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통 파이프로 변주한 이승조의 추상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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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프 화가' 이승조 30주기展
국립현대미술관서 온라인 개막
60년대 등장한 아방가르드 세대
한국 기하추상 회화 발전 이끌어
원통 이미지를 조형 언어로 제시
예술적 본질로 규정한 '核' 탐구
'핵 F-G 999'등 90여 점 선보여
국립현대미술관서 온라인 개막
60년대 등장한 아방가르드 세대
한국 기하추상 회화 발전 이끌어
원통 이미지를 조형 언어로 제시
예술적 본질로 규정한 '核' 탐구
'핵 F-G 999'등 90여 점 선보여
1968년 제17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서 문화공보부 장관상 수상 거부설이 돌았다. 국전의 고질적인 담합 심사, ‘돌려먹기식’ 수상자 선정 때문이었다. 추상화가 이승조(1941~1990·사진)의 작품 ‘핵(核)-F90’은 일부 심사위원이 대통령상감이라고 평했으나 3등에 해당하는 문공부장관상으로 결정됐다. 서울 동대문여중 교사이던 이승조는 “상을 타기도 어렵지만 안 타는 것이 더 어렵다”며 결과를 받아들였다.
최고상은 놓쳤지만 추상회화의 입상이 드물던 보수적인 국전에서 그의 수상은 큰 화제였다. 더욱이 이승조는 이후 내리 4년 동안 문공부장관상 2회, 특선 2회를 받아 파란을 일으켰다. ‘파이프’를 연상시키는 원통 단위를 조형언어로 제시하고 국내 화단에서는 보기 드물게 일궈낸 기계미학적 추상회화에 대한 평가였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지난 1일 온라인으로 개막한 ‘이승조: 도열하는 기둥’ 전은 한국 기하추상의 발전을 이끈 그의 30주기 회고전이다. 과천관에서 지난달 18일 개막할 예정이었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연기돼오다 온라인으로 먼저 선보였다. 작가가 1968년 이후 마흔아홉 살에 타계할 때까지 작업한 회화 작품 90여 점을 모았다.
평북 용천 태생인 ‘파이프 작가’ 이승조는 1960년대에 등장한 아방가르드 세대로, 엄격한 기하학적 추상의 전형을 이룩한 화가로 손꼽힌다. 홍익대 서양화과 60학번 동기인 최명영 서승원 등과 함께 주관적 감정이 개입되지 않은 순수회화로의 환원을 지향하며 1962년 그룹 오리진을 결성했다. 현상학 이론, 개념미술, 미니멀리즘 등 현대미술의 흐름에 적극 호응하면서도 자신이 개척한 ‘핵’의 고유성을 놓치지 않았고, 타계 몇 년 전부터는 회화와 오브제의 접목을 시도하며 알루미늄, 황동, 나무패널로 캔버스를 대체하는 실험도 했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1968년 제12회 현대작가초대전에서 발표한 ‘핵 10’이다. 검은색과 하얀색의 넓은 화면 가운데 세로로 배치한 빨강 노랑 파랑의 삼원색 색띠 사이에 하늘색 원기둥이 선명하다. 파이프 모양의 조형이 등장하는 첫 작품이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이정윤 학예연구사는 “파이프로 불리는 특유의 조형성은 색의 띠를 채색하는 과정에서 얻어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작가는 생전 인터뷰에서 “기차 여행 중 얼핏 망막을 스쳐가는 무언가가 있었는데, 집에 돌아온 즉시 이틀 밤을 꼬박 새우며 마음에 남은 이미지를 조작한 결과 파이프적인 그림을 완성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그의 작업에는 파이프 조형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1969년 한국청년작가연립전에 출품한 ‘핵 PM-76’은 그때 이후 처음으로 이번 전시에서 공개됐다. 1970년작 ‘핵 F-G 999’는 금속성이 뚜렷한 파이프를 V자로 배열한 모습인데, 기계문명의 차갑고 세련된 감각을 반영한다.
이 과정에서 이승조는 독자적인 채색 방법도 고안해냈다. 마스킹테이프로 캔버스에 구획을 정한 다음 끝이 일직선인 평붓으로 색을 칠해 그러데이션(gradation·단계적 변화) 효과를 끌어냈다. 또한 색을 칠한 뒤 화면을 사포로 갈아내 금속성 광택의 효과를 더했다. 이 같은 방법에 대해 미술평론가 이일은 “발명에 가까운 기술”이라고 극찬했다.
이승조는 시대사조와 유연하게 호흡하면서도 파이프 조형이라는 핵은 유지했다. 1970년대에 접어들면 형태와 바탕의 엄격한 위계가 사라지고 금속성의 질감 대신 투명하고 부드러운 사선의 결이 등장한다. 국내 화단에 모노크롬이 풍미하던 1970년대 후반 그는 검은 화면의 핵 연작을 거침없이 발표했다. 여기서 그는 단색화의 시대사조와 함께하면서도 단색화의 탈이미지 사조와 달리 파이프 형상은 살려놨다. 캔버스 대신 알루미늄, 나무 패널 등을 사용한 작품도 볼 수 있다.
