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2018년 4월 미 워싱턴 백악관 회의에 참석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얘기를 듣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2018년 4월 미 워싱턴 백악관 회의에 참석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얘기를 듣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 백악관이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그 일이 일어난 방')의 400곳 이상에 대해 수정과 삭제를 요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반도 관련 내용만 100곳이 넘었다.

22일(현지시간) 뉴욕타임즈 등 외신에 따르면 미 백악관은 볼턴의 회고록에 소송을 제기하며 법원에 제출한 17쪽짜리 서류에 볼턴의 책 내용 중 415곳에 대해 수정과 삭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서류로 냈다.

백악관은 볼턴이 재임기간 중 겪은 각종 외교·안보 현안에 관련된 일을 쓴 회고록에 대해 국가 기밀을 다수 포함하고 있다며 소송을 제기했지만 기각된 상태다. 회고록에는 한국과 북한을 포함해 중국, 러시아, 이란, 베네수엘라 등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다룬 주요 외교 현안에 대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백악관은 한국, 북한 등 한반도 사안을 다룬 두 개의 장에서만 110개가 넘는 수정 및 삭제 의견을 냈다. 볼턴의 회고록에는 남북, 한미, 북미 정상간 논의내용과 고위급 인사들의 대화가 담겨 있는데, 진위를 떠나 이를 책에 담는 것 자체가 외교적 신뢰를 저버린 것이라는 비판이다.

볼턴 책에 등장하는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 실장은 "정부 간 상호 신뢰에 기초해 협의한 내용을 일방적으로 공개하는 것은 외교의 기본 원칙을 위반한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백악관 역시 한미 동맹 균열과 북미관계 악화를 우려한 듯 아예 문장 자체의 삭제를 요구했다. 또 단정적인 문장에는 '내 의견으로는'이라는 식의 표현을 추가하라고 요구했다. 볼턴의 주장이 미국의 입장인 양 비춰질 수 있어서다.
백악관 배경으로 촬영된 볼턴 회고록 표지. 사진=AP연합뉴스
백악관 배경으로 촬영된 볼턴 회고록 표지. 사진=AP연합뉴스
예를 들어 '북한 비핵화라는 용어에 대한 한국의 이해는 미국의 근본적 국가이익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라고 적은 부분에는 '내 추측에는'이라는 말을 추가하라고 요구했고, 이에 따라 책에는 '내 관점에서는'이라는 표현이 더해졌다.

또 "한국의 어젠다가 우리(미국)의 어젠다는 아니다"라는 부분에는 '항상'이라는 단어를 추가하라는 백악관 요구를 수용해 "한국의 어젠다가 항상 우리의 어젠다는 아니다"라고 수정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와 다른 어젠다를 갖고 있다"는 문장 뒤에는 "어느 정부도 자기 국익을 우선시하는 것처럼"이라는 문구를 추가하도록 했다.

볼턴이 회고록에서 "북한이 정보를 숨기고 있다"고 표현한 부분은 백악관 요구를 받아들여 "북한이 핵심 정보를 숨기고 있다"로 수정됐다.

그러나 볼턴이 백악관 주장을 모두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볼턴은 일본과 마찬가지로 문 대통령도 국내 사정이 어려워지면 일본을 이슈화한다고 쓴 부분이 있는데, 백악관은 '문 대통령'이라는 주어를 '한국인'으로 바꾸라고 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경닷컴 뉴스룸 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