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여정 강온전술에…대통령 눈빛이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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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뼘의 영토도 침탈당하지 않을 것"
문 대통령의 對北 메시지 단호해진 까닭
6·25 기념식 원고 수차례 수정
"전쟁극복 자신감으로 경제 일궈"
北 연락사무소 폭파 후 '좌절감'
유화일변 정책서 도발 강력저지로
"강한 국방으로 평화 만들어낼 것"
문 대통령의 對北 메시지 단호해진 까닭
6·25 기념식 원고 수차례 수정
"전쟁극복 자신감으로 경제 일궈"
北 연락사무소 폭파 후 '좌절감'
유화일변 정책서 도발 강력저지로
"강한 국방으로 평화 만들어낼 것"
“두 번 다시 단 한 뼘의 영토, 영해, 영공도 침탈당하지 않을 것이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한다면 단호히 대응할 것이다.”
지난 25일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6·25전쟁 70주년 행사의 문재인 대통령 기념사는 그 어느 때보다 결연했다. 6·25전쟁 70주년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해도 최근까지 대북 유화 메시지를 앞세웠던 모습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웃음기 사라진 얼굴의 문 대통령이 “전방위적으로 어떤 도발도 용납하지 않을 강한 국방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 대목에서는 원로 참전용사와 유족들의 박수가 터져나왔다.
현직 대통령의 6·25 기념식 참석은 10년 만이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이후 참전용사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했었다. 문 대통령은 이번 기념식 참석을 앞두고 수차례에 걸쳐 원고를 수정해가며 메시지 수위를 고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엄중한 남북 관계로 인해 이번 기념사에는 한 문장 한 문장 대통령의 고심이 반영됐다”고 전했다. “6·25전쟁은 오늘날 한국의 정체성”
청와대 안팎에서는 문 대통령의 기념사가 한결 단호해진 배경에는 최근의 남북 상황과 함께 6·25전쟁이 현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역사적 사건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이날 기념사에서 “6·25는 오늘의 우리를 만든 전쟁”이라고 규정했다. 지난 70년간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세계 10위 경제대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자신감의 원천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가장 평범한 사람을 가장 위대한 애국자로 만들었고 6·25전쟁을 극복한 세대에 의해 한강의 기적을 이뤘다”며 “국민이 지켜낸 대한민국은 국민을 지켜낼 만큼 강해졌다”고 말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평화는 강한 국방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게 대통령의 평소 소신”이라며 “다만 남북 대화에 가려 이런 부분이 잘 알려지지 않은 면이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남북연락사무소 폭파 후 北 대응에 변화
최근 북한의 도를 넘은 도발도 발언 수위에 영향을 미쳤다는 후문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15일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기념사에서 “기대만큼 북·미 관계와 남북 관계의 진전이 이뤄지지 않은 것에 대해 아쉬움이 크지만 소통의 끈을 놓지 않겠다”며 남북 교류협력의 의지를 변함없이 강조했다. 하지만 16일 북한이 남북 화해의 상징인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전격적으로 폭파한 뒤 문 대통령은 비공개 채널을 통해 “좌절감을 느꼈다”는 소회를 밝혀 북한에 대한 대응에 변화의 분위기가 감지됐다.
이번 기념사에서는 대북 정책에서 유화적으로만 접근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란 분석도 있다. 실제 문 대통령은 북한을 향해 “세계사에서 가장 슬픈 전쟁을 끝내기 위한 노력에 담대하게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는 “우리 정부 대북 메시지의 터닝 포인트는 6·15 공동선언 기념사였다”고 분석했다. 박 교수는 “북한의 고충을 이해한다는 메시지를 보냈음에도 북한이 공동연락사무소 폭파로 대응하자 청와대가 굉장히 신중해진 모습”이라며 “북한의 군사적 옵션이 남아 있는 만큼 유화적인 제스처보다 군사적 도발은 막아야겠다는 강한 메시지를 낸 것 같다”고 말했다.
장진호 전사자 70년 만의 귀향
이날 기념식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는 신원이 확인된 장진호 전투 전사자의 70년 만의 귀향이었다. 북한에서 유해가 발굴돼 하와이에서 한·미 유해감식단의 검사를 거쳐 국군 전사자로 확인된 147명 가운데 신원이 확인된 일곱 분은 이날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문 대통령은 고(故) 김동성 일병 등을 일일이 호명하며 “조국은 단 한순간도 당신들을 잊지 않았다”고 했다.
