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항공의 이스타항공 인수전이 ‘막장’으로 치닫고 있다. ‘1000억원의 부채를 먼저 해결하라’는 제주항공과 ‘임금체불·셧다운을 종용한 책임을 지라’는 이스타항공이 공을 넘기면서 양측 간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업계에선 “딜을 깨기 위한 행보”라는 얘기도 나온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3일 채형석 애경그룹 부회장, 이상직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차례로 만나 “이스타항공 인수합병이 계획대로 성사될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고 당부했다. 애경그룹은 제주항공의 모기업이고, 이 의원 일가는 이스타항공의 최대주주다. 그동안 방관하던 김 장관이 직접 중재에 나선 건 제주항공이 인수 포기로 가닥을 잡았다는 얘기가 파다하게 퍼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제주항공은 지난 1일 이스타항공에 “10영업일 안에 800억~1000억원의 부채를 해소하지 않으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자본잠식 상태인 이스타항공에 해결이 불가능한 조건을 제시해 계약을 파기하겠다는 신호를 보낸 것으로 시장은 보고 있다.

제주항공은 당초 이스타항공의 자산과 인력보다는 한·중 운수권과 슬롯(시간당 항공사 운항 가능 횟수)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인수를 고려했다. 이스타항공은 지난해 5월 인천~상하이 등 ‘황금 노선’을 포함해 주 27회의 중국 운수권을 취득했다. 노선 확대로 저비용항공사(LCC) 중 압도적 1위를 유지한다는 전략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LCC들이 파산 위기에 몰리면서 운수권 가치가 바닥으로 떨어져 인수를 접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제주항공으로선 이스타항공이 전국적 관심사가 된 상황에서 ‘계약을 깼다’는 비판은 피하고 싶을 것”이라며 내용증명을 보낸 이유를 분석했다. 이스타항공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에 ‘셧다운(운항 중단)’을 요구한 뒤 이스타항공은 매출이 없어 빈사상태에 빠졌는데, 갑자기 인수를 중단하면 이스타항공은 부도 수순으로 몰리게 된다. 김유상 이스타항공 경영기획본부장은 “계약서에 제주항공이 임금체불을 책임진다는 내용이 있다”며 “계약이 무산되면 계약서를 공개할 것”이라고 했다. 반면 제주항공은 “대표이사가 책임져야 할 임금체불 문제를 계약서에 넣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애꿎은 이스타항공 직원들만 임금도 받지 못한 채 애태우고 있다. 이스타항공 조종사노조는 “계약이 파기되면 1600여 명의 직원이 한 푼도 받지 못한 채 회사를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