이번 전시에는 벽을 가득 차지하는 대작도 여럿 있다. 전시실 입구 중앙홀에 걸려 있는 대작은 1983년 작가가 경기 안성에 마련한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것들이다. 이번 전시 출품작의 대부분은 유족이 소장한 것인데, 마치 근작처럼 보존 상태가 양호해서 놀랍다.
전시는 10월 4일까지로 예정돼 있지만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변동될 수 있다. 지난 1일 인스타그램 라이브로 생중계한 온라인 개막 영상은 이틀 만에 조회 수 1만5000건을 넘을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다.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최고상은 놓쳤지만 추상회화의 입상이 드물던 보수적인 국전에서 그의 수상은 큰 화제였다. 더욱이 이승조는 이후 내리 4년 동안 문공부장관상 2회, 특선 2회를 받아 파란을 일으켰다. ‘파이프’를 연상시키는 원통 단위를 조형언어로 제시하고 국내 화단에서는 보기 드물게 일궈낸 기계미학적 추상회화에 대한 평가였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지난 1일 온라인으로 개막한 ‘이승조: 도열하는 기둥’ 전은 한국 기하추상의 발전을 이끈 그의 30주기 회고전이다. 과천관에서 지난달 18일 개막할 예정이었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연기돼오다 온라인으로 먼저 선보였다. 작가가 1968년 이후 마흔아홉 살에 타계할 때까지 작업한 회화 작품 90여 점을 모았다.
평북 용천 태생인 ‘파이프 작가’ 이승조는 1960년대에 등장한 아방가르드 세대로, 엄격한 기하학적 추상의 전형을 이룩한 화가로 손꼽힌다. 홍익대 서양화과 60학번 동기인 최명영 서승원 등과 함께 주관적 감정이 개입되지 않은 순수회화로의 환원을 지향하며 1962년 그룹 오리진을 결성했다. 현상학 이론, 개념미술, 미니멀리즘 등 현대미술의 흐름에 적극 호응하면서도 자신이 개척한 ‘핵’의 고유성을 놓치지 않았고, 타계 몇 년 전부터는 회화와 오브제의 접목을 시도하며 알루미늄, 황동, 나무패널로 캔버스를 대체하는 실험도 했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1968년 제12회 현대작가초대전에서 발표한 ‘핵 10’이다. 검은색과 하얀색의 넓은 화면 가운데 세로로 배치한 빨강 노랑 파랑의 삼원색 색띠 사이에 하늘색 원기둥이 선명하다. 파이프 모양의 조형이 등장하는 첫 작품이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이정윤 학예연구사는 “파이프로 불리는 특유의 조형성은 색의 띠를 채색하는 과정에서 얻어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작가는 생전 인터뷰에서 “기차 여행 중 얼핏 망막을 스쳐가는 무언가가 있었는데, 집에 돌아온 즉시 이틀 밤을 꼬박 새우며 마음에 남은 이미지를 조작한 결과 파이프적인 그림을 완성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그의 작업에는 파이프 조형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1969년 한국청년작가연립전에 출품한 ‘핵 PM-76’은 그때 이후 처음으로 이번 전시에서 공개됐다. 1970년작 ‘핵 F-G 999’는 금속성이 뚜렷한 파이프를 V자로 배열한 모습인데, 기계문명의 차갑고 세련된 감각을 반영한다.
이 과정에서 이승조는 독자적인 채색 방법도 고안해냈다. 마스킹테이프로 캔버스에 구획을 정한 다음 끝이 일직선인 평붓으로 색을 칠해 그러데이션(gradation·단계적 변화) 효과를 끌어냈다. 또한 색을 칠한 뒤 화면을 사포로 갈아내 금속성 광택의 효과를 더했다. 이 같은 방법에 대해 미술평론가 이일은 “발명에 가까운 기술”이라고 극찬했다.
이승조는 시대사조와 유연하게 호흡하면서도 파이프 조형이라는 핵은 유지했다. 1970년대에 접어들면 형태와 바탕의 엄격한 위계가 사라지고 금속성의 질감 대신 투명하고 부드러운 사선의 결이 등장한다. 국내 화단에 모노크롬이 풍미하던 1970년대 후반 그는 검은 화면의 핵 연작을 거침없이 발표했다. 여기서 그는 단색화의 시대사조와 함께하면서도 단색화의 탈이미지 사조와 달리 파이프 형상은 살려놨다. 캔버스 대신 알루미늄, 나무 패널 등을 사용한 작품도 볼 수 있다.
이번 전시에는 벽을 가득 차지하는 대작도 여럿 있다. 전시실 입구 중앙홀에 걸려 있는 대작은 1983년 작가가 경기 안성에 마련한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것들이다. 이번 전시 출품작의 대부분은 유족이 소장한 것인데, 마치 근작처럼 보존 상태가 양호해서 놀랍다.
전시는 10월 4일까지로 예정돼 있지만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변동될 수 있다. 지난 1일 인스타그램 라이브로 생중계한 온라인 개막 영상은 이틀 만에 조회 수 1만5000건을 넘을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다.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