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代 걸친 투자 50년…'시대가 원하는 기술' 주도한 삼성SDI
1970년 삼성은 신일본전기와 합작해 삼성-NEC(현 삼성SDI)를 세웠다. 주력 제품은 흑백 브라운관과 진공관이었다. 50년 후 전자부품 회사였던 삼성SDI는 세계 배터리 기술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세계 1위 제품만 6개에 달한다. 창립 초기 682명이던 직원은 2만6724명으로 늘었고, 1억원이던 매출은 지난해 10조원으로 10만 배 커졌다. 고(故) 이병철 삼성 선대회장부터 3대에 걸쳐 이어진 투자가 빛을 발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차차세대까지 초격차”

삼성SDI는 1일 경기 용인 기흥사업장에서 창립 50주년 기념식을 열었다. 전영현 삼성SDI 사장은 이날 초격차 기술 중심 기업이 되겠다고 선포했다. 전 사장은 “차세대는 기본”이라며 “차차세대 배터리까지 초격차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50년 전 기술이전을 받던 기업이 원천기술 보유국을 앞질러 ‘기술 초격차’를 벌린 배경에는 총수들의 집념이 있었다. 1960년대 한국의 전자산업은 해외에서 부품을 들여와 조립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1993년 삼성은 일본을 앞지르고 컬러 브라운관 시장 1위에 올랐다. 1970년 일본에서 기술이전을 받아 흑백 브라운관을 생산한 지 23년 만이었다.
3代 걸친 투자 50년…'시대가 원하는 기술' 주도한 삼성SDI
1984년 6월 경영이사회에 참석한 이병철 선대회장은 1988년까지 컬러 브라운관 연간 1000만 개 생산체제를 구축하라고 지시했다. 당시 세계 수요의 10%에 해당하는 규모였다. 사명을 삼성-NEC에서 삼성전관으로 바꾼 회사는 대대적인 설비 증설을 감행해 1200만 개 생산체계를 마련했다. 세계 브라운관 산업의 중심이 일본에서 한국으로 옮겨온 전환점이 됐다.

10년 내다본 투자 결실

3代 걸친 투자 50년…'시대가 원하는 기술' 주도한 삼성SDI
삼성SDI가 배터리 사업에 뛰어든 데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뚝심이 있었다. 회사 관계자는 “당시 배터리는 주력 사업인 디스플레이와 연관성이 높지 않은 데다 삼성은 10년이나 뒤진 후발주자였다”며 “일반적인 최고경영자(CEO)라면 감당할 수 없었던 위험을 감수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삼성전기, 삼성전자 등에서도 운영하던 배터리 사업을 1994년 삼성SDI로 통합했다.

외환위기를 맞은 1998년 이 회장은 오히려 승부수를 던졌다. 대다수 기업이 비용 감축과 씨름하고 있었지만 배터리 설비 확충에 2000억원을 투자했다. 당시 결정으로 2000년 삼성SDI의 소형 배터리 핵심 생산기지인 충남 천안사업장이 세워졌다. 연구개발(R&D)에도 속도가 붙었다. 1998년 세계 최대 용량 소형 배터리를 내놓은 뒤 용량은 커지고 두께는 얇아진 배터리를 연달아 개발했다. 이건희 회장의 결정으로부터 12년 만인 2010년 삼성SDI는 일본 소니를 누르고 소형 배터리 세계 1위에 올랐다.

후발주자에서 단숨에 경쟁사를 앞지르는 ‘퀀텀 점프’ 도약은 소형 배터리에 이어 자동차 배터리에서도 유효했다. 2009년 BMW 최초의 전기차 프로젝트를 수주하면서 경쟁사를 충격에 빠뜨렸다.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 뛰어든 지 불과 9개월 만에 이뤄낸 성과였다. 당시 전무였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해외 자동차 경영진과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수주전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의 배터리산업에 대한 관심은 지난 5월 정의선 현대자동차 수석부회장과의 만남으로도 나타났다. 이 부회장은 전고체 배터리 기술 개발에 대해 직접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에만 7000억원 이상을 투자하는 등 공격적인 R&D도 성과를 내고 있다. 회사 측은 지난 4월 “2021년부터 주행 거리를 기존보다 600㎞ 이상 늘릴 수 있는 5세대 배터리를 양산하겠다”고 발표했다. 전 사장은 이날 “최고의 품질과 안전성을 기반으로 초격차 기술을 확보하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50년을 만들어 나가자”고 밝혔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