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적대·위기에 기생하는 北체제 공고한가
북한이 심상치 않다. 6월 들어 한국 정부에 대한 욕설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비무장지대 초소 병력 투입과 스피커 설치까지 위기 상황을 연출했다. 지난 23일에는 보도 매체에 모습도 드러내지 않은 김정은의 말 한마디에 예고했던 군사행동을 보류했다. 거의 정신분열적이다. 이번 사태를 전략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진행된 것으로 보는 것은 무리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변화를 설명할 때마다 과거 김일성 1인에게 집중된 권력의 합리화와 반대파 숙청을 위해 사용했던 ‘수령유일체제론’을 되뇐다. 최고지도자의 지침에 절대적으로 순종하고, 모든 변화는 그의 판단에 의한 것이라는 단순한 논리다. 대내외 여건이 전혀 다른 김정은 시대에도 북한은 ‘김정은 유일체제’로 포장하고 있으나 실제는 다르다. 무대 뒤에는 대외 강경파와 협상파, 또 대내적 변화와 수구 세력 간의 각축이 존재한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김정은이라는 간판 뒤에 숨은 권력투쟁이다.

이번 사태 역시 북한을 수령유일체제로 보면 설명은 간단하다. 경제난을 돌파하기 위해 김정은이 강온 양면 전략을 쓰면서 한국 정부를 몰아붙여 원하는 결과를 얻으려 한다는 것이다. 진보 진영의 논객들은 미국 책임론과 대북 제재로 인한 남북한 관계의 정체를 지적한다. 당초 북한 핵 개발의 효율적 저지를 위해 만든 ‘한·미 실무(워킹)그룹’의 존재도 ‘주권 감성’을 부추기며 비난한다. 한마디로 북한의 이번 ‘소동’은 한·미의 대북 전략 실패가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경제난 극복을 위한 김정은의 고육책이므로, 우리 주도의 대북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등장했다. 이들의 논리는 북한에서 이미 확산된 시장경제가 뿌리를 내리도록 경제난의 짐을 덜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시장경제의 본질을 모르는 주장이다. 북한은 1980년대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확고한 시장 지향의 개혁·개방 노선을 공식적으로 밝힌 적이 없다. 북한 권력구조를 근본적으로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 상황에 따라 통제의 강도를 조절하는 북한의 ‘장마당 경제’는 권력층에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북한에서 통제 권력의 비호 아래 이뤄지는 ‘장사’는 일상이 됐다. 한 연구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북한 이탈 주민 중 90%의 응답자가 북한 경제의 성격을 시장경제로 착각했다. 거의 모든 영역에서 물자 부족으로 인해 생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다 보니, 그물망처럼 짜여진 당·군·정 권력은 기업소의 원자재와 부품을 빼돌려 거래해 막대한 이익을 챙긴다. 이들을 연결해주는 ‘돈주(북한의 자본가)’도 등장했다. 이는 자원 배분의 효율성을 보장하는 시장경제의 전조가 아니라 각지의 경제 통제력을 장악한 기득권 세력의 활동 무대다. 이들은 북한 주민의 위기의식과 경제난 뒤에 숨어 이익을 챙길 수 있는 비정상적 상황에 안주해 근본적 경제 개혁과 핵 포기는 거부한다.

이런 현실에 대해 북한 주민들이 박탈감과 불만, 심지어 북한 체제에 대한 회의를 가질 것임을 잘 아는 북한의 권력층은 끊임없는 긴장 조성을 필요로 한다. 스스로 초래한 가상의 위기에 기생하는 북한 권력층은 ‘김정은 유일체제’를 앞세워 외부에 대한 적대감과 위기감을 확대 재생산하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군사 행동이 두려워 핵·미사일 실험을 중단한 북한은 한국을 압박해 남북 간의 제한된 군사적 긴장을 조성한다. 진정성 없는 핵 협상과 기만적 대남 정책을 혼용하면서 위기를 활용해온 북한의 기득권 세력이 김정은 체제의 안정을 보장하기는 어렵다. 그들 간의 분열과 정책 갈등, 무엇보다도 ‘통제 권력의 이익 추구’ 현상이 초래할 북한 주민의 자각은 언제든지 분출할 수 있다. 북한의 최근 행보는 합리적 전략 선택이 아니다. ‘적대’와 ‘위기’에 의존해 생존하는 북한 권력구조의 불안정성이 민낯을 드러낸 것이다. 북한의 불안한 미래에 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