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매물 품귀에 전월세값도 상승세
코로나19로 교육열 식으면서 떠나기도…
현대판 맹모(孟母)로 불리는 대치맘들이 쫒겨날 신세로 몰리고 있다. 실거주하려는 집주인이 늘면서 전월세 물량이 줄고 있는데다, 전월세도 오르고 있어서다. 양도세의 거주요건 강화로 강남에서는 집주인들이 직접 들어가 사는 추세가 됐다. 그나마 세입자들의 천국으로 여겨졌던 은마아파트라는 대안도 사라질 처지가 됐다. 은마아파트는 6·17 부동산 대책 가운데 재건축 단지에 최소 2년 이상을 실제로 살아야 분양권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규제에 해당된다. 여기에 대치동은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여 전세 낀 갭투자가 원천차단됐다. 행여라도 집주인이 물건을 내놓게 되면, 실거주 매수인이 들어온다는 얘기다.
○ 줄어드는 전월세 물건…"그나마 은마가 있었는데"
그동안 은마아파트는 맹모들의 교육 성지(聖地)였다. 주거환경은 열악해도 낮은 전월세로 몇년만 참으면서 학교나 학원을 보낼 수 있는 최적의 입지였기 때문이다. 명문학군과 학원을 모두 도보로 통학할 수 있고, 대단지다보니 상가의 인프라도 풍부하다. 낡은 아파트에 세 들어산다고 주눅들기엔, 은마아파트 세입자가 워낙 많다보니 이러한 분위기도 없었다. 은마아파트는 4424가구 가운데 70%에 가까운 3000가구에 세입자가 사는 것으로 전해졌다.
수년간 맹모들 입장에서는 은마아파트의 '재건축 지연 소식'은 오히려 '안심 뉴스'였다. 재건축 아파트다보니 계약서에는 '재건축으로 인한 이주시는 조건없이 명도해준다'는 특약이 있었다. 언제건 나가야 한다는 불안감은 있지만, 재건축 사업속도가 워낙 늦어지다보니 그래도 '우리 아이들까지는 괜찮겠지'라는 마음은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안도감도 머지 않았다는 게 주변 공인중개사들의 얘기다. 은마아파트 집주인들은 실거주 2년을 채운 집주인과 채우지 못한 집주인으로 나뉘어 의견이 분분한 상태다. 조합설립이 시급한데 2년 거주 요건 때문이 재건축 진행이 더 지연될까봐서다. 은소협(은마아파트소유자협의회)은 '2022년 말까지 실거주 계획을 수립해 달라'는 안내까지 하고 있다. 아무리 늦어도 2022년 전에는 실거주를 시작해야 2년 거주요건을 채우고 조합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세입자와 동거로 등록하면 안될까요?', '집을 비워두면 어떨까요?' 등의 문의도 있다. 하지만 정부의 강력한 기조에 이러한 '꼼수' 보다는 실거주 쪽을 택하라는 게 은소협의 안내사항이다.
대치동 A공인중개사는 "토지거래허가구역까지 지정되고 집주인들이 이제는 장기전이라고 보고, 직접 입주할 준비를 하고 있다"며 "집주인들이 세입자들에게 이사비를 지원할테니 집을 비워달라는 경우들이 벌써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나마 집주인이 들어갈 살 생각을 하는 집은 상태가 좋은 집이라는 것. 투자용으로 리모델링 조차 최소로 했던 집의 경우에는 집을 비워두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고 이 관계자는 귀띔했다.
