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거미에서 이름을 따온 한화디펜스의 궤도장갑차 레드백.  한화디펜스 제공
독거미에서 이름을 따온 한화디펜스의 궤도장갑차 레드백. 한화디펜스 제공
‘독거미 vs 스라소니.’

조(兆) 단위의 사업권이 걸린 호주의 ‘미래형 궤도장갑차 도입 사업’의 결승전은 이같이 요약됐다. 지난해 9월 호주 정부는 이 사업의 최종 후보로 한화디펜스의 레드백과 독일 라인메탈디펜스의 링스를 선정했다.

레드백이란 이름은 호주 토착 독거미인 붉은배과부거미에서 따왔다. 강력한 독을 품고 있어 새와 뱀까지 사냥하는 포식자다. 한화디펜스 관계자는 “첨단 시스템을 적용해 강력한 전투력을 갖춘 장갑차라는 걸 강조하면서 발주처인 호주의 자주국방 정책과도 어울리는 브랜드명을 고심했다”고 설명했다. 독일 대표 장갑차인 링스는 스라소니라는 뜻이다. 스라소니처럼 날렵한 기동력이 강점이다. 이들은 내년 말 결정되는 최종 수주를 놓고 경쟁한다. 호주의 미래형 궤도장갑차 획득 사업은 8조∼12조원 규모로, 장비 획득에만 5조원이 편성돼 있다.

방산 브랜드도 경쟁력

세계 방산시장에서 성능 못지않게 브랜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국내 방산업체들도 내수 중심 사업구조에서 벗어나 수출을 늘리기 위해 신무기의 브랜드를 만드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일반적으로 국방부, 방위사업청 등 발주 기관에서 제품명을 지어온 것과는 다른 흐름이다.

한화시스템은 개발 중인 드론 감시용 레이더 브랜드명을 사내 공모로 정하기로 했다. 발주 기관 대신 사내에서 드론 감시용 레이더 브랜드를 기획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화는 드론을 무력화하는 안티드론 세계 시장 규모가 2019년 5억달러 수준에서 2024년까지 23억달러로 급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려면 기술력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게 한화의 판단이다. 한화시스템은 빼어난 성능을 강조하기 위해 열영상 카메라 브랜드명을 퀀텀아이로 정했다. 사내 공모를 통해 새 이름을 갖게 된 퀀텀아이는 중동, 동남아시아를 집중 공략 시장으로 삼고 있다.

톡톡 튀는 이름으로 해외 공략

방산업계가 해외 매출을 올리는 데 집중하는 이유는 국내 수주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내수 방산 수주만으로는 이익을 내기 어려워 해외에서 돌파구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한화디펜스는 작년 3800억원이던 해외 매출을 2025년까지 1조9000억원으로 키우겠다는 방침이다. 작년 기준 13%가량인 해외 매출 비중도 2025년에는 50%로 끌어 올리는 것이 목표다. LIG넥스원도 2016년 6.1%였던 해외 매출 비중을 3년 만인 지난해 12.8%로 두 배 이상 끌어 올렸다.

방산업체들은 브랜드 마케팅을 통해 글로벌 수주전에서 해외 무기시장 후발주자라는 불리한 이미지를 벗겨내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 업체들은 국내에서는 브랜드 이름이 크게 중요하지 않지만 해외에서는 사정이 달라진다고 설명한다. 대표 토종 무기인 K9 자주포도 해외에 나갈 때는 브랜드가 달라진다.

한화디펜스는 2017년 K9자주포를 인도에 수출할 때 K9바지라라는 브랜드를 앞세웠다. 힌디어로 천둥이라는 뜻을 가진 바지라는 인도 고대 신의 무기 이름이다. 인도 정부는 애초 올 11월 실전 배치하기로 했던 K9바지라를 지난 3월 배치했다.

임락근 기자 rkl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