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가 페이스북에 광고한다는 이유로 소비자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고 있어요. 그동안 쌓아온 브랜드 평판이 흔들릴 판입니다.”

24일(현지시간) 페이스북이 자사에 광고하는 기업 200여 곳을 상대로 개최한 콘퍼런스콜에선 질타가 쏟아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올린 선동적인 게시물을 방치하는 등 페이스북이 인종주의 확산에 일조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었다. 기업들은 광고를 중단하겠다며 페이스북을 압박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25일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으로 촉발된 인종차별 철폐 시위가 거세지는 가운데 기업들이 소비자를 의식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평판을 중시하는 기업들이 사회 이슈에 적극 참여하면서 다른 기업을 압박하는 행태가 두드러지고 있다는 것이다.
"인종차별 페이스북과 거래 중단"…사회적 평판에 민감해진 기업들
“똑바로 행동하라” 거세진 목소리

페이스북이 여러 기업의 타깃이 된 것은 지난달 29일 트럼프 대통령이 띄운 ‘약탈이 시작되면 총격도 시작된다’는 게시물이 계기가 됐다. 플로이드 사망으로 불붙은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미 전역으로 확산하던 시점이었다. 트위터가 같은 트럼프 게시물에 대해 ‘폭력 조장 우려가 있다’며 경고 딱지를 붙인 반면 페이스북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가 “(트럼프를 포함한 게시자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고 밝힌 데 이어 ‘저커버그가 트럼프와 통화했다”는 언론 보도까지 나오자 여론이 악화했다.

흑인 인권단체 등은 “페이스북이 혐오 콘텐츠와 가짜뉴스 확산을 방치하고 있다”며 보이콧을 제안해 소셜미디어(SNS)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다. 일반 기업들도 가세하기 시작했다. 노스페이스·파타고니아(의류), 벤앤제리스(식품), 업워크(인력채용), 브레이즈(소프트웨어) 등 다양한 업종의 기업 20여 곳이 “다음달부터 페이스북에서 광고를 빼겠다”고 발표했다. 페이스북은 구글에 이은 미국 2위 온라인 광고업체로, 작년 광고 매출만 700억달러(약 84조원)에 달했다.

‘페이스북 보이콧’에 나선 기업에 대해 상당수 소비자는 지지를 보내고 있다. 자신들의 목소리를 적극 대변해줬다는 것이다. 닐 포츠 페이스북 신뢰 및 안전 책임자는 “페이스북 신뢰에 금이 간 것은 사실”이라며 “시민단체들과 함께 플랫폼 개선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새 소비 가치로 등장한 공정·환경

민감한 정치·사회 현안을 놓고 직접 행동에 나서는 기업은 갈수록 늘고 있다. 아마존 IBM 등 정보기술(IT) 기업들은 최근 미 정부에 안면인식 기술을 제공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 굴지의 IT업체들은 안면인식 소프트웨어가 경찰 등 당국의 인종 프로파일링(특정 인종을 기반으로 용의자를 단속하는 수사 기법)에 악용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H&M·VF코퍼레이션(의류), 카르푸·테스코(유통), 네슬레·카길(식품) 등 글로벌 기업 10여 곳은 남미 열대우림 지역의 원부자재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삼림 파괴를 막겠다는 취지다.

기업들의 이 같은 변화는 소비자뿐만 아니라 내부 직원들까지 회사에 입장을 밝힐 것을 요구하는 등 사회 분위기가 과거와 달라졌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란 전례없는 전염병 사태를 맞아 기업의 사회적 역할 확대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SNS가 강력한 소통 창구로 자리 잡으면서 여론 전환 및 확산 속도가 빨라진 것도 또 다른 배경이다.

뉴욕타임스는 “예전엔 기업이 나서면 자칫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인식이 팽배했으나 이제는 달라졌다”며 “기업들의 사회 참여는 밀레니얼 세대 소비자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신문은 “젊은 소비자들은 자신이 일하는 회사나 구입하는 제품을 만드는 업체가 사회 문제에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이들이 높이 평가하는 가치는 윤리와 젠더(성평등), 공정, 환경 등”이라고 했다.

미 최대 경영자단체인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BRT)도 작년 8월 기업 목적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발표하면서 이런 변화를 예고했다. 미 기업 CEO 181명은 당시 성명에서 “이윤과 주주가치 제고라는 눈앞의 이익을 넘어 고객과 근로자, 협력업체, 지역사회 등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기업들의 기본 철학이 바뀌고 있다”며 “미 대선을 앞두고 경제 불평등과 불공정 거래 등 이슈가 불거지자 경제계가 선제적으로 대응하려는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