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만큼 안전하다더니…'사모펀드 참극' 부른 3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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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사모펀드의 배신
허술한 방임정책
금융사의 수수료 탐욕
그 틈 노린 삼류 운용사
허술한 방임정책
금융사의 수수료 탐욕
그 틈 노린 삼류 운용사
사모펀드의 환매 연기 및 중단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라임 펀드는 시작에 불과했다. 5000억원의 피해가 예상되는 옵티머스 펀드는 사기로 드러나고 있다. 안전한 채권형 펀드까지 환매가 연기되기도 했다.
예금만큼 안전하다던 사모펀드의 실체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곳곳에서 사기, 불완전판매 문제도 불거지고 있다. 사모펀드의 잇단 환매 중단 사태는 부작용은 고려하지 않고 규제를 풀어준 금융당국, 수수료에 집착해 제대로 점검도 하지 않고 펀드를 판 금융회사, 검증받지 않은 삼류 운용사가 빚어낸 합작품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금융위원회는 30일 임시회의를 열어 환매가 중단된 옵티머스자산운용의 영업정지를 의결했다. 공공기관 매출채권에 투자한다고 모은 펀드자금 약 5000억원을 부실 부동산업체 등으로 빼낸 사실이 드러나자 2주도 안 돼 영업을 정지시켰다.
라임과 옵티머스를 포함해 현재 부실 사모펀드 판매 규모는 5조원을 넘어서고 있다. 지난주 홍콩계 젠투파트너스의 채권형 펀드(7000억원), KB증권의 TA인슈어드무역금융 파생결합증권(1000억원) 등도 일부 환매 연기됐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오늘은 어떤 펀드가 터질지 걱정하는 수준”이라고 전했다.
최근 2~3년간 금융회사 프라이빗뱅커(PB)들은 연 3~5% 수익을 안정적으로 낼 수 있다며 사모펀드를 집중적으로 팔았다. 판매수수료와 실적 때문이었다. 한 운용사 대표는 “수수료를 제외하고 3~5% 수익률을 돌려주려면 5~7% 수익을 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신용등급이 낮은 채권을 사거나 레버리지를 일으켰다가 사고가 터지고 있다”고 말했다. 사고를 낸 운용사는 대부분 신생 사모펀드 운용사다.
사모펀드를 키우겠다며 섣부른 정책을 남발한 금융위는 사태를 키웠고, 금융감독원은 방조했다는 지적이다. 사모펀드를 공모펀드처럼 팔 수 있게 하면서 ‘폰지 사기’(다단계 금융사기)의 공간을 열어줬기 때문이다. 박창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사모펀드는 애초 불완전판매 개념이 없는데 한국에선 사모펀드가 공모펀드로 둔갑해 팔렸다”며 “정책당국이 가짜 상품이 판치지 못하도록 사모펀드의 본질에 맞는 정책을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일자리 만든다"며 정부가 판 키웠는데…'사기펀드' 된 사모펀드
“자산운용사는 일자리도 많이 만들어 내는데 따로 만납시다.”
작년 1월 15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를 찾은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금융투자업계 사장단과의 간담회 도중 이런 말을 했다. 자산운용업을 콕 찍어 일자리 창출 우수 업종으로 치켜세웠다. 운용업계 임직원 수는 2015년 5259명에서 지난해 9079명으로 급증했다. 일자리 창출 일등공신은 사모펀드였다. 2015년 350명이던 전문사모운용사 임직원 수는 3000명을 넘어섰다. 이 기간 운용규모는 200조원에서 412조원으로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사모펀드를 ‘자본시장의 총아’로 평가했던 정치권과 금융당국의 태도는 ‘라임 사태’를 기점으로 달라졌다. 안전하다던 사모펀드들이 무더기로 부실화하면서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다. 사모펀드 판매 수수료로 재미를 봤던 은행과 증권사들은 조(兆) 단위 자금을 보상해줘야 할 판이다. 사모펀드, 1년 만에 벼랑끝으로
지난 3~5월 국내 사모펀드에서 5조원 넘는 자금이 빠져나갔다. 한 은행 프라이빗뱅커(PB)는 “지난해 라임·DLF(파생결합펀드)에 이어 올해 디스커버리·옵티머스 등 사태가 터지면서 내 펀드는 괜찮냐는 고객 문의가 쏟아지고 있다”며 “사모펀드를 추천하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라고 토로했다.
‘한국형 사모펀드의 배신’을 부른 가장 큰 책임은 금융당국의 섣부른 정책에 있다는 게 시장 전문가들 지적이다. 금융위원회는 2015년 사모운용사 설립을 인가제에서 등록제로 바꿨다. 최소 자본금 요건을 60억원에서 20억원으로 낮췄다. 자격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운용사들이 난립하게 만든 정책이었다. 2015년 20개에 불과했던 전문사모운용사는 올 1분기 225개로 늘었다. 한 운용사 대표는 “정부가 사모펀드 설립을 벤처기업이나 스타트업 창업처럼 대하며 좌판을 깔았다”며 “전문성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양식과 도덕성조차 없는 사기꾼들이 시장으로 밀려 들어왔다”고 비판했다. 최소 투자금액을 1억원으로 낮춰준 것은 사모펀드를 공모펀드처럼 판매하게 한 함정이 됐다.
