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원순의 관점] 대기업일수록 경영 투명한데…규제 무작정 늘리는 巨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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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제도로 계속 강화돼온 기업회계·경영 투명성
국내외 중복 감시…투명하지 않으면 기업존립 불가
외형 10억이하 소득탈루율 72%…대기업은 5% 미만
정작 투명한 운영 필요한 곳은 정치·사회 단체
기업은 '개혁대상'인가, '위기돌파의 엔진'인가
슈퍼 여당과 정부는 기업 보는 시각 분명히 해야
국내외 중복 감시…투명하지 않으면 기업존립 불가
외형 10억이하 소득탈루율 72%…대기업은 5% 미만
정작 투명한 운영 필요한 곳은 정치·사회 단체
기업은 '개혁대상'인가, '위기돌파의 엔진'인가
슈퍼 여당과 정부는 기업 보는 시각 분명히 해야
집권여당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하는 최근 기업정책을 보면 의문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특히 대기업을 보는 시각과 정책이 앞뒤가 안 맞을 때가 많다. 여당과 정부의 최근 ‘대기업관(觀)’에는 두 가지 주목할 만한 포인트가 있다. 먼저 ‘대기업은 규제 대상’이라는 한국 진보·좌파의 해묵은 시각이 코로나 위기 와중에 오히려 강고해지는 분위기다. 4월 총선에서 여당이 177석을 휩쓸면서 이런 인식은 국회로 수렴되고 있다. “기업 개혁이 21대 국회 과제”라는 식의 목소리가 민주당에서 자주 들린다. 경제 위기라면서 논란 많은 공정거래법과 상법 개정안 처리부터 서두르는 배경이다.
또 다른 관점은 ‘경제 위기 극복이 기업 노력 없이는 어렵다’는 현실론의 확대다. 여당보다는 정부 쪽에서 주로 나온다. ‘위기 돌파, 기업역할론’은 문재인 대통령도 연거푸 제기했다. 코로나 쇼크로 인한 ‘경제 전시상황’ ‘비상경제 시국’이라며 기업에 투자를 요청·독려하는 행사도 여러 번 했다. 이른바 투자활성화 대책, 일자리 대책도 반복됐다.
이처럼 여당의 국회 장악과 코로나 쇼크로 더 심각해진 경제난이라는 두 변수에 따라 상반된 주장, 때로는 모순된 정책이 혼재되어 나온다. 기업인들은 이렇게 묻고 싶을 것이다. “기업은 개혁 대상인가, 위기 돌파의 엔진인가. 슈퍼여당과 정부는 이 문제부터 솔직히 답해 보라.” “기업 규모 클수록 투명, 탈세 적어”
국세청 자료·공인회계사회 연구보고서
한국 기업은 과연 투명경영과는 거리가 먼 개혁 대상일까. 이달 초 한국공인회계사회가 한국세무학회와 공동으로 연 웹 세미나에서 이 문제와 관련해 의미 있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회계투명성 제고가 세원(稅源) 투명성 및 세원 확충에 미치는 영향’(이영한·이동규 서울시립대 교수, 전규안 숭실대 교수, 박성동 우남세무회계컨설팅 대표 공동연구)이라는 연구보고서가 그것이다. 세미나에선 한국 사회의 유별난 부정적 기업관과 반(反)기업 선동의 주요 근거로 거론돼온 경영투명성 논란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이 폭넓게 개진됐다.
연구보고서 내용 중 개인과 법인 사업자의 수입(외형) 규모별 소득탈루 현황 분석이 특히 주목을 끌 만했다. 국세청의 최근 ‘국세통계연보’가 인용·해석됐는데, 기업 규모가 클수록 소득탈루(탈세)율이 눈에 띄게 떨어진다는 사실이다(표 참조).
외형 100억원 이하 기업은 탈루율이 39~72%에 달한 반면, 5000억원 초과 대기업은 4.9%에 그쳤다. 대기업일수록 회계가 투명하고, 그만큼 조세포탈도 적다는 게 징세행정에서 확인된 셈이다. 이는 개인의 경우 1억원 이하 소규모 사업자(34.8%)와 50억원 초과 대규모 사업자(37.1%)가 탈세율에서 그다지 차이가 없는 것과 대비된다. 기업이 개인사업자보다 세금을 훨씬 성실·정확하게 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대기업은 여러 갈래의 감시체제로 투명경영이 제도적으로 확립돼 있다.
