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후드 공동 창업자, 모든 사람이 금융거래 할 수 있게 '수수료 제로' 모바일 증권사 세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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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주 바트·블라디미르 테네프
창업 4년 만에 '유니콘'으로 키워
스탠퍼드大 룸메이트
월가 점령 시위대 보고
수수료 없는 증권사 착안
창업 4년 만에 '유니콘'으로 키워
스탠퍼드大 룸메이트
월가 점령 시위대 보고
수수료 없는 증권사 착안
2011년 가을, 분노에 찬 청년들이 미국 뉴욕의 월가에서 시위를 벌였다.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는 구호를 내세운 집회였다. 이들은 상위 1%가 장악한 미국의 부(富)를 재분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스타트업의 요람으로 불리는 스탠퍼드대 출신인 바이주 바트와 블라디미르 테네프는 당시 뉴욕에서 증권사와 헤지펀드를 위한 대량거래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회사를 막 창업한 상태였다.
이들은 시위대를 보면서 실리콘밸리 투자자들이 보기에 말도 안 되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수수료 없는 주식거래 회사를 설립하겠다는 발상이었다. 기관투자가 등 거래량이 많은 고객은 증권사에 내는 수수료가 개인투자자보다 훨씬 적다는 점도 아이디어의 배경이 됐다. 가입자를 많이 확보하면 고객 예탁금을 이용해 수익을 낼 수도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들은 2013년 4월 ‘수수료 제로’ 모바일 주식거래 회사인 로빈후드를 창업했다. 중세 영국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 속의 의적(義賊) 로빈후드처럼 부조리에 대항하자는 뜻을 담았다.
바트 공동 최고경영자(CEO)는 “금융업계에서 몇 년 일해 보니 자본시장은 일부만을 위해 허용된 시장이라는 점을 알게 됐다. 그리고 그것은 건당 10달러에 달하는 수수료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당시 미국 증권사들은 주식 거래 수수료를 건당 7~10달러씩 받았다. 계좌를 개설할 때 예치금으로 많게는 1만달러까지 요구했다.
테네프 공동 CEO는 “금융산업은 개인의 자산과 관계없이 모든 이에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며 “모든 미국인이 금융 거래를 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고 말했다.
로빈후드는 거래 수수료는 물론 등록 예치금도 없앴다. 오프라인 지점도 없고 리서치센터와 마케팅 조직, 직접 주식투자를 하는 트레이딩 부서도 두지 않았다. 이런 시스템은 창업 이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두 공동 CEO의 공통점 중 하나는 교육열이 높은 이민자 가정 출신이라는 점이다. 바트는 인도계 가정에서 태어났고, 테네프 가족은 그가 5세 때 세계은행(WB)에 근무하는 아버지를 따라 불가리아에서 이주했다.
이들은 스탠퍼드대 재학 시절 룸메이트로 만나 창업까지 함께했다. 바트는 스탠퍼드대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수학 석사를 취득했다. 테네프는 수학과를 졸업한 뒤 UCLA에서 수학으로 석사를 땄다.
이들의 수수료 제로 사업 모델은 처음엔 실리콘밸리에서 인정받지 못했다. “젊은 사람들은 주식투자를 하지 않는다”고 하는 벤처캐피털(VC)도 있었다. 물론 이들의 판단은 현재 완전히 틀린 것으로 드러났다. 젊은이들은 로빈후드 앱을 통해 주식은 물론 옵션, 상장지수펀드(ETF), 비트코인까지 거래하고 있다.
이들은 “투자를 받을 때까지 75번이나 퇴짜를 맞았다”고 할 정도로 투자금 유치에 어려움을 겪었다. 증권 거래 면허를 취득할 때까지 월급을 받지 않겠다는 조건을 걸고서야 어렵사리 투자자를 찾아냈다.
1년 넘는 준비 기간에 이들은 밀레니얼 세대(2000년 이후 성인이 된 세대)를 타깃으로 ‘쉬운’ 앱을 개발했다. 2014년 12월 정식 서비스를 시작한 뒤 한 달 만에 10만 명의 고객을 확보했다. 지난해 말에는 600만 명으로 늘어났고, 현재는 1300만 명에 달한다. 고객 평균 연령은 31세로 매우 젊다. 수수료 제로의 파괴력은 그만큼 컸다.
