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맨 앞)과 삼성 경영진이 30일 반도체 장비 자회사인 세메스의 충남 천안 사업장을 찾았다. 방진복을 입은 이 부회장이 생산라인을 살펴보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맨 앞)과 삼성 경영진이 30일 반도체 장비 자회사인 세메스의 충남 천안 사업장을 찾았다. 방진복을 입은 이 부회장이 생산라인을 살펴보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30일 현장경영을 재개했다. 검찰수사심의위원회가 ‘수사 중단 및 불기소’ 권고를 결정한 후 첫 번째 경영 행보다.

이날 이 부회장이 찾은 곳은 삼성전자 자회사인 세메스 천안 사업장이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장비를 생산하는 업체로 천안과 화성 등에 생산기지를 두고 있다. 일본의 수출규제 1년을 맞아 소재, 부품, 장비(소·부·장) 분야 현황을 점검하는 차원에서 장비 업체를 방문하게 됐다고 삼성 측은 설명했다.

이 부회장은 경영진과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장비시장 동향에 대해 논의하고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중장기 전략을 점검했다. 이날 현장 점검엔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 이동훈 삼성디스플레이 사장, 박학규 DS(반도체) 부문 경영지원실 사장, 강호규 반도체연구소장 등이 참석했다.

이 부회장은 경영진에게 “갈 길이 멀다. 지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고 삼성은 전했다. 또 “불확실성의 끝을 알 수 없다. 갈 길이 멀다”는 말도 꺼냈다. 지난 5월 이후 국내외 사업장 방문 당시 내놨던 발언들과 비슷한 맥락이다. 이 부회장은 5월 중국 시안 반도체 사업장을 방문한 자리에선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지난 19일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에선 “가혹한 위기 상황”이란 표현을 썼다.

삼성 관계자는 “이 부회장은 평소에도 ‘100년 된 기업도 변화의 물결을 타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하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는 말을 자주 꺼냈다”며 “국내외 경영 여건이 악화되면서 이 부회장이 느끼는 위기감이 한층 더 커졌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부회장 자신도 ‘시계제로’ 상황에 놓인 것은 마찬가지다. 국정농단 사건으로 특검이 꾸려진 2016년 이후 5년째 사법 리스크에 발목이 잡혀 있다. 최근까지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혹 등 혐의로 검찰의 조사를 받았다. 검찰수사심의위가 이 부회장에게 유리한 권고를 내렸지만 검찰 기소를 피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수사심의위의 권고에 강제성이 없기 때문이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이 부회장의 발언은 삼성 임직원과 스스로를 동시에 독려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경제계에선 이 부회장의 세메스 방문을 계기로 삼성이 소·부·장 산업 생태계 육성에 속도를 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25일 ‘K칩 시대’라는 새로운 비전을 내놨다. 국내 반도체 협력업체들의 경쟁력을 끌어올려 한국 기업의 경쟁력을 더욱 높이겠다는 의미다. 구체적인 방안도 내놨다. 삼성전자는 수입에 의존하던 반도체 장비와 소재를 국산화하기 위해 협력업체와의 공동 연구개발(R&D) 프로젝트를 대폭 확대할 계획이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