아울러 대기업 경영의 투명성이 최근 들어 더 나아졌다는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정책 용역과제로 연구한 ‘소규모 법인의 효율적인 세원관리 방안 연구’(이상엽·김빛마로 연구원, 2017년 11월)라는 별도 보고서를 보면, 2015년 기준으로 수입금액 5000억원을 넘는 기업의 탈루율은 6.2%였다. 이번에 나온 수치와 비교해 보면 보다 개선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강화돼온 법과 제도…투명회계·투명경영제고
세수 확대로 연결
공동연구자에 포함된 이영한 교수는 “기업 크기로 볼 때 수입금액 5000억원 이하 법인의 평균 소득 탈루율은 18.4%로 전체 기업 평균 7.1%의 2.6배에 달한다”며 “1000억원 이하가 더 문제”라고 지적했다. 투명성을 확보하자면 중소기업이 먼저라는 얘기다. 이동규 교수도 “기업 규모가 커지면 외부회계감사, 내부통제 구조와 기업지배 구조 정비 등으로 회계 정보 관련 규제가 강화되고, 회계투명성도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투명성 제고는 국세청 업무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세무조사를 줄일 수 있다. 그렇게 국세행정에 여력이 생기면 세무회계 자문 같은 ‘서비스행정’이 강화될 것이다.
한국경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대기업은 제도적 장치에 따라 회계투명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조세회피(세금탈루)’ 유인도 억제되게끔 돼 있다. 무엇보다 대기업 재무제표는 외감법상 회계감사 대상이 된다(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제4·5조). 외감법상 ‘내부회계관리제도’도 운영해야 한다(같은 법 제8조). 상법상의 ‘회계장부열람권’도 실제로는 대기업에서 주로 활용된다(상법 466조). 상장회사는 이사 총수의 4분의 1 이상을 사외이사로 둬야 하지만(상법 542조) 자본금 10억원 미만 회사는 감사를 선임하지 않을 수 있다(상법 409조).
대기업은 세무조사 대상으로 자주 선정된다(국세기준법 81조, 법인세 사무처리 규정 178조). 국세청 국세통계를 보면 수입금액 50억원 미만 기업이 세무조사를 받을 확률은 0.5%지만 500억원 이상은 10%, 5000억원 이상은 22.4%로 뛴다(2017년도 법인세 신고 기준). 대기업의 세무 정보는 공정거래위원회도 활용 가능하다(공정거래법 14조).
국회 국정감사도 주로 대기업이 타깃이다. ‘제4부 권력’이 된 사회·시민단체와 언론의 주된 관심사도 대기업에 기울어 있다. 법원까지 ‘언더도그마’에 기울어 대기업 오너와 경영진에 대해선 더 센 판결을 내리는 경우가 잦다. 대기업에 대한 국제 기준도 매우 엄격하다. 회계, 세무, 경영공시, 협력업체와의 관계 등에서 투명하지 않은 기업은 신용평가사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가령 삼성전자 발행주식의 절반 이상을 가진 외국인 투자자들은 이런 국제 기준에서 벗어나면 바로 주식을 내다팔 것이다. 투명하지 않으면 공공입찰 등을 제한하는 나라도 적지 않다.
한층 거칠어지는 대기업 규제…‘거대 여당’
21대 국회 어디로 가나
공인회계사회가 ‘회계투명성을 더 강화해 세원을 확충하고 신뢰자본도 쌓아가자’는 세미나를 개최한 당일 같은 시각 국회에서는 ‘기업지배구조 개선 토론회’가 열렸다. 박용진 민주당 의원이 자신의 1호 법안이라며 준비한 상법개정안 공청회였다. 집중투표제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선출, 다중대표소송제, 전자투표 의무제 도입이 핵심이다. 세미나에서는 오너경영 자체를 차단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을 폐지하고, 이른바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강화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도 같은 맥락에서 추진되고 있다.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이 없어지면 각종 사회단체의 기업 간섭은 경영진의 생사를 좌우할 지경이 될 수 있다. 여당이 앞장선 지 며칠 뒤 정부는 논란 많은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제 법제화는 시간 문제가 됐다.
코로나 쇼크 속에 기업의 기를 살리는 선진국들과 반대로, 기업 활동을 옥죄면서 경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한편으론 “한국형 뉴딜에 앞장서 달라”고 기업을 재촉하며, 다른 편에선 기업을 손보겠다는 식이면 누가 투자할 수 있겠나. 대통령 연설에서 ‘경제 민주주의’와 ‘평등경제’라는 구호까지 나와 경영계는 다시 긴장하고 있다. 세계시장에서 뛰는 ‘글로벌 기업’을 한국만의 ‘로컬 법’으로 규제를 강화한다는 비판이 적지 않지만 여권은 아랑곳하지 않는 분위기다. 정치부터 이러니 한국 특유의 반기업 정서가 쉽게 사라질 수가 없다.
