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감천항 러시아 선박 선원 무더기 확진에 항만 당국 긴장
여름철 선박 화물칸 40도↑…근로자·검역관, 마스크 착용 어려움 호소
"바다가 뚫렸다"…전국 항만 코로나19 방역 '초비상'
부산 감천항에 입항한 러시아 국적 선박 선원들이 무더기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전국 주요 항만 방역에 비상이 걸렸다.

23일 부산 감천항에 정박 중인 러시아 국적 냉동 화물선 A호(3천933t) 승선원 21명 중 16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하역 작업 등을 위해 A호에 올랐던 부산항운노조원과 수리공, 도선사, 화물 검수사, 하역업체 관계자, 수산물 품질관리원 소속 공무원 등 61명이 밀접 접촉자로 분류돼 자가격리돼 진단 검사를 받는다.

항만에 입항한 외국 선원들이 대거 코로나19 확진을 받는 사례가 나오면서 인천항, 광양항, 평택당진항, 울산항 등 전국 주요 항만에서는 긴급회의를 열어 방역 체계를 재점검하는 등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바다가 뚫렸다"…전국 항만 코로나19 방역 '초비상'
◇ 전국 주요 항만 코로나19 방역 안간힘
감천항에 입항한 러시아 선박 선원들이 코로나19에 집단 감염된 사실이 전해지자 매월 600여척의 외항선(국제항로를 운항하는 선박)이 입항하는 인천항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인천지방해양수산청은 항만공사와 물류협회, 항운노조, 검역소 등 관계기관 합동회의를 열어 방역 대비 상황을 긴급 점검했다.

인천해수청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 초기부터 검역 대책을 비롯한 종합 매뉴얼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면서 "사태가 장기화함에 따라 작업 현장에서 수칙을 얼마나 잘 준수하는지가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전남의 대표 항만인 광양항에는 하루 평균 85척의 크고 작은 화물선이 이용하는데 이 가운데 외국 선박은 40척에 달한다.

중국이나 동남아, 유럽, 미주 노선을 가면서 거치는 기항지로 광양항을 이용하고 있어 대부분의 선원은 배에서 머문다.

업무를 위해 배에서 내리는 선원들은 반드시 방역초소를 거쳐 통과해야 하는데 하루에 초소당 10여 명이 왕래하고 있다.

코로나19에 대비해 컨테이너 부두에 방역 초소 22곳을 설치하고, 직원 147명을 배치해 24시간 운영하고 있다.

방역 초소에는 손 소독제를 비치하고 출입자들의 발열을 일일이 체크해 통과시키고 있다.

외국인 선원들은 이름과 연락처 등 인적사항을 모두 기록해야 하고 출입카드를 발부해 관리하고 있다.

평택당진항에는 코로나19 사태로 카페리 여객은 5개월가량 중단된 채 화물선(카페리 포함)만 하루 평균 30여 척씩 입항하고 있다.

이날 오전 평택당진항에서는 부산 감천항 러시아 선원 코로나19 확진 소식이 전해지면서 평택해양수산청이 각 선사와 항운노조에 지침을 보내 모선 선원들과의 거리두기 지침 등을 지켜 달라고 당부했다.

평당항에서는 항운노조 소속 노조원 340여 명이 하역 작업에 투입되고 있다.

평당항 항운노조 관계자는 "평당항에는 러시아발 선박은 없고, 중국, 베트남, 유럽 일부 국가에서 화물선이 입항하고 있다"며 "모선 선원들이나 항운노조 소속 하역 작업자들은 발열 체크, 마스크 착용, 거리두기 등 방역 수칙을 대부분 잘 지키고 있다"고 전했다.

국립인천검역소 평택지소는 수시로 부두를 소독하면서 코로나19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평택시 관계자는 "국제여객터미널은 지난 1월 여객 운항이 중단되면서 대부분 오가는 사람이 없지만, 선사 관계자 등이 상주하기 때문에 주 1∼2회씩 소독하는 등 방역 수칙을 지키고 있다"고 전했다.

매월 900여 척의 외항선이 입항하는 울산항에서는 2인 1조로 된 검역관들이 하루에 많게는 20척까지 승선 검역을 하고 있다.
"바다가 뚫렸다"…전국 항만 코로나19 방역 '초비상'
승선 검역에서는 검역관들이 선원들에 대한 발열 체크와 건강 상태 질문서 등을 토대로 유증상자나 의심환자가 있는지 직접 확인한다.

현재까지 유증상자나 의심환자 발생 건수는 없었다고 국립울산검역소는 설명했다.

또 하루에 평균 20명 정도 되는 외항선 하선자들의 경우 특별검역 절차를 거친 후 모바일 앱을 이용한 추적 관리를 하고 있다.

국립울산검역소 관계자는 "러시아 선박의 경우 울산항까지 3∼4일이라는 짧은 기간에 들어올 수 있기 때문에 지난달 15일부터 검역관들이 직접 승선해 검역하는 중"이라며 "나라별로 코로나19 발생 양상을 예의주시해 승선 검역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 더워진 날씨에 근로자 방역 수칙 준수 어려움
날씨가 더워지면서 방역 수칙을 준수해야 할 항만 근로자들의 불편이 커지고 있다.

화물 하역을 비롯해 인천항에서 근무하는 현장 근로자는 1천600명인데 날씨가 더워지면서 방역수칙을 준수하는데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국내 항만에서 코로나19 감염이 발생하지 않은 것은 하역 작업을 할 때 방역 기관이 먼저 승선해 선원들의 상태를 체크한 뒤 하역 근로자들이 배에 오르는 절차를 지켰기 때문인데 부산에서도 이런 절차대로 했는데도 다수의 접촉자가 발생한 경위가 궁금하다"고 말했다.

인천항의 한 하역 근로자는 "하역 작업 현장은 날씨가 더워지면서 근로 여건이 급격히 악화하고 있다"면서 "철재로 된 선박의 화물칸 안은 벌써 40도가 훌쩍 넘는데 땀이 범벅이 되는 육체노동을 하면서 계속 마스크를 착용하는 게 쉽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방역·검역 담당자들의 업무 피로감도 점점 더 쌓이고 있다.

한 검역관은 "하루에 수 척의 외항선에 올라가 승선 검역을 하고, 사이사이에 다른 업무를 보면 하루가 다 간다"고 "인력이 늘 부족해 힘이 들고, 스트레스가 쌓여 그만두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직원도 있다"고 호소했다.
"바다가 뚫렸다"…전국 항만 코로나19 방역 '초비상'
일부에서는 기관별로 맡은 업무가 달라 배에서 내려 육지를 다녀오는 선원들의 동선이나 행적 관리에 어려움이 있다고 지적한다.

한 기관의 관계자는 "방역 업무를 주로 맡은 직원이 선원들에게 구체적인 행적을 물을 수 없는 등 관리 감독 권한이 사실상 없는 게 현실"이라며 "초기 방역과 후속 조치까지 일원화할 수 있으면 더 효과적일 것 같다"고 말했다.

(차근호 오수희 김선호 김재홍 신민재 최해민 형민우 김용태 기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