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또 다른 유리천장을 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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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창흠 < 한국토지주택공사 사장 changbyeon@lh.or.kr >
![[한경에세이] 또 다른 유리천장을 깨주세요](https://img.hankyung.com/photo/202006/01.22524711.1.jpg)
그러나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평가하는 한국 여성의 노동환경은 끔찍한 수준이다. 여성의 교육 기회, 임금, 육아, 관리직 비율 등 10가지 지표로 만든 유리천장지수에서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2013년 이래 7년째 꼴찌다. 이 험악한 사회에서 살아가야 할 우리 두 딸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여성과 소수자에게 임용인원을 할당한다고 유리천장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우리 사회에는 유리천장 외에 ‘유리벽’이 따로 있다. 위로만 막혀 있는 것이 아니라 옆으로도 막혀 있는 것이다. 위와 옆을 아우를 수 있는 능력자는 또다시 남성, 최고 학벌, 국가고시 출신, 정규직 등의 순수 혈통들이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을 때 가끔씩 정말 어려운 환경을 극복한 제자들이 있어서 보람을 느낀 적이 있다. 세속적 평가와 달리 탁월한 역량, 전문성과 열정을 지닌 제자를 찾아내는 기쁨이라고나 할까? 몇몇 제자는 기어이 교수 또는 전문 관리직이 돼 훌륭한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오늘날 빠른 성장 과정에 감춰져 있던 불평등이 점차 더 부각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소득뿐만 아니라 자산 역시 불평등 정도가 가장 심각한 국가에 속한다. 더 나아가 현세대의 불평등이 다음 세대의 불평등을 세습하는 사회로 가고 있다. 서울대 분배정의연구센터장인 주병기 교수 등이 만들어낸 ‘개천용불평등지수’는 점점 높아져 이제는 ‘개천에서 용 나기’ 어려운 사회가 되고 있다.
유리천장과 유리벽을 깨는 것은 또 하나의 사회혁신이다. 어떤 조직에서 기수와 혈통을 뛰어넘어 인재를 내·외부에서 폭넓게 발탁하고 활용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그동안 여러 차례 과감하게 제안하고 또 직접 시행했지만, 모두 다 성사시키지는 못했다. “사장님, 제발 유리천장을 깨주세요”라고 호소하던 한 고졸 여직원의 열망을 끝내 이뤄주지 못한 것은 아직도 마음에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