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 심의를 앞두고 홍콩의 자치권 훼손과 인권·자유 침해에 책임이 있는 중국 관리들에 대한 비자 제한 조치를 내놨다. 중국은 “내정 간섭”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지난 26일 “1984년 중·영 공동선언(홍콩반환협정)에서 보장된 홍콩의 고도의 자치권을 훼손하거나, 인권과 기본적 자유를 침해하는 데 책임이 있거나 연루됐다고 여겨지는 전·현직 중국 공산당 관리들의 비자를 제한한다”고 발표했다. 다만 구체적인 제재 대상과 범위는 밝히지 않았다.

폼페이오 장관은 중국이 독단적으로 홍콩 국가보안법을 제정해 홍콩의 높은 자치권을 훼손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또 중국이 홍콩 당국에 민주화 활동가를 체포하고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선거 후보자를 탈락시키라는 압력을 넣고 있다고 비판했다.

중국 최고입법기관인 전국인민대표대회는 지난달 홍콩 의회를 거치지 않고 홍콩에 대한 직접 통제를 강화하는 홍콩보안법을 제정하기로 결의했다. 이어 전인대 상무위원회는 28일부터 홍콩보안법 초안 심의에 들어갔다.

미국은 중국의 시도가 협정 위반이자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 원칙에 어긋난다며 중국에 대한 대응과 함께 홍콩에는 그동안 인정해온 관세·비자 등 특별대우를 박탈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이에 주미 중국대사관은 27일 성명을 통해 “중국은 미국의 잘못된 조치에 결연히 반대한다”고 발표했다. 이어 “중국 정부는 중·영 공동선언이 아니라 중국 헌법과 홍콩 기본법에 근거해 홍콩을 통치하며 미국이 개입할 자격과 근거는 없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미·중 교류가 정체된 상황에서 비자 제한 조치의 여파가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미국이 비자 제한 대상이 된 중국 관리들과 거래한 은행 등을 제재하는 ‘세컨더리 보이콧(제3자 제재)’에 나설 경우 파급력이 클 것이란 관측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이 미국을 향해 홍콩이나 대만 문제 등에서 압박과 간섭을 계속하면 1단계 무역합의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조용히 발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WSJ는 미·중 고위급 무역협상단의 중국 측 대표인 류허 부총리가 최근 열린 한 금융포럼에서 “중국의 무역합의 이행 여부는 미국이 (우리에 대한) 압박을 얼마나 완화하느냐에 달렸다”고 발언한 것을 예로 들었다. 미국이 ‘레드라인’을 넘으면 1단계 무역합의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중국 측 메시지라는 분석이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