당국은 라임 사태를 겪고 노선을 수정했다. 금융위는 사모펀드 최소투자금액을 1억원에서 3억원으로 높이고 은행에서 고난도 사모펀드 판매를 금지하는 등 대책을 쏟아냈다. 자기자본이 7억원을 밑도는 운용사를 6개월 내 퇴출하는 ‘패스트트랙’ 제도도 도입했다. 하지만 이미 피해자는 양산되고 있다.
사모펀드 운용사들은 위태롭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2분기에도 옵티머스와 젠투, 무역금융 등 환매 중단된 펀드들이 계속 나오고 있어 2년 내에 150곳은 문을 닫을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고 전했다.
판매사, 검증 안했나 못했나
판매사들은 제대로 검증도 하지 않고 사모펀드를 팔았다. 초저금리 시대에 ‘예금금리+’ 상품에 열광하는 자산가들을 겨냥했다. 은행, 증권사들은 신생 사모펀드 운용사의 확정금리형 상품을 경쟁적으로 유치했다. 라임의 플루토 펀드와 무역금융펀드, 옵티머스 공공기관 매출채권 펀드, 독일 헤리티지 파생결합증권(DLS) 등이 대표적이다. 연 3~5%의 안정적인 수익을 돌려주는 상품으로 입소문을 탔다. 판매사는 만기를 6개월 수준으로 짧게 가져가면서 사모펀드 운용사들에 펀드 규모를 확대할 것을 요구했다.
한 판매사 관계자는 “옵티머스 펀드도 자산가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자 NH투자증권이 욕심을 내면서 공격적으로 팔았다”며 “지점에서 상품본부에 판매를 승인해달라고 거꾸로 요청하는 사모펀드도 많았다”고 전했다. 이런 과정에서 상품 검증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신생 운용사들은 판매사 요구에 응했다. 불가능한 운용 방식을 가능하다고 속이면서 상품을 만들었다. 사기꾼들은 이 틈을 노려 불량 채권을 우량채권으로 둔갑시키는 수법도 썼다.
금융당국은 여전히 사모펀드 참극의 핵심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시장의 우려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옵티머스 펀드 사고가 터지자 1만여 개에 달하는 사모펀드에 대해 전수조사를 주문한 것이 대표적이다. 한 운용사 대표는 “전수조사 기간이 3~4년 걸리는 데다 회계법인 수준의 실사가 아니라면 실질적으로 큰 의미도 없다”며 “가짜 중위험·중수익 사모펀드를 집중 조사하는 게 시급하다”고 말했다.
조진형/오형주 기자 u2@hankyung.com
예금만큼 안전하다던 사모펀드의 실체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곳곳에서 사기, 불완전판매 문제도 불거지고 있다. 사모펀드의 잇단 환매 중단 사태는 부작용은 고려하지 않고 규제를 풀어준 금융당국, 수수료에 집착해 제대로 점검도 하지 않고 펀드를 판 금융회사, 검증받지 않은 삼류 운용사가 빚어낸 합작품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금융위원회는 30일 임시회의를 열어 환매가 중단된 옵티머스자산운용의 영업정지를 의결했다. 공공기관 매출채권에 투자한다고 모은 펀드자금 약 5000억원을 부실 부동산업체 등으로 빼낸 사실이 드러나자 2주도 안 돼 영업을 정지시켰다.
라임과 옵티머스를 포함해 현재 부실 사모펀드 판매 규모는 5조원을 넘어서고 있다. 지난주 홍콩계 젠투파트너스의 채권형 펀드(7000억원), KB증권의 TA인슈어드무역금융 파생결합증권(1000억원) 등도 일부 환매 연기됐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오늘은 어떤 펀드가 터질지 걱정하는 수준”이라고 전했다.
최근 2~3년간 금융회사 프라이빗뱅커(PB)들은 연 3~5% 수익을 안정적으로 낼 수 있다며 사모펀드를 집중적으로 팔았다. 판매수수료와 실적 때문이었다. 한 운용사 대표는 “수수료를 제외하고 3~5% 수익률을 돌려주려면 5~7% 수익을 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신용등급이 낮은 채권을 사거나 레버리지를 일으켰다가 사고가 터지고 있다”고 말했다. 사고를 낸 운용사는 대부분 신생 사모펀드 운용사다.
사모펀드를 키우겠다며 섣부른 정책을 남발한 금융위는 사태를 키웠고, 금융감독원은 방조했다는 지적이다. 사모펀드를 공모펀드처럼 팔 수 있게 하면서 ‘폰지 사기’(다단계 금융사기)의 공간을 열어줬기 때문이다. 박창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사모펀드는 애초 불완전판매 개념이 없는데 한국에선 사모펀드가 공모펀드로 둔갑해 팔렸다”며 “정책당국이 가짜 상품이 판치지 못하도록 사모펀드의 본질에 맞는 정책을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일자리 만든다"며 정부가 판 키웠는데…'사기펀드' 된 사모펀드
“자산운용사는 일자리도 많이 만들어 내는데 따로 만납시다.”
