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한경DB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한경DB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는 26일 '검찰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불기소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위원들 대부분이 '불기소' 의견을 냈다. 당초 '기소' 의견이 유력하다는 법조계의 예상을 완전히 뒤엎은 결과다. 이 부회장 측에선 '최상'의 시나리오를 받아들었다.

이 부회장 등에 대한 기소 타당성 여부를 검찰이 아닌 외부전문가가 따져 보고 내린 결론인 만큼 사실상 수사를 마무리 중인 검찰 측은 상당한 부담을 안게 됐다. 다만 법조계 안팎에선 수사심의위의 권고 자체는 법적 강제성이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검찰이 기소를 강행할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날 비공개로 이뤄진 수사심의위는 오전 10시30분부터 오후 5시50분까지 대검 회의실에서 현안위원회를 소집해 이 부회장과 김종중 전 삼성 미래전략실 전략팀장, 삼성물산에 대한 기소가 필요한지 심의한 후 이같은 결론을 냈다.

앞서 대검은 지난 18일 법조계와 학계, 언론계, 시민단체, 문화·예술계 등 각계 전문가 150∼250명 중 추첨을 통해 분야별로 3∼4명씩 15명의 수사심의위 현안위원을 뽑았다. 이 중 불출석한 한 명을 제외하고 수사심의위에 참석한 14명의 위원들은 이날 검찰 측과 삼성 측 변호인들이 각각 제출한 A4용지 50쪽 분량의 의견서를 검토하고, 양측의 70분간의 구두변론을 들었다.

양측은 이 부회장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을 보고받고 지시했느냐는 핵심 쟁점을 놓고 치열한 법리논쟁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이달 초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실질심사 때와 같은 쟁점이다.

의견진술과 질의응답을 위해 검찰 측에는 주임검사인 이복현(사법연수원 32기)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 부장검사, 이 부회장 대면조사를 담당한 최재훈(35기) 부부장 검사, 김영철(33기) 의정부지검 부장검사 등 3∼4명이 나섰다.

이에 맞서 이 부회장 측에서는 김기동(21기) 전 부산지검장과 이동열(22기) 전 서울서부지검장 등 내로라하는 전직 특수통 검사 출신 변호인들이 전면에 섰다. 이 부회장 등 당사자들은 참석하지 않았다. 특히 이 부회장은 이날 회의 내내 자택에 있었다고 전해졌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깃발 뒤로 보이는 삼성전자 서초사옥의 모습/사진=연합뉴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깃발 뒤로 보이는 삼성전자 서초사옥의 모습/사진=연합뉴스
이날 오전에는 검찰이, 오후에는 이 부회장 측 변호인이 각각 구두의견을 진술하며 현직 특수통 선후배 사이에 직접 현장에서 말을 주고받는 공방이 연출되지는 않았다. 대신 상대 측 의견에 대해 재반박도 불가능하고, 20만쪽에 이르는 수사기록을 50쪽 의견서로 요약하거나 반박해야 했던 만큼 앞서 양측은 한번에 주장을 설득시키기 위해 이달 초 열렸던 영장실질심사 준비만큼이나 머리를 싸매 준비해왔다는 후문이다.

구두의견을 듣고 30분간의 질의응답을 마친 위원들은 이후 열띤 내부 토론 절차를 거쳐 표결을 통해 불기소로 최종 권고했다. 현안위는 만장일치 결론을 목표로 하지만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면 출석위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한다. 앞서 핵심 피의자인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과의 인연을 이유로 위원장직 '회피 신청'을 했던 양창수 전 대법원장을 대신해 위원장 직무대행을 한 김 모 교수를 제외한 13명의 위원들 중 대다수가 '불기소' 의견을 냈다.

장장 8시간 가량의 토의 끝에 수사심의위가 불기소 의견으로 결론을 냈기 때문에 검찰은 이 부회장 등에 대해 기소를 강행하는 데 부담이 커지게 됐다. 수사심의위의 권고는 강제성이 없지만 검찰은 2018년 제도가 시행된 후 총 8차례 소집된 수사심의위의 결론을 모두 따른 바 있다.

수사심의위는 중립성을 확보한다는 취지로 검찰이 2018년 자체 개혁 방안의 하나로 도입한 제도라는 점도 검찰의 기소 강행에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검찰이 이번 수사심의위의 결론을 뒤집고 자칫 무리하게 영장을 재청구하거나 기소에 나섰다가는 여론의 비판에 직면할 수 있어서다.

다만 수사심의위의 권고에도 불구 법조계 안팎에서는 검찰이 이 부회장 기소를 강행할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검찰이 이미 방대한 증거자료와 진술을 확보해 기소가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검찰이 기소를 강행할 경우 '국정농단 의혹' 등으로 2016년 11월 이후 무려 3년7개월간 끝이 보이지 않는 이 부회장의 '사법 리스크'는 최소 수년간 더 연장될 수밖에 없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등으로 인한 전대미문의 글로벌 경제위기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삼성 총수 기소는 우리 경제에 초대형 불확실성 악재가 추가된다는 점에서 재계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코로나19라는 전례 없는 위기 속에서 총수 부재는 삼성뿐만 아니라 한국 경제에도 커다란 악재가 될 것"이라며 "사법 리스크에 이미 지난 몇년간 시달렸던 이 부회장이 구속되면 삼성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배성수 한경닷컴 기자 bae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