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어도 내년 하반기 대부분 적용
전·월세를 살고 있다면 관리비를 임차인(세입자)이 내는 만큼 화재보험료도 세입자 부담이다. 하지만 막상 불이 나면 세입자는 보상은커녕 덤터기를 쓸 수 있다. 약관상 임차인은 계약자(보험료를 내는 사람)도 피보험자(보험금을 받는 사람)도 아니라 ‘제3자’이기 때문이다. 대법원 판례 등에 따르면 화재보험 계약의 피보험자는 집주인이고, 세입자는 보험료를 냈더라도 피보험자로 인정받지 못한다. 또 계약을 입주자 대표 명의로 맺기 때문에 개별 세입자는 계약자에 해당하지 않는다. 이를 근거로 보험사들은 임차인 과실로 불이 났을 때 집주인에게 보험금을 지급한 뒤 이를 세입자에게서 회수(대위권 행사)해왔다.
금융감독원은 아파트 세입자를 보호하기 위해 이런 화재보험 약관을 개정하기로 했다. 보험료를 임차인이 낼 경우 보험사가 대위권을 행사하지 않도록 예외조항을 넣기로 했다. 아파트 외에 사무실, 상가, 오피스텔 등의 화재보험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화재보험은 아니지만 화재 위험을 보장하는 재산종합보험 등 다른 상품의 약관도 똑같이 바꿀 계획이다.
금감원 측은 “화재보험의 대위권 행사와 관련한 민원이 꾸준히 접수돼 왔다”며 “임차인이 관리비를 통해 실질적으로 화재보험료를 납부함에도 불구하고 보상받지 못해 경제적 피해를 입는 일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고의로 낸 화재에는 보험사가 대위권을 행사하도록 했다.
금감원은 이달까지 보험사마다 약관을 자율 개정하도록 유도하고, 오는 9월까지 화재보험 표준약관도 바꾸기로 했다. 새 약관은 기존 가입자에게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단체화재보험은 통상 1년 단위로 갱신하기 때문에 내년 하반기엔 거의 모든 아파트에 적용될 전망이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