정의기억연대 사태에서 보듯 정작 투명해져야 할 곳은 따로 있다. 공정과 정의를 내세우고 대기업 개혁을 외치는 정치·사회단체라면 오히려 대기업 수준의 투명경영과 회계·공시시스템을 배워야 할 것이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회계 투명하면 정보비대칭 감소…투자 확대, 탈세 억제에 기여"
회계 투명성 왜 중요한가
회계투명성은 안정적인 세원(稅源) 확보에 필수다. 상위 1% 대기업이 전체 법인세수의 74%를 납부하는 한국 현실을 감안하면 기업이든 개인이든 투명한 회계는 재정의 건실화와 직결된다. 투명성 제고는 경제와 사회를 선진화하는 ‘신뢰자본 구축’으로 시야를 넓혀 볼 필요도 있다. ○이영한 서울시립대 교수
회계투명성이 높을수록 기업 경영자와 자금 공여자 간 정보 비대칭이 감소한다. 투자효율성을 높이고 최적의 자원 배분, 자본비용 감소를 통한 투자 확대와 외국인 직접투자 증가에도 기여한다. 조세회피(세금탈루) 억제 효과도 입증됐다.
○이동규 서울시립대 교수
회계투명성이 높으면 ‘회계이익’과 ‘과세소득’ 간 차이(BTD)가 줄어 법인세수가 늘어난다. 특정 지출에 대한 비용 처리가 줄기 때문이다. 10년간 53개국의 통계적 사례로 입증된 사실이다.
○백태영 성균관대 교수
회계투명성의 중요성은 단지 재무회계적 관점에서 벗어나 다양한 분야에서의 효과 측면에서 논의할 필요가 있다. 세수 확대와 조세정의도 중요하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공정성·투명성·책임성을 강화하는 계기로 연구해나가야 한다.
○이동건 삼일회계법인 전무
국세청 업무를 비롯해 세무행정도 회계투명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회계투명성이 제고되면 기업 이익이 줄어들 수 있지만, 기업은 회계상 ‘이익 조정’보다 세액 감면이나 공제를 노릴 것이다.
○임동원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올해 경제성장률이 -1.2%로 예측된다. 정부 지출은 확대되는 데 비해 법인세수는 6년 만에 감소세로 반전했다. 회계투명성 제고가 기업 성과를 향상시키고 세원 확충에도 긍정적이면 기업 부담이 줄도록 회계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전병목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회계투명성의 효과를 투자자와의 관계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확한 정보 제공으로 투자자의 올바른 의사결정 유도도 기대할 수 있다.
○이재면 기획재정부 법인세제과장
비영리 법인에 대해서도 공익법인 회계 기준을 제정하고, 공시의무 대상도 확대해 왔다. 회계투명성을 세원투명성과 세원 확충 차원에서 추진하면서 이를 위한 인센티브가 작동하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세법상 개선 사항도 찾아볼 필요가 있다.
또 다른 관점은 ‘경제 위기 극복이 기업 노력 없이는 어렵다’는 현실론의 확대다. 여당보다는 정부 쪽에서 주로 나온다. ‘위기 돌파, 기업역할론’은 문재인 대통령도 연거푸 제기했다. 코로나 쇼크로 인한 ‘경제 전시상황’ ‘비상경제 시국’이라며 기업에 투자를 요청·독려하는 행사도 여러 번 했다. 이른바 투자활성화 대책, 일자리 대책도 반복됐다.
이처럼 여당의 국회 장악과 코로나 쇼크로 더 심각해진 경제난이라는 두 변수에 따라 상반된 주장, 때로는 모순된 정책이 혼재되어 나온다. 기업인들은 이렇게 묻고 싶을 것이다. “기업은 개혁 대상인가, 위기 돌파의 엔진인가. 슈퍼여당과 정부는 이 문제부터 솔직히 답해 보라.” “기업 규모 클수록 투명, 탈세 적어”
국세청 자료·공인회계사회 연구보고서
한국 기업은 과연 투명경영과는 거리가 먼 개혁 대상일까. 이달 초 한국공인회계사회가 한국세무학회와 공동으로 연 웹 세미나에서 이 문제와 관련해 의미 있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회계투명성 제고가 세원(稅源) 투명성 및 세원 확충에 미치는 영향’(이영한·이동규 서울시립대 교수, 전규안 숭실대 교수, 박성동 우남세무회계컨설팅 대표 공동연구)이라는 연구보고서가 그것이다. 세미나에선 한국 사회의 유별난 부정적 기업관과 반(反)기업 선동의 주요 근거로 거론돼온 경영투명성 논란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이 폭넓게 개진됐다.
