는 이와 별도로 볼턴의 회고록에 대해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발전에 대한 한·미 정상 간의 진솔하고 건설적인 협의 내용을 자신의 편견과 선입견을 바탕으로 왜곡한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청와대는 사실관계 하나하나에 대해서는 논박하지 않겠다고 했다. 다만 볼턴이 문 대통령의 한반도 비핵화 구상을 ‘조현병적 아이디어’라고 폄훼한 데 대해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본인(볼턴)이 그럴 수 있는 거 아닌가”라며 불쾌감을 나타냈다.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