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과 관련한 핵심 기술이 최근 중국에 넘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한 대학 현직교수 A씨를 기술 유출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이 기술은 차량이 스스로 주변 물체를 인식하고 피해갈 수 있도록 해줘 자율주행차의 ‘중추신경계’로 불린다. 세계 최대 차량공유업체인 우버와 구글 모기업인 알파벳이 비슷한 기술을 놓고 2700억원대 소송을 벌이기도 했다.
검찰은 A교수가 국내에서 연구비를 지원받아 개발한 기술을 고스란히 중국에 넘겼다고 보고 있다. A교수는 출국금지됐다. 업계에선 “유출되는 기술의 80%가 중국으로 가고 있다”며 “미·중 무역분쟁이 격화하면서 첨단 기술을 빼가려는 중국의 유혹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산업기술 유출은 기업의 생사를 가를 정도로 심각한 피해를 주지만 정작 처벌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2014년 현대·기아자동차의 설계도면이 무더기로 유출돼 중국 업체의 신차 개발에 쓰였고, 2018년엔 삼성디스플레이 협력사 직원들이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기술을 중국으로 유출하려다 적발됐다. 하지만 사건 관련자들은 모두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최근 3년간 전국 법원에 접수된 ‘산업기술의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사건 중 실형이 선고된 건은 4%에 불과하다.

산업계에선 “적발 시 받는 처벌보다 이득이 크다 보니 기술 유출 유혹에 시달리는 건 당연한 일”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재판까지 이어지는 기술 유출 사건은 매년 20~30건씩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산업기술보호법은 산업기술을 외국에서 사용하거나 사용할 목적으로 빼돌리면 15년 이하 징역 또는 15억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신차 설계도면 빼돌려도 집행유예…실형 선고 3년간 3건뿐

구글 모기업 알파벳의 자회사로 자율주행차 관련 업체인 웨이모는 우버와 1년여간 자율주행차 첨단기술을 두고 소송을 벌였다. 웨이모 출신 직원이 회사를 떠나기 전 자율주행차 핵심기술이 포함된 1만4000건의 기밀문서를 빼돌렸고 이를 우버 측이 활용했다는 의혹이었다. 소송은 2018년 우버가 알파벳에 2700억여원을 지급하면서 마무리됐다. 최근 검찰이 대전의 한 대학교수 A씨가 중국에 넘긴 것으로 의심하고 있는 기술도 알파벳과 우버의 소송에서 문제가 된 핵심기술과 같은 종류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술 유출은 기업의 생존을 넘어 국가 산업의 흥망과 맞닿아 있다. 중국의 ‘한국 인력 빼가기’가 점차 노골화되고 신기술 확보 싸움이 미래산업의 주도권 싸움으로 이어지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엔 더 교묘하고 치열하다. 하지만 기술 유출 범죄의 심각성에 비해 처벌은 여전히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중국 ‘천인계획’에 핵심기술 넘어가”

5일 법조계와 학계 등에 따르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최근 A교수를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대전지방검찰청에 고발했다. A교수는 2017년부터 중국 정부의 ‘천인계획(千人計劃)’에 참여 중인데, 중국의 한 대학으로부터 월급과 장려금 등 수억원을 받고 첨단기술을 넘겼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천인계획은 중국의 해외 두뇌 영입 프로젝트다. 세계 과학자와 인공지능(AI) 전문가들로부터 입수한 첨단기술을 군사기술에 활용하는 정책이다. 연구개발업계 한 관계자는 “중국은 대학을 기술 유출 창구로 쓰곤 한다”고 전했다.

A교수가 유출했다는 혐의를 받는 기술은 해당 대학이 2018년 10월 참여한 산업통상자원부 주관 ‘2018 한국 전자전’에서도 소개된 적이 있다. 이 대학 관계자는 “A교수가 검찰에 고발된 것은 맞다”면서도 “천인계획 참여는 교수가 개인적으로 지원한 것”이라고 말했다. A교수 측은 이 의혹과 관련해 검찰에 소명하고 조사에도 협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한국 전문인력 빼가기’는 점차 노골화되는 추세다. 지난해 한국무역협회가 발간한 ‘중국, 인재의 블랙홀’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주로 반도체, 배터리, 항공 등 첨단 업종에서 인력을 빼가고 있다. 한국 인재를 대상으로 기존 연봉의 서너 배를 제시한다.

기술 유출, 3년간 실형 선고는 4%

인력 유출에 따른 기술 유출 범죄는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2014년 싼타페, K7 등 현대·기아자동차 차량의 설계도면이 줄줄이 중국에 넘어간 사례도 있었다. 당시 현대·기아차 협력업체 관계자인 조모씨 등은 현대·기아차에서 개발 중인 신차를 비롯해 수십 개 차종 설계도면을 중국에 유출했고, 중국 자동차 업체는 이를 토대로 외장과 차체 등을 제작했다. 현대·기아차가 입은 피해액은 700억원대로 추산된다. 2년 뒤 열린 1심에선 이들 모두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지난 2월엔 삼성디스플레이 협력업체 관계자들이 OLED 핵심기술을 중국에 빼돌리려다 적발된 사건에 대한 1심 판결이 나왔다. 역시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피해 회사가 막대한 자원과 노력을 기울여 취득한 산업기술 자료를 중국에서 사용할 목적으로 유출했다”며 “이는 피해 회사에 손해를 가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국민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 죄질이 불량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도 “피고인들이 산업기술 자료를 유출함으로써 실제로 경제적 이익을 취득하지는 못했다”며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국내 산업기술보호법은 절취, 기망 등의 부정한 방법으로 산업기술을 취득하거나 그 기술을 공개하는 행위 등을 금지하고 있다. 최근 3년(2017~2019년)간 산업기술보호법 위반으로 법원에 접수된 사건 수만 총 72건이다. 그중 실형이 선고된 건은 단 3건(4%)에 그쳤다.

한 변호사는 “실제로 기술이 넘어가 피해가 발생했다는 것까지 증명해야 하는데 해외 서버 등을 이용하면 입증하기가 더 어렵다”며 “입증한다 해도 기술 유출로 인해 피고인이 경제적 이득을 취했는지가 양형 기준에 포함되는 점, 중국에서는 기술 유출을 범죄로조차 여기지 않아 수사 공조가 힘들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실형 선고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