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년 전의 ‘경영수업’ > 롯데그룹 후계자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으로 한다는 내용의 고(故) 신격호 명예회장의 유언장이 24일 공개됨에 따라 롯데그룹 후계자 논란이 일단락됐다. 사진은 1991년 5월 서울 롯데백화점 영등포점 개점식에 참석한 신 명예회장(왼쪽)과 신 회장(오른쪽).   /롯데그룹 제공
< 30년 전의 ‘경영수업’ > 롯데그룹 후계자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으로 한다는 내용의 고(故) 신격호 명예회장의 유언장이 24일 공개됨에 따라 롯데그룹 후계자 논란이 일단락됐다. 사진은 1991년 5월 서울 롯데백화점 영등포점 개점식에 참석한 신 명예회장(왼쪽)과 신 회장(오른쪽). /롯데그룹 제공
지난 1월 타계한 롯데 창업주 신격호 명예회장의 유언장이 24일 공개됐다. “한국, 일본 롯데그룹 후계자는 (차남) 신동빈으로 한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신 명예회장의 장남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이 지금까지 주장했던 것과 다르다. 그는 ‘장자 승계 원칙’과 신 명예회장 ‘뜻’을 내세워 신동빈 회장을 상대로 ‘경영권 분쟁’을 벌여왔다.

이 유언장이 발견된 직후 이날 열린 일본 롯데홀딩스 주주총회에서 신동빈 회장은 일본 롯데홀딩스의 이사회 의장, 단독 대표이사 사장 등의 자리에 올랐다. 과거 신 명예회장의 지위를 모두 물려받았다. 한국과 일본 롯데를 완벽하게 통제하게 됐다. 신 회장은 “대내외 경제상황이 어려운 만큼 부친의 업적과 정신 계승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며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로 그룹을 이끌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신격호 유언장 공개

이날 롯데그룹에 따르면 신 명예회장의 유언장은 지난달 말께 그의 도쿄 집무실을 정리하던 도중 금고에서 나왔다. 신 명예회장이 사망하고 상속 재산을 명확히 하려면 집무실을 확인하는 절차를 거쳐야 했다. 이전에는 신 명예회장의 허락 없이 그의 집무실에 들어가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도쿄 집무실 정리에는 일본 롯데홀딩스 직원들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금고 안에서 ‘유언장’이라고 쓰인 봉투를 발견하고 곧바로 상속인들에게 알렸다. 상속인은 신동빈 회장과 신동주 회장, 신영자 전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신유미 씨 등 4명이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상속인들이 일본에 자유롭게 갈 수 없다는 것을 감안해 법정 대리인들이 내용을 같이 봤다”며 “다만 법적 효력이 있는 유언장은 아니며, 창업주의 의지를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

유언장은 지난 11일 도쿄 가정재판소 가사 제3부에서 신 명예회장 상속인들의 법정대리인 입회 아래 개봉됐다. 작성일은 2000년 3월 4일로 돼 있었다. 신 명예회장이 왕성하게 경영활동을 한 시기다. 신 명예회장이 자필로 유언장을 적었다. 첫 번째 줄은 ‘사후 롯데그룹의 한국, 일본 후계자는 신동빈으로 한다’는 내용이다. 두 번째 줄은 ‘장남 신동주는 롯데그룹 각사의 실무와 인사에 관여하지 않는다’, 세 번째 줄은 ‘나의 형제들은 롯데그룹 경영에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 순으로 쓰여 있었다.

유언장이 작성됐을 당시 신 회장은 ‘경영수업’을 받고 있었다. 1997년 한국 롯데 부회장에 올랐고 이후 세븐일레븐, 롯데닷컴 등 계열사를 돌며 대표를 지냈다. 신 명예회장은 유언장 작성 이후 그룹의 큰 의사 결정에 적극적으로 역할을 맡겼다. 국내 최고층 빌딩 롯데월드타워 개발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당시 실무진은 “두 동짜리 주상복합건물을 짓는 게 사업성이 더 좋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신 명예회장은 최고층 빌딩을 고집하며 신 회장의 의견을 자주 물었다. 이 관계자는 “돌이켜 생각해보면, 당시 신 명예회장은 자신의 후계자로 신 회장을 염두에 두고 혹독하게 단련한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홀딩스 단독 대표 올라

롯데는 이날 도쿄에서 열린 롯데홀딩스 주주총회에서 신 회장을 일본 롯데홀딩스 사장 겸 최고경영자(CEO)로 선임했다고 밝혔다. 신 회장은 지난 4월 일본 롯데 회장 자리에 이미 올랐다. 공동 대표도 맡고 있었다. 그럼에도 굳이 CEO 선임을 강조한 것은 기존 쓰쿠다 다카유키 사장 역할까지 신 회장이 맡게 됐기 때문이다. 일본에선 회장 직함과 별개로 CEO에 사장 직함을 붙인다. 신 회장이 대외적으로 일본 롯데를 대표할 뿐 아니라 실무적으로도 경영을 총괄하게 됐다는 의미다. 유언장을 통해 후계자임이 명확히 드러난 만큼 일본 롯데도 ‘단독 경영’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반면 신동주 회장이 이날 제안한 안건은 모두 부결됐다. 그는 신동빈 회장의 이사 해임안과 정관변경안을 올렸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