연구보고서 내용 중 개인과 법인 사업자의 수입(외형) 규모별 소득탈루 현황 분석이 특히 주목을 끌 만했다. 국세청의 최근 ‘국세통계연보’가 인용·해석됐는데, 기업 규모가 클수록 소득탈루(탈세)율이 눈에 띄게 떨어진다는 사실이다(표 참조).
외형 100억원 이하 기업은 탈루율이 39~72%에 달한 반면, 5000억원 초과 대기업은 4.9%에 그쳤다. 대기업일수록 회계가 투명하고, 그만큼 조세포탈도 적다는 게 징세행정에서 확인된 셈이다. 이는 개인의 경우 1억원 이하 소규모 사업자(34.8%)와 50억원 초과 대규모 사업자(37.1%)가 탈세율에서 그다지 차이가 없는 것과 대비된다. 기업이 개인사업자보다 세금을 훨씬 성실·정확하게 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대기업은 여러 갈래의 감시체제로 투명경영이 제도적으로 확립돼 있다.
아울러 대기업 경영의 투명성이 최근 들어 더 나아졌다는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정책 용역과제로 연구한 ‘소규모 법인의 효율적인 세원관리 방안 연구’(이상엽·김빛마로 연구원, 2017년 11월)라는 별도 보고서를 보면, 2015년 기준으로 수입금액 5000억원을 넘는 기업의 탈루율은 6.2%였다. 이번에 나온 수치와 비교해 보면 보다 개선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강화돼온 법과 제도…투명회계·투명경영제고
세수 확대로 연결
공동연구자에 포함된 이영한 교수는 “기업 크기로 볼 때 수입금액 5000억원 이하 법인의 평균 소득 탈루율은 18.4%로 전체 기업 평균 7.1%의 2.6배에 달한다”며 “1000억원 이하가 더 문제”라고 지적했다. 투명성을 확보하자면 중소기업이 먼저라는 얘기다. 이동규 교수도 “기업 규모가 커지면 외부회계감사, 내부통제 구조와 기업지배 구조 정비 등으로 회계 정보 관련 규제가 강화되고, 회계투명성도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투명성 제고는 국세청 업무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세무조사를 줄일 수 있다. 그렇게 국세행정에 여력이 생기면 세무회계 자문 같은 ‘서비스행정’이 강화될 것이다.
한국경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대기업은 제도적 장치에 따라 회계투명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조세회피(세금탈루)’ 유인도 억제되게끔 돼 있다. 무엇보다 대기업 재무제표는 외감법상 회계감사 대상이 된다(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제4·5조). 외감법상 ‘내부회계관리제도’도 운영해야 한다(같은 법 제8조). 상법상의 ‘회계장부열람권’도 실제로는 대기업에서 주로 활용된다(상법 466조). 상장회사는 이사 총수의 4분의 1 이상을 사외이사로 둬야 하지만(상법 542조) 자본금 10억원 미만 회사는 감사를 선임하지 않을 수 있다(상법 409조).
대기업은 세무조사 대상으로 자주 선정된다(국세기준법 81조, 법인세 사무처리 규정 178조). 국세청 국세통계를 보면 수입금액 50억원 미만 기업이 세무조사를 받을 확률은 0.5%지만 500억원 이상은 10%, 5000억원 이상은 22.4%로 뛴다(2017년도 법인세 신고 기준). 대기업의 세무 정보는 공정거래위원회도 활용 가능하다(공정거래법 14조).
국회 국정감사도 주로 대기업이 타깃이다. ‘제4부 권력’이 된 사회·시민단체와 언론의 주된 관심사도 대기업에 기울어 있다. 법원까지 ‘언더도그마’에 기울어 대기업 오너와 경영진에 대해선 더 센 판결을 내리는 경우가 잦다. 대기업에 대한 국제 기준도 매우 엄격하다. 회계, 세무, 경영공시, 협력업체와의 관계 등에서 투명하지 않은 기업은 신용평가사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가령 삼성전자 발행주식의 절반 이상을 가진 외국인 투자자들은 이런 국제 기준에서 벗어나면 바로 주식을 내다팔 것이다. 투명하지 않으면 공공입찰 등을 제한하는 나라도 적지 않다.
