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가 협력한다'는 조항에서
'휴직' 삭제해 합의문 초안 수정
정부, 강경파 요구 받아줬지만
민주노총, 협약식 직전 불참 통보
지난달 29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 노사정이 합의문 초안을 마련하자 민주노총은 같은 날 오후 5시 이를 승인하기 위해 중앙집행위원회를 열었다. 하지만 강경파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혀 민주노총은 밤 12시를 넘기도록 승인을 이끌어내는 데 실패했다.
민주노총 강경파는 가장 큰 반대 이유로 합의문 초안에 자신들이 요구했던 ‘해고 금지’가 명문화되지 않은 것을 들었다. 하지만 기업들에 해고를 전면 금지하도록 하는 것은 경영계는 물론 정부도 무리한 요구라고 선을 그어 협상의 여지가 거의 없었다. 심지어 노동계 내부에서도 “코로나19로 이미 수십만 명이 직장을 잃은 상황에서 노사정 합의문에 해고 금지를 명문화하는 게 현실성이 없다”는 비판이 나왔다.
그러자 민주노총 강경파는 노사정 합의문 초안에 들어가 있던 이른바 ‘4대 독소조항’을 문제삼았다. △근로시간 단축, 휴업·휴직 등 조치 시 노동계가 협력 △사용자들이 휴업수당 감액 신청 시 신속 승인 △특수형태근로종사자 고용보험 도입 시 노사 및 당사자 의견 수렴 △경사노위에서 합의사항 이행 점검 등이다.
4대 독소조항 등을 근거로 강경파 반대가 수그러들지 않자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지난달 30일 새벽 3시30분 이재갑 장관을 호출했다. 이 장관에게 합의문 초안 수정을 요구하기 위해서다.
민주노총이 참여한 사회적 대타협이 절실했던 정부는 민주노총의 요구를 받아들였고 30일 다시 노사정 부대표급 회의를 소집했다. 결국 ‘노동계는 근로시간 단축, 휴업·휴직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경우 협력한다’는 합의문 초안 문구에서 ‘휴직’이 삭제됐다. 사용자가 경영난을 이유로 근로자 휴직을 남발하면 대량 해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민주노총 강경파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경영계에선 “초유의 위기 상황에서 휴직도 거론 못 하면 도대체 협상을 왜 하느냐”는 불만이 나왔지만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민주노총의 나머지 3개 조항은 정부로서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였다.
노사정 대표들은 최종 합의문까지 바꾸라는 민주노총의 요청을 들어줬지만 이달 1일 협약식은 결국 무산됐다. 협약식 개최를 불과 15분 남기고 민주노총이 일방적인 ‘불참 통보’를 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민주노총에 의한, 민주노총만을 위한’ 사회적 대화라는 비판이 나온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도 “(사태가 이렇게까지 된 것에 책임을 지고) 민주노총과 정부는 사과해야 한다”고 밝혔다.
최종석 전문위원/백승현 기자 js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