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질의 콘텐츠를 전문가가 선별해 알아서 추천한다는 뜻의 ‘큐레이션’은 원래 박물관, 미술관에서 쓰이던 용어다. 하지만 지금은 먹거리 분야에서 더 많이 쓰인다. 하루에도 몇 번씩 ‘뭘 먹지’라는 질문에 부닥치기 때문이다.

최근 과일, 과자, 술 등을 대신 골라주겠다고 나서는 곳들이 생겨났다. 먹거리는 가전, 뷰티, 패션에 비해 큐레이션이 쉽다. 한 번쯤 남에게 선택을 맡겨도 될 만큼 심리적 문턱이 낮다. 백화점은 과일을 대신 골라 보내주고, 제과업체는 과자박스 정기구독 서비스를 시작해 인기를 얻고 있다.

○“제철과일 알아서 골라줘”

신세계백화점 서울 강남점은 지난달부터 주 1회 과일을 골라 보내주는 ‘과일 구독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월 구독료 18만원을 내면 백화점 청과 담당 바이어가 선정한 제철 과일 3~5종을 매주 목요일 보내준다.

시중 과일가게에서 공급받기 어려운 과일을 배송한다. 지난달에는 중국 고급과일로 불리는 ‘하미과 메론’, 당도가 높아 스파클링 와인 재료로 쓰이는 ‘데라웨어 포도’등을 보내줬다. 이달에는 제주·대만에서 항공 직송받은 애플망고를 선정했다. 과일 바구니에는 과일 보관법, 맛있게 먹는 팁 등 과일 설명서를 동봉했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지난달 과일 구독 신청자의 85%가 구독을 연장하고 있고 신규회원까지 들어오면서 구독자가 30% 더 늘었다”고 설명했다.

과일 구독은 현재까지는 테스트 서비스다. 백화점 VIP 고객, 강남점 주변 거주민들로 신청자를 제한했지만 수요가 많아지면 다른 점포, 전체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늘린다는 계획이다.

롯데제과가 지난 17일 모집한 과자 구독 서비스 ‘월간 과자’도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월9900원을 내면 과자 한 박스를 보내준다. 롯데제과 측은 “3개월 분 구독자 200명을 인스타그램으로 모집했는데 3시간 만에 마감됐다”고 설명했다. 신제품 과자를 우선 챙겨 보내주고, 정상가 기준으로 구독료보다 더 많은 과자를 보내준 것이 인기 비결이다.

○주류, 건기식은 일찍이 도입

제품 브랜드와 종류가 다양한 주류는 일찌감찌 큐레이션 서비스가 도입됐다. 전통주 구독 서비스 업체 ‘술담화’는 매달 전국 각지 양조장의 다양한 전통주를 선정해 소비자에게 보낸다. 월 구독료 3만9000원을 내면 전통주 2병과 스낵 안주를 알아서 보내준다. 여러 술을 주는대로 마시다가 “딱 이 술이다” 싶은 제품이 생기면 재구매도 가능하다. 술담화가 전국 양조장으로부터 공급받는 술은 2000여종. 구독자의 80%는 2030 젊은 층이다. 이들의 입소문을 타면서 지난 3월 2500명이었던 구독자가 이달 들어 4500명까지 늘었다.

2018년부터 시작한 와인 구독 서비스 ‘퍼플독’도 인기를 얻고 있다. 소비자의 취향을 설문조사해 인공지능(AI)으로 분석한 결과를 바탕으로 와인을 보내준다. 가격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원하는 가격대를 선택할 수 있다. 가장 낮은 가격의 멤버십은 3만9000원이다.

건강기능식품 시장이 성장하면서 영양제 정기구독 서비스 ‘필리’도 주목받고 있다. 홈페이지에서 자신의 건강상태와 생활 습관 등을 문진표로 작성해 제출하면 비타민, 루테인, 칼슘 제품들을 보내준다. 기성 제품들을 추천하는 방식이 아닌, 필리가 직접 성분에 맞는 제품을 생산한다. 영양소 별 제품이 1가지로 고를 필요 자체가 없다.

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