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모아 계약한 집 날아갈 판"…6·17 대책 피해자들의 절규
“서른 셋까지 정말 하루하루 열심히 일해서 돈 1억원을 겨우 만들었습니다. 집안 형편도 어려워 4000만원 넘는 대학 학자금을 혼자 갚은 뒤 모은 돈입니다. 남들 쉴 때도 일하고 먹고 싶은 것도 제대로 못 먹으며 집을 가지고 싶다는 일념으로 살았습니다. 잔금 대출이 70% 나온다고 해서 아파트 계약을 했습니다. 그런데 정부에서 이미 계약한 건까지 잔금 대출 한도를 줄인다고 하네요. 투잡 쓰리잡을 뛰어도 잔금이 부족할 것 같아서 너무 힘듭니다. 이 글이 유서가 아니기를 기대합니다.” (‘6·17 규제 소급적용 피해자 구제를 위한 모임’ 네이버 카페 게시물)

‘6·17 부동산대책’으로 피해를 입은 이들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70%로 예상하고 아파트 구입 자금을 조달하기로 계획을 짰는데 갑자기 정부가 잔금대출 한도를 줄였다는 게 이들의 하소연이다. 관련 네이버 카페는 회원수가 이미 8000명을 훌쩍 넘어섰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6일 “보완책을 내놓겠다”고 했지만 이들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는 모양새다.

이들이 이번 부동산 규제에 분노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미 계약한 아파트 분양에 대한 잔금대출 한도까지 갑자기 쪼그라들었다는 점이다. 정부는 ‘6·17 대책’을 발표하면서 이전에 아파트 청약에 당첨됐거나 계약한 주택의 대출에 대해서는 규제 지역 지정 이전의 LTV(비규제지역 70%)를 적용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잔금대출에 대해서는 ‘중도금대출을 받은 범위 내’에서 기존 잔금 대출에 적용됐던 LTV를 적용한다는 단서 조항을 달았다.

일반적으로 아파트를 분양받으면 전체 분양가의 10%를 계약금으로 낸다. 이후 아파트가 건설되는 2~3년 동안 분양가의 60%는 중도금 대출을 받아 낸다. 마지막으로 입주 시점에 나머지 분양대금 30%를 잔금으로 치르게 되는데, 대부분 입주자는 은행에서 돈을 빌려 기존 중도금 대출을 승계하고 잔금에도 충당한다. 한마디로 아파트를 분양받는 사람 중 대부분이 2~3년 뒤 잔금 대출을 받을 때 현재의 LTV를 적용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자금 조달 계획을 짠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번 대책으로 잔금 대출 한도가 급격히 줄었다. 예컨대 규제 지역으로 지정되기 이전이었다면 잔금납부 때 은행에서 아파트 시세 대비 최대 70%까지 LTV를 받을 수 있었던 아파트는 LTV가 사실상 분양가격의 60% 이하로 확 떨어진다. 만약 중도금 대출 이자를 줄이기 위해 애초에 중도금 대출을 적게 받은 분양자라면 향후 대출 폭은 더욱 줄어든다.

카페 운영진인 A씨(30)가 대표적인 사례다. A씨는 지난해 인천 영종도에 분양가 3억5000만원 상당의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3000만원 안팎의 계약금도 이미 지불했다. 하지만 이번 부동산 규제로 영종도가 조정대상지역으로 분류되면서 잔금 대출 한도가 쪼그라들었고, 제대로 잔금을 납부할 수 있을지조차 장담할 수 없게 됐다. 그는 “결혼 등 인생 전반의 계획이 완전히 흔들리고 있다”며 “잔금을 마련하기 위해 월급을 더 주는 중국 지사로 파견을 신청할 지 고민 중”이라고 털어놨다.

A씨같은 사례는 수없이 많다. 그는 6·17 규제가 발표된 지 며칠 뒤 '오픈 카톡방'을 만들었다고 했다. 오픈 카톡방은 누구나 주제를 검색하면 대화에 참여할 수 있는 카카오톡 방이다. 그는 "오픈 카톡방을 만들었더니 단숨에 최대 인원인 1500명까지 꽉 차고, 유사 방이 계속 만들어졌다"며 "누군가 카페를 개설해 이전엔 서로 알지도 못했던 여러 사람들이 임시 운영진으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A씨 등 카페 회원들은 지난 4~5일 서울 신도림역 인근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피해자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홍 부총리는 지난 6일 한 방송에 출연해 "보완책을 내놓겠다"고 했다. 하지만 반응은 싸늘하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기존에 등록한 임대사업자들에게까지 세제 혜택 폐지를 소급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규제를 소급 적용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어서다. 한 카페 이용자는 “대책을 발표한 뒤 보름 넘게 지나서야 보완책을 검토한다고 하는 등 정부의 태도에 문제가 많다”며 “현 정부를 지지했는데 실수요자들의 절규를 무시하고 말장난만 반복하는 걸 보고 많이 실망했다”는 내용의 글을 남겼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