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노조는 사회적 책임 다하고 있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지난 18일 중앙집행위원회를 열고, 내년도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25.4% 인상한 시급 1만770원으로 요구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최저임금 인상 외에 △초단시간 근로자에게도 주휴수당 적용 △최저임금 산입 범위 축소 △기업 임원의 급여를 제한하는 최고임금제 도입 △일자리 안정자금 지원 확대 등 네 가지 요구안을 추가로 제시했다. 모두 기업의 경영환경을 악화시키는 요구다.

정부, 공공기관, 기업, 민간단체, 노조 등 모든 조직은 그 조직이 속한 사회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 있다. 국제표준화기구(ISO)는 2010년 사회적 책임(SR)에 관한 국제 표준으로 ISO 26000을 제정했다. 이 표준에는 조직이 경영에서 핵심 주제로 다뤄야 할 일곱 가지(조직 거버넌스, 인권, 노동 관행, 환경, 공정 운영, 소비자 이슈, 지역사회 참여)와 이를 실천하기 위한 37개 이슈를 제시하고 있다.

기업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 있고, 노조도 하나의 조직이므로 노조의 사회적 책임(USR)이 있다. CSR은 기업이 존속하기 위한 이윤 추구 활동 외에 법령과 윤리를 준수하고 이해관계자 요구에 적극적으로 대응함으로써 기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도모하고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책임 있는 활동을 말한다. USR은 노조가 조합원의 기득권을 높이는 데 그치지 않고, 장기적으로 기업이 지속 가능하게 존속·발전하기 위해 이해관계자들(종업원, 주주, 지역주민, 협력업체, 소비자 등)의 이익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노조만을 위한 민주노총 등의 강경 투쟁 노선이 오랜 기간 지속돼 오면서 우리나라 노사 협력은 열악한 상황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매년 발표하는 세계 인적자원 경쟁력지수(GTCI)에 따르면 노사관계의 안정성을 볼 수 있는 노사협력지수에서 한국은 2019년 120위를 기록해 최하위 수준이다. 국내 노동시장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기업에 따라 유(有)노조와 무(無)노조로 구분돼 양극화가 심화돼 있고, 노조 내부의 권력 투쟁도 심하다. 강경 일변도의 투쟁 방식은 노사 협력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한국은 1970년대와 1980년대 산업화 과정을 거쳤다. 노동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에 힘입어 급속한 경제 발전에 성공했는데 임금 수준은 낮았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1987년 성과 분배에 대한 노동자 투쟁 이후 30여 년이 흐른 지금, 노동자의 임금 수준은 선진국 수준에 도달해 있고, 노조의 조직화도 급속히 증대됐다. 이런 투쟁 과정에서 파업을 일삼으며 대기업을 악덕 기업으로 몰고, 생산성과 품질 향상을 도모하려는 기업 경영의 발목 잡기 같은 행태로 노조 활동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준 것도 사실이다.

민주노총과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을 포함해 우리 기업의 노조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침체의 늪에 빠져 있는 경제를 살리기 위한 사회적 책임을 갖고 있다. 조합원의 이익만을 위한 활동에서 벗어나 노조도 기업도 경제도 모두 살리는 방향으로 사회적 책임을 실천해야 한다. 코로나 사태로 휘청대는 경제 상황을 고려하면 무엇보다 내년도 최저임금을 동결하는 것이 마땅하다. 민주노총이 결단을 내린다면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작용하던 노사관계가 대전환을 이뤄 ‘코리아 프리미엄’으로 날개를 달 수도 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기업과 자영업자는 생존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기업은 최대한 고용을 유지하고, 노조는 휴직과 임금 동결을 참아내고, 정부는 그런 기업을 최대한 지원하는 게 최선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코로나 위기를 돌파해야 하는 기업과 노조의 사회적 책임이다. 적대적 노사관계를 청산하고 상생관계로 전환하기 위해 노사 모두 사회적 책임에 대한 새로운 역할을 모색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