테네프는 “지금까지 로빈후드 앱을 통해 절약된 주식 거래 수수료가 10억달러를 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뉴욕타임스는 로빈후드 돌풍에 미국 주요 증권사들이 수수료를 35% 이상 낮춘 것으로 집계했다.
이들이 일으킨 수수료 인하 바람은 증권업계 구조조정으로도 이어졌다. 미국 1위 온라인 증권사인 찰스슈와브는 지난해 10월 건당 4.95달러이던 주식 거래 수수료를 ‘0’으로 낮췄고 TD아메리트레이드, E트레이드, 피델리티 등도 이런 움직임을 따라갔다. 찰스슈와브는 한 달 뒤인 11월 2위 TD아메리트레이드와 합병했다. 이어 지난 2월에는 모건스탠리가 E트레이드를 인수했다.
창업 당시엔 투자자를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던 로빈후드는 2017년 1억1000만달러의 투자를 유치하며 13억달러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4년 만에 ‘유니콘(기업가치가 10억달러를 넘는 스타트업)’이 된 것이다. 지난 5월에는 구글 등 10여 곳으로부터 총 2억8000만달러의 자금을 유치했고, 기업가치는 83억달러(약 10조300억원)로 뛰었다. 총 여덟 차례의 투자자 모집에서 끌어모은 자금은 12억달러에 이른다.
바트와 테네프의 궁극적인 목표는 소비자들이 주식 외 다른 금융 거래도 모두 로빈후드로 할 수 있도록 앱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바트는 “로빈후드 앱에서 더 다양한 기능과 서비스를 제공하면 소비자들도 훨씬 편하게 금융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로빈후드는 2018년부터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를 1000달러 아래에서 수수료 없이 거래할 수 있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또 올 하반기 영국을 시작으로 글로벌 시장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이달 초 로빈후드 앱을 이용해 옵션거래를 하던 20세 투자자가 대규모 손실을 본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로빈후드는 젊은이들의 무분별한 투자를 부추긴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로빈후드는 이에 복잡한 파생상품에 투자하는 고객에게 추가 인증을 요구하는 등 안전장치를 확대하기로 했다.
테네프는 “수백만 명의 신규 투자자가 로빈후드를 통해 첫 투자를 하면서 로빈후드가 미국 개인투자자와 동의어가 된 것은 좋은 일이지만, 우리는 이번 사태의 책임을 인정하며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의 목표는 혁신하고 시장을 주도하며 현재 상태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
미국 스타트업의 요람으로 불리는 스탠퍼드대 출신인 바이주 바트와 블라디미르 테네프는 당시 뉴욕에서 증권사와 헤지펀드를 위한 대량거래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회사를 막 창업한 상태였다.
이들은 시위대를 보면서 실리콘밸리 투자자들이 보기에 말도 안 되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수수료 없는 주식거래 회사를 설립하겠다는 발상이었다. 기관투자가 등 거래량이 많은 고객은 증권사에 내는 수수료가 개인투자자보다 훨씬 적다는 점도 아이디어의 배경이 됐다. 가입자를 많이 확보하면 고객 예탁금을 이용해 수익을 낼 수도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들은 2013년 4월 ‘수수료 제로’ 모바일 주식거래 회사인 로빈후드를 창업했다. 중세 영국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 속의 의적(義賊) 로빈후드처럼 부조리에 대항하자는 뜻을 담았다.
바트 공동 최고경영자(CEO)는 “금융업계에서 몇 년 일해 보니 자본시장은 일부만을 위해 허용된 시장이라는 점을 알게 됐다. 그리고 그것은 건당 10달러에 달하는 수수료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당시 미국 증권사들은 주식 거래 수수료를 건당 7~10달러씩 받았다. 계좌를 개설할 때 예치금으로 많게는 1만달러까지 요구했다.
테네프 공동 CEO는 “금융산업은 개인의 자산과 관계없이 모든 이에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며 “모든 미국인이 금융 거래를 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고 말했다.
