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삼성의 반도체 복합위기는 '현재 진행형'
지난해 7월 4일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한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를 전격 시행했다. 유탄을 맞은 한국 기업들은 대체품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정부는 ‘국산화’란 구호를 내세워 부랴부랴 소재·부품·장비산업 지원에 나섰다. 그리고 1년이 지났다. 일각에선 ‘전화위복’이라는 말의 성찬과 함께 “일본을 이겼다”고 자축하고 있다.

하지만 현장 분위기는 다르다. “여전히 살얼음판 위를 걷고 있다”는 의견이 많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반도체 사업장을 찾고 있는 건 상황이 그만큼 엄중하다는 뜻이다. “가혹한 위기 상황”이란 최근 발언에선 절망감마저 느껴진다.

반면 위기론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도 있다. “반도체 위기론은 과장됐다. 다른 의도가 있다”는 시선이다. 전문가들은 “반도체산업의 ‘복합 위기’가 현재 진행형이란 건 조금만 관심을 가져도 알 수 있다”며 “넘어야 할 산이 한두 개가 아니다”고 진단했다.

대표적인 과제가 소재 조달처 다변화다. 솔브레인 등 일부 업체가 액체 불화수소를 국산화하는 성과를 거뒀지만 ‘작은 성공’에 불과하다. EUV(극자외선) 노광공정(빛으로 웨이퍼에 회로를 새기는 것)용 포토레지스트(감광액) 양산 성공 소식은 여전히 들리지 않고 있다. 규제 대상에 포함되진 않았지만 일본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품목이 200여 종이란 분석도 있다.

국제 정세도 심상치 않다. 지난해부터 본격화한 미·중 반도체 패권 다툼이 격화하고 있다. 중국 화웨이의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주문을 삼성전자가 고사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강대국 싸움에 낀 삼성전자가 돈 되는 거래를 걷어차는 ‘이상한 상황’이다.

삼성에 대한 견제도 거세지고 있다. 파운드리 시장 세계 1위 대만 TSMC는 삼성이 대규모 투자를 발표할 때마다 상응하는 증설 소식을 내놓고 있다. SMIC 등 중국 정부와 한 몸인 중국 반도체 기업이 ‘턱밑까지 따라붙었다’는 우려도 작지 않다.

항간엔 “연예인 걱정만큼 쓸데없는 게 대기업 걱정”이란 얘기가 나돈다. 막대한 부를 기반으로 스스로 생존할 테니 도울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맞는 얘기일 수 있다. 지금껏 삼성 현대차 SK LG 등은 자력으로 치열한 경쟁을 뚫고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모든 국가가 코로나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자국 기업 살리기’에 나선 상황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기업들의 선방이 당연시되면서 위기를 과장으로 몰아가는 사회적 시선에 더 절망감을 느낀다”는 한 최고경영자(CEO)의 하소연이 빈말로 들리지 않는다. 밀어주지는 못하더라도 사력을 다해 뛰는 기업의 발목에 ‘모래주머니’까지 채울 필요는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