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WTO서 낭보가 들려오길 고대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란 ‘유령’이 세계를 배회하는 가운데 세계 곳곳에서 여성 리더십이 주목받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최근 대만, 뉴질랜드, 독일 등 전염병 사태에 성공적으로 대처한 국가들의 공통점 중 하나로 여성 지도자의 역량을 꼽았다. 국민의 아픔에 공감하고 전문가 의견을 경청할 줄 아는 부드러운 리더십이 돋보였다는 것이다. 최근 확진자가 다시 발생하긴 했지만 지난달 8일 코로나19 종식을 선언했던 뉴질랜드의 여성 총리 저신다 아던이 지은 미소에서 희망을 느낀 사람이 필자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 국민 사이에 신뢰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지금 세계를 배회하는 유령은 코로나19만이 아니다. 보호무역이라는 유령이 우리 수출과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자유무역과 다자주의를 표방하는 세계무역기구(WTO)가 상소기구의 기능 마비와 사무총장의 조기 사임으로 빈사 상태에 들어가면서 공정한 교역질서가 크게 위협받고 보호무역주의는 더욱 기승을 부릴 전망이다.

이 상황에서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차기 WTO 사무총장직에 입후보한 것은 무척 반갑다. 첫 한국 출신 WTO 사무총장이자 역대 최초 여성 사무총장 탄생을 향한 첫걸음이다.

맹자는 혼란에 빠진 천하를 안정시킬 방안으로 천시(天時) 지리(地利) 인화(人和) 세 가지 요소를 제시했다. 모두 유 본부장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내용이다. 천시는 전례 없는 위기에 빠진 다자무역체제가 그 어느 때보다 참신하고 능력있는 리더십을 필요로 함을 의미한다. 코로나19의 성공적 대응으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는 한국에서 글로벌 통상조직 수장이 배출되기에 적절한 타이밍이다.

지리는 한국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입장을 조율하고 이익을 극대화하기에 적절한 위치에 있음을 가리킨다. 한국은 통상질서의 주도권을 두고 치열한 다툼을 벌이고 있는 미국, 중국, 유럽연합(EU)과 모두 무역협정을 체결한 경험과 실력을 보유한 유일한 국가다.

인화는 25년 공직생활 동안 통상 분야 외길을 걸어온 유 본부장의 이력이 말해준다. 그는 중국, 유럽,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등 거대 경제권과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이끌면서 세계무대에서 두터운 인맥을 쌓아온 최고의 전문가로 각 회원국의 신뢰와 통합을 이끌어낼 적임자다. 유 본부장은 최근 주요 20개국(G20) 통상장관회의 등 여러 기회를 통해 자유무역 보호를 위한 국제 여론 조성에 앞장서왔다.

차기 WTO 사무총장을 향한 치열한 국제 여론전은 벌써 시작됐다. 분열과 갈등으로 얼룩진 작금의 통상환경을 연대와 협력으로 극복할 새로운 여성 통상 리더십이 한국에서 탄생하길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