로빈후드는 거래 수수료는 물론 등록 예치금도 없앴다. 오프라인 지점도 없고 리서치센터와 마케팅 조직, 직접 주식투자를 하는 트레이딩 부서도 두지 않았다. 이런 시스템은 창업 이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두 공동 CEO의 공통점 중 하나는 교육열이 높은 이민자 가정 출신이라는 점이다. 바트는 인도계 가정에서 태어났고, 테네프 가족은 그가 5세 때 세계은행(WB)에 근무하는 아버지를 따라 불가리아에서 이주했다.
이들은 스탠퍼드대 재학 시절 룸메이트로 만나 창업까지 함께했다. 바트는 스탠퍼드대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수학 석사를 취득했다. 테네프는 수학과를 졸업한 뒤 UCLA에서 수학으로 석사를 땄다.
이들의 수수료 제로 사업 모델은 처음엔 실리콘밸리에서 인정받지 못했다. “젊은 사람들은 주식투자를 하지 않는다”고 하는 벤처캐피털(VC)도 있었다. 물론 이들의 판단은 현재 완전히 틀린 것으로 드러났다. 젊은이들은 로빈후드 앱을 통해 주식은 물론 옵션, 상장지수펀드(ETF), 비트코인까지 거래하고 있다.
이들은 “투자를 받을 때까지 75번이나 퇴짜를 맞았다”고 할 정도로 투자금 유치에 어려움을 겪었다. 증권 거래 면허를 취득할 때까지 월급을 받지 않겠다는 조건을 걸고서야 어렵사리 투자자를 찾아냈다.
1년 넘는 준비 기간에 이들은 밀레니얼 세대(2000년 이후 성인이 된 세대)를 타깃으로 ‘쉬운’ 앱을 개발했다. 2014년 12월 정식 서비스를 시작한 뒤 한 달 만에 10만 명의 고객을 확보했다. 지난해 말에는 600만 명으로 늘어났고, 현재는 1300만 명에 달한다. 고객 평균 연령은 31세로 매우 젊다. 수수료 제로의 파괴력은 그만큼 컸다.
테네프는 “지금까지 로빈후드 앱을 통해 절약된 주식 거래 수수료가 10억달러를 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뉴욕타임스는 로빈후드 돌풍에 미국 주요 증권사들이 수수료를 35% 이상 낮춘 것으로 집계했다.
이들이 일으킨 수수료 인하 바람은 증권업계 구조조정으로도 이어졌다. 미국 1위 온라인 증권사인 찰스슈와브는 지난해 10월 건당 4.95달러이던 주식 거래 수수료를 ‘0’으로 낮췄고 TD아메리트레이드, E트레이드, 피델리티 등도 이런 움직임을 따라갔다. 찰스슈와브는 한 달 뒤인 11월 2위 TD아메리트레이드와 합병했다. 이어 지난 2월에는 모건스탠리가 E트레이드를 인수했다.
창업 당시엔 투자자를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던 로빈후드는 2017년 1억1000만달러의 투자를 유치하며 13억달러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4년 만에 ‘유니콘(기업가치가 10억달러를 넘는 스타트업)’이 된 것이다. 지난 5월에는 구글 등 10여 곳으로부터 총 2억8000만달러의 자금을 유치했고, 기업가치는 83억달러(약 10조300억원)로 뛰었다. 총 여덟 차례의 투자자 모집에서 끌어모은 자금은 12억달러에 이른다.
바트와 테네프의 궁극적인 목표는 소비자들이 주식 외 다른 금융 거래도 모두 로빈후드로 할 수 있도록 앱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바트는 “로빈후드 앱에서 더 다양한 기능과 서비스를 제공하면 소비자들도 훨씬 편하게 금융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로빈후드는 2018년부터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를 1000달러 아래에서 수수료 없이 거래할 수 있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또 올 하반기 영국을 시작으로 글로벌 시장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이달 초 로빈후드 앱을 이용해 옵션거래를 하던 20세 투자자가 대규모 손실을 본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로빈후드는 젊은이들의 무분별한 투자를 부추긴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로빈후드는 이에 복잡한 파생상품에 투자하는 고객에게 추가 인증을 요구하는 등 안전장치를 확대하기로 했다.
테네프는 “수백만 명의 신규 투자자가 로빈후드를 통해 첫 투자를 하면서 로빈후드가 미국 개인투자자와 동의어가 된 것은 좋은 일이지만, 우리는 이번 사태의 책임을 인정하며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의 목표는 혁신하고 시장을 주도하며 현재 상태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