작년 1월 15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를 찾은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금융투자업계 사장단과의 간담회 도중 이런 말을 했다. 자산운용업을 콕 찍어 일자리 창출 우수 업종으로 치켜세웠다. 운용업계 임직원 수는 2015년 5259명에서 지난해 9079명으로 급증했다. 일자리 창출 일등공신은 사모펀드였다. 2015년 350명이던 전문사모운용사 임직원 수는 3000명을 넘어섰다. 이 기간 운용규모는 200조원에서 412조원으로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사모펀드를 ‘자본시장의 총아’로 평가했던 정치권과 금융당국의 태도는 ‘라임 사태’를 기점으로 달라졌다. 안전하다던 사모펀드들이 무더기로 부실화하면서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다. 사모펀드 판매 수수료로 재미를 봤던 은행과 증권사들은 조(兆) 단위 자금을 보상해줘야 할 판이다. 사모펀드, 1년 만에 벼랑끝으로
지난 3~5월 국내 사모펀드에서 5조원 넘는 자금이 빠져나갔다. 한 은행 프라이빗뱅커(PB)는 “지난해 라임·DLF(파생결합펀드)에 이어 올해 디스커버리·옵티머스 등 사태가 터지면서 내 펀드는 괜찮냐는 고객 문의가 쏟아지고 있다”며 “사모펀드를 추천하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라고 토로했다.
‘한국형 사모펀드의 배신’을 부른 가장 큰 책임은 금융당국의 섣부른 정책에 있다는 게 시장 전문가들 지적이다. 금융위원회는 2015년 사모운용사 설립을 인가제에서 등록제로 바꿨다. 최소 자본금 요건을 60억원에서 20억원으로 낮췄다. 자격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운용사들이 난립하게 만든 정책이었다. 2015년 20개에 불과했던 전문사모운용사는 올 1분기 225개로 늘었다. 한 운용사 대표는 “정부가 사모펀드 설립을 벤처기업이나 스타트업 창업처럼 대하며 좌판을 깔았다”며 “전문성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양식과 도덕성조차 없는 사기꾼들이 시장으로 밀려 들어왔다”고 비판했다. 최소 투자금액을 1억원으로 낮춰준 것은 사모펀드를 공모펀드처럼 판매하게 한 함정이 됐다.
당국은 라임 사태를 겪고 노선을 수정했다. 금융위는 사모펀드 최소투자금액을 1억원에서 3억원으로 높이고 은행에서 고난도 사모펀드 판매를 금지하는 등 대책을 쏟아냈다. 자기자본이 7억원을 밑도는 운용사를 6개월 내 퇴출하는 ‘패스트트랙’ 제도도 도입했다. 하지만 이미 피해자는 양산되고 있다.
사모펀드 운용사들은 위태롭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2분기에도 옵티머스와 젠투, 무역금융 등 환매 중단된 펀드들이 계속 나오고 있어 2년 내에 150곳은 문을 닫을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고 전했다.
판매사, 검증 안했나 못했나
판매사들은 제대로 검증도 하지 않고 사모펀드를 팔았다. 초저금리 시대에 ‘예금금리+’ 상품에 열광하는 자산가들을 겨냥했다. 은행, 증권사들은 신생 사모펀드 운용사의 확정금리형 상품을 경쟁적으로 유치했다. 라임의 플루토 펀드와 무역금융펀드, 옵티머스 공공기관 매출채권 펀드, 독일 헤리티지 파생결합증권(DLS) 등이 대표적이다. 연 3~5%의 안정적인 수익을 돌려주는 상품으로 입소문을 탔다. 판매사는 만기를 6개월 수준으로 짧게 가져가면서 사모펀드 운용사들에 펀드 규모를 확대할 것을 요구했다.
한 판매사 관계자는 “옵티머스 펀드도 자산가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자 NH투자증권이 욕심을 내면서 공격적으로 팔았다”며 “지점에서 상품본부에 판매를 승인해달라고 거꾸로 요청하는 사모펀드도 많았다”고 전했다. 이런 과정에서 상품 검증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신생 운용사들은 판매사 요구에 응했다. 불가능한 운용 방식을 가능하다고 속이면서 상품을 만들었다. 사기꾼들은 이 틈을 노려 불량 채권을 우량채권으로 둔갑시키는 수법도 썼다.
금융당국은 여전히 사모펀드 참극의 핵심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시장의 우려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옵티머스 펀드 사고가 터지자 1만여 개에 달하는 사모펀드에 대해 전수조사를 주문한 것이 대표적이다. 한 운용사 대표는 “전수조사 기간이 3~4년 걸리는 데다 회계법인 수준의 실사가 아니라면 실질적으로 큰 의미도 없다”며 “가짜 중위험·중수익 사모펀드를 집중 조사하는 게 시급하다”고 말했다.
조진형/오형주 기자 u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