B공인 관계자는 "집주인이 들어가든 비워놓든 전세 매물 줄어드는 추세인 건 마찬가지다"라며 "세입자들 중에서는 중고생 자녀가 있는 맞벌이 부부들이 가장 난감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 주거환경 찾아 대치동 떠나는 맹모들
초등학교 저학년 자녀 하나를 두고 있는 문 모씨는 분당으로 이사갈 마음을 먹고 은마아파트에 정을 떼고 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사태로 집안에 머물면서 제대로 못봤던 아파트의 이면을 너무 많이 봐서다. 2중·3중까지 주차하고 학원이 끝나는 시간의 차량소음과 매연까지도 참았다. 하지만 오래된 아파트다 보니 온갖 벌레가 나오면서 스트레스가 커졌다. 그는 "정수시설을 다 해놔서 물은 괜찮은 편인데, 음식을 매일 해먹어서 그런지 벌레들이 출몰하는 건 참을 수 없었다"며 "집주인이 실거주 요건을 채워서 그런지 나가라는 압박은 없지만, 이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로 학원을 줄이면서 '건강하면 됐지 꼭 대치동에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는 "아이가 너무 어릴 때 온 것 같다며 남의 말만 듣고 대치동에 왔다가 인생수업을 제대로 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문씨는 전세 5억원에 살고 있었지만, 집주인은 이를 반전세로 돌릴 예정이라고 한다. 보증금은 같은 상태에서 월세를 더 받는 식이다. 아무래도 재산세를 낼 요량인 것 같다고 그는 추측했다. 대치동 은마아파트 뿐만 아니다. 개포동 개포 5·6·7단지의 세입자들도 걱정은 마찬가지다. 이 단지들은 지난해 조합설립추진위원회 승인을 받아 이제 재건축 초기 단계다. 5단지는 단독으로 6·7단지는 통합으로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다. 주변에 재건축 공사 소음이 심한데다 주차난도 있지만, 맹모들이 선호하는 아파트 단지다. 개포동 C공인관계자는 "매수자들에게 전세끼고 갭투자하는 것 보다는 처음부터 실거주를 권유하고 있고, 실제로도 거주를 감안하면서 집을 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면서 "매수자 입장에서는 진정한 몸테크로 접어드는 것이고, 세입자 입장에서는 살 집이 줄어드는 것이다"라며 "급매는 물론 전월세 물건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서울의 3대 교육특구라 불리는 대치동, 목동, 중계동에서도 세입자들이 전셋값 상승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들 지역에서 대장 아파트 전셋값은 5억~6억원에 달하고 있다. 재건축 사업 초기 단계인 목동에서도 집주인이 직접 실거주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전세매물은 품귀를 보이면서 전셋값은 오르고 있다. 대장 아파트인 목동신시가지7단지(2550가구) 전용 66㎡의 경우, 이달 4억7000만~5억4000만원에 전세계약이 체결됐다. 주변 부동산에 나와있는 매물은 5억중반 내지 6억원에 분포됐다. 2년 전인 2018년 6월에 전셋값이 4억3000만원 안팎인 것과 비교하면 1억원 넘게 오른 수준이다.
중계동 일대에서는 저가 매물을 잡으려는 수요자들이 몰리면서 집값이 급등하고 있다. 중계동 중계청구 3차 아파트 전용 84㎡는 이달들어 매매가가 10억300만원을 기록했다. 현재 전셋값은 큰 등락이 없는 상태다. 하지만 집값이 상승함에 따라 동반 상승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
교육열이 높은 맹모가 아니더라도 서울 전셋집들은 공급부족이 예상되고 있다. 재건축·재개발로 인한 이주수요가 꾸준히 발생하는데다 무주택을 유지해야만 아파트 분양을 받을 수 있어서다. 치솟은 집값을 잡기에는 어렵고 가점을 높게 쌓으려면 무주택으로 전셋집을 전전해야 한다. 입주아파트도 많지 않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내년 서울 입주 예정 물량은 2만1739가구로 올해(4만2012가구 예정)의 절반 수준이다. 그나마 입주하는 아파트는 강남4구 내에 고가 아파트로 전셋값이 높게 형성될 전망이다.
한편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올들어 6월22일까지 누적 기준으로 서울 아파트 매매가는 0.01% 상승했고, 전세가는 1.21% 올랐다. 서울에서 2%가 넘게 전셋값이 오른 지역은 마포(2.20%), 강남(2.17%), 서초(2.14%) 등으로 나타났다.
김하나 한경닷컴 기자 ha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