한층 거칠어지는 대기업 규제…‘거대 여당’
21대 국회 어디로 가나
공인회계사회가 ‘회계투명성을 더 강화해 세원을 확충하고 신뢰자본도 쌓아가자’는 세미나를 개최한 당일 같은 시각 국회에서는 ‘기업지배구조 개선 토론회’가 열렸다. 박용진 민주당 의원이 자신의 1호 법안이라며 준비한 상법개정안 공청회였다. 집중투표제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선출, 다중대표소송제, 전자투표 의무제 도입이 핵심이다. 세미나에서는 오너경영 자체를 차단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을 폐지하고, 이른바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강화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도 같은 맥락에서 추진되고 있다.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이 없어지면 각종 사회단체의 기업 간섭은 경영진의 생사를 좌우할 지경이 될 수 있다. 여당이 앞장선 지 며칠 뒤 정부는 논란 많은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제 법제화는 시간 문제가 됐다.
코로나 쇼크 속에 기업의 기를 살리는 선진국들과 반대로, 기업 활동을 옥죄면서 경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한편으론 “한국형 뉴딜에 앞장서 달라”고 기업을 재촉하며, 다른 편에선 기업을 손보겠다는 식이면 누가 투자할 수 있겠나. 대통령 연설에서 ‘경제 민주주의’와 ‘평등경제’라는 구호까지 나와 경영계는 다시 긴장하고 있다. 세계시장에서 뛰는 ‘글로벌 기업’을 한국만의 ‘로컬 법’으로 규제를 강화한다는 비판이 적지 않지만 여권은 아랑곳하지 않는 분위기다. 정치부터 이러니 한국 특유의 반기업 정서가 쉽게 사라질 수가 없다.
정의기억연대 사태에서 보듯 정작 투명해져야 할 곳은 따로 있다. 공정과 정의를 내세우고 대기업 개혁을 외치는 정치·사회단체라면 오히려 대기업 수준의 투명경영과 회계·공시시스템을 배워야 할 것이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회계 투명하면 정보비대칭 감소…투자 확대, 탈세 억제에 기여"
회계 투명성 왜 중요한가
회계투명성은 안정적인 세원(稅源) 확보에 필수다. 상위 1% 대기업이 전체 법인세수의 74%를 납부하는 한국 현실을 감안하면 기업이든 개인이든 투명한 회계는 재정의 건실화와 직결된다. 투명성 제고는 경제와 사회를 선진화하는 ‘신뢰자본 구축’으로 시야를 넓혀 볼 필요도 있다. ○이영한 서울시립대 교수
회계투명성이 높을수록 기업 경영자와 자금 공여자 간 정보 비대칭이 감소한다. 투자효율성을 높이고 최적의 자원 배분, 자본비용 감소를 통한 투자 확대와 외국인 직접투자 증가에도 기여한다. 조세회피(세금탈루) 억제 효과도 입증됐다.
○이동규 서울시립대 교수
회계투명성이 높으면 ‘회계이익’과 ‘과세소득’ 간 차이(BTD)가 줄어 법인세수가 늘어난다. 특정 지출에 대한 비용 처리가 줄기 때문이다. 10년간 53개국의 통계적 사례로 입증된 사실이다.
○백태영 성균관대 교수
회계투명성의 중요성은 단지 재무회계적 관점에서 벗어나 다양한 분야에서의 효과 측면에서 논의할 필요가 있다. 세수 확대와 조세정의도 중요하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공정성·투명성·책임성을 강화하는 계기로 연구해나가야 한다.
○이동건 삼일회계법인 전무
국세청 업무를 비롯해 세무행정도 회계투명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회계투명성이 제고되면 기업 이익이 줄어들 수 있지만, 기업은 회계상 ‘이익 조정’보다 세액 감면이나 공제를 노릴 것이다.
○임동원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올해 경제성장률이 -1.2%로 예측된다. 정부 지출은 확대되는 데 비해 법인세수는 6년 만에 감소세로 반전했다. 회계투명성 제고가 기업 성과를 향상시키고 세원 확충에도 긍정적이면 기업 부담이 줄도록 회계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전병목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회계투명성의 효과를 투자자와의 관계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확한 정보 제공으로 투자자의 올바른 의사결정 유도도 기대할 수 있다.
○이재면 기획재정부 법인세제과장
비영리 법인에 대해서도 공익법인 회계 기준을 제정하고, 공시의무 대상도 확대해 왔다. 회계투명성을 세원투명성과 세원 확충 차원에서 추진하면서 이를 위한 인센티브가 작동하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세법상 개선 사항도 찾아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