1950년 11~12월 벌어진 장진호 전투는 모스크바 전투, 스탈린그라드 전투와 함께 세계 3대 동계 전투로 꼽힌다. 중공군 13만 명에게 포위된 미군 해병1사단의 퇴로 확보를 위해 한국군과 미군 보병이 투입되면서 수많은 전사자가 나왔다. 연합군이 후퇴하면서 10만 명의 피란민이 동행한 흥남철수는 문 대통령과도 남다른 인연이 있다. 당시 마지막 피란선인 ‘메러디스 빅토리아’에 문 대통령의 부모가 탑승해 거제로 피란했다. 문 대통령이 취임 첫해 미국 방문에서 첫 일정으로 워싱턴DC 장진호 기념비를 찾아 미국 참전용사들을 위로하는 행사를 한 것도 이런 인연에서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기념사에서 별도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문 대통령에게 장진호 전사자의 귀환은 개인적으로 감회가 남달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탁현민 의전비서관이 주도한 이날 기념식을 두고 청와대 안팎에서는 “엄숙하면서도 행사 집중도를 높인 기획이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김형호/강영연 기자 chsan@hankyung.com
지난 25일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6·25전쟁 70주년 행사의 문재인 대통령 기념사는 그 어느 때보다 결연했다. 6·25전쟁 70주년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해도 최근까지 대북 유화 메시지를 앞세웠던 모습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웃음기 사라진 얼굴의 문 대통령이 “전방위적으로 어떤 도발도 용납하지 않을 강한 국방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 대목에서는 원로 참전용사와 유족들의 박수가 터져나왔다.
현직 대통령의 6·25 기념식 참석은 10년 만이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이후 참전용사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했었다. 문 대통령은 이번 기념식 참석을 앞두고 수차례에 걸쳐 원고를 수정해가며 메시지 수위를 고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엄중한 남북 관계로 인해 이번 기념사에는 한 문장 한 문장 대통령의 고심이 반영됐다”고 전했다. “6·25전쟁은 오늘날 한국의 정체성”
청와대 안팎에서는 문 대통령의 기념사가 한결 단호해진 배경에는 최근의 남북 상황과 함께 6·25전쟁이 현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역사적 사건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이날 기념사에서 “6·25는 오늘의 우리를 만든 전쟁”이라고 규정했다. 지난 70년간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세계 10위 경제대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자신감의 원천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가장 평범한 사람을 가장 위대한 애국자로 만들었고 6·25전쟁을 극복한 세대에 의해 한강의 기적을 이뤘다”며 “국민이 지켜낸 대한민국은 국민을 지켜낼 만큼 강해졌다”고 말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평화는 강한 국방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게 대통령의 평소 소신”이라며 “다만 남북 대화에 가려 이런 부분이 잘 알려지지 않은 면이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남북연락사무소 폭파 후 北 대응에 변화
최근 북한의 도를 넘은 도발도 발언 수위에 영향을 미쳤다는 후문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15일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기념사에서 “기대만큼 북·미 관계와 남북 관계의 진전이 이뤄지지 않은 것에 대해 아쉬움이 크지만 소통의 끈을 놓지 않겠다”며 남북 교류협력의 의지를 변함없이 강조했다. 하지만 16일 북한이 남북 화해의 상징인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전격적으로 폭파한 뒤 문 대통령은 비공개 채널을 통해 “좌절감을 느꼈다”는 소회를 밝혀 북한에 대한 대응에 변화의 분위기가 감지됐다.
이번 기념사에서는 대북 정책에서 유화적으로만 접근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란 분석도 있다. 실제 문 대통령은 북한을 향해 “세계사에서 가장 슬픈 전쟁을 끝내기 위한 노력에 담대하게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는 “우리 정부 대북 메시지의 터닝 포인트는 6·15 공동선언 기념사였다”고 분석했다. 박 교수는 “북한의 고충을 이해한다는 메시지를 보냈음에도 북한이 공동연락사무소 폭파로 대응하자 청와대가 굉장히 신중해진 모습”이라며 “북한의 군사적 옵션이 남아 있는 만큼 유화적인 제스처보다 군사적 도발은 막아야겠다는 강한 메시지를 낸 것 같다”고 말했다.
장진호 전사자 70년 만의 귀향
이날 기념식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는 신원이 확인된 장진호 전투 전사자의 70년 만의 귀향이었다. 북한에서 유해가 발굴돼 하와이에서 한·미 유해감식단의 검사를 거쳐 국군 전사자로 확인된 147명 가운데 신원이 확인된 일곱 분은 이날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문 대통령은 고(故) 김동성 일병 등을 일일이 호명하며 “조국은 단 한순간도 당신들을 잊지 않았다”고 했다.
1950년 11~12월 벌어진 장진호 전투는 모스크바 전투, 스탈린그라드 전투와 함께 세계 3대 동계 전투로 꼽힌다. 중공군 13만 명에게 포위된 미군 해병1사단의 퇴로 확보를 위해 한국군과 미군 보병이 투입되면서 수많은 전사자가 나왔다. 연합군이 후퇴하면서 10만 명의 피란민이 동행한 흥남철수는 문 대통령과도 남다른 인연이 있다. 당시 마지막 피란선인 ‘메러디스 빅토리아’에 문 대통령의 부모가 탑승해 거제로 피란했다. 문 대통령이 취임 첫해 미국 방문에서 첫 일정으로 워싱턴DC 장진호 기념비를 찾아 미국 참전용사들을 위로하는 행사를 한 것도 이런 인연에서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기념사에서 별도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문 대통령에게 장진호 전사자의 귀환은 개인적으로 감회가 남달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탁현민 의전비서관이 주도한 이날 기념식을 두고 청와대 안팎에서는 “엄숙하면서도 행사 집중도를 높인 기획이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김형호/강영연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