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사회민주주의의 배신 1944~1985

▲ 반지성주의 시대 = 수전 제이코비 지음, 박광호 옮김.
미국 건국 이래 200년 이상 끈질긴 생명력을 발휘해온 반지성주의의 역사를 돌아보면서 조지 W. 부시나 도널드 트럼프와 같은 '반지성적' 정치인이 득세하는 현상이 우연이 아님을 밝혀낸다.

저자는 1890년대 이래 변하지 않는 미국 반지성주의와 반합리주의의 중대한 구성 요소로 두 가지를 든다.

첫 번째로 지성주의와 세속의 고등교육이 신앙의 완강한 적이라는 믿음이다.

특히 1960년대 이후 부활한 종교적 근본주의가 많은 지역의 공교육에 악영향을 끼쳤는데, 이는 미국 고등학생들이 유럽과 아시아의 동년배보다 과학 지식이 부족한 이유 중 하나다.

두 번째로는 사이비 과학이라는 독소를 지적한다.

다윈의 진화론을 사회 영역에 적용해 과도한 부와 빈곤 체제를 합리화하려 했던 사회다원주의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득세했던 우생학, 20세기 중반의 '객관주의' 철학, 최근의 시장경제 숭배와 온갖 정크 과학에 이르기까지 그 계보는 길게 이어진다.

저자는 또 지난 40년간 미국에서 반지성주의를 증폭시킨 또 다른 원동력으로 활자문화에서 영상문화로의 급격한 이행을 지목한다.

미국 지성사에서 1960년대가 중요한 이유는 영상문화에 의한 활자문화의 쇠퇴가 시작됨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넘쳐나는 정보를 주체적으로 받아들이고 판단하는 능력의 쇠퇴는 과학과 종교에 관한 대중의 무지를 강화한다.

미국인의 3분의 2 이상이 DNA가 유전을 밝히는 열쇠임을 알지 못한다거나 성인 다섯에 하나는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고 확신하며 2001년 소설이나 시집을 한 권이라도 읽은 미국 성인은 절반이 채 되지 않았다는 통계는 초·중등학교 공교육이 놀랄 만큼 실패했음을 가리킨다.

이는 지구온난화를 거짓말이라고 일축한 트럼프를 유권자들이 심판하지 않은 이유도 설명해 준다.

2008년 초판 출간 때는 부시 전 대통령을 염두에 뒀으나 트럼프의 등장으로 개정판을 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2018년에 나온 원서 개정판에는 트럼프의 등장 의미와 더욱 막강해진 소셜 미디어의 영향력에 대한 분석 등이 추가됐다.

오월의봄. 528쪽. 2만5천원.
[신간] 반지성주의 시대·몸젠의 로마사 제5권
▲ 몸젠의 로마사 제5권 = 테오도르 몸젠 지음, 김남우·성중모 옮김.
독일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테오도르 몸젠(1871~1903)의 역저 '로마사' 전 10권 가운데 다섯 번째로 로마의 혁명 시대, 특히 그락쿠스 형제의 개혁과 좌절을 주로 다룬다.

카르타고를 제압한 로마는 지중해 세계의 패자가 되지만, 안으로는 실정이 거듭돼 국가의 정치적·군사적·경제적·윤리적 타락이 극에 달했다.

이런 상황에서 기원전 134년 호민관에 오른 티베리우스 그락쿠스는 소유자가 무상으로 사용하던 국유지를 국가가 환수하는 농지법을 발의함으로써 대토지 소유자들에게 선전포고했다.

그러나 그는 공유지 문제를 당시 로마를 통치하던 원로원이 아닌 민회로 가지고 가는 '혁명'을 일으킴으로써 결국 귀족들에 의해 죽음에 이르고 만다.

그의 동생 가이우스 그락쿠스는 형이 추진했던 농지법을 진일보 시켜 지금까지 토지 분배에서 제외됐던 지역을 포함하고 새로운 식민지를 국유지로 만든 후 이를 이탈리아 무산자들에게 제공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원로원이 맡아온 행정 권한을 호민관으로 이전하고 원로원 의원들을 심판인에서 배제하는 등 정치·사법 개혁도 시도했다.

그러나 원로원은 가이우스 그락쿠스와 상인·무산자들 사이를 이간질하는 전략으로 그를 낙마시켰으며 호민관 3선에 실패한 그는 형과 같은 운명을 피하지 못한다.

폭력 사태로 그락쿠스 형제 등 혁명 지도자들을 잃으면서 주춤하던 민중당파는 전쟁 영웅 가이우스 마리우스에게 다시 한번 희망을 걸었고 무려 7번이나 그를 집정관으로 뽑았다.

그러나 정작 그는 결정적인 순간 민중당파의 혁명과 거리를 두게 된다.

2013년 4월 제1권을 낸 출판사와 옮긴이들은 그로부터 10년 이내에 10권을 전부 번역해 출간할 계획이다.

푸른역사. 376쪽. 2만원.
[신간] 반지성주의 시대·몸젠의 로마사 제5권
▲ 서구 사회민주주의의 배신 1944~1985 = 이언 버철 지음, 이수현 옮김.
마르크스주의 역사가의 눈으로 사회민주주의의 절정기라고 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40년 동안의 역사를 추적해 사민당과 공산당이 어떤 궤적을 밟았는지, 어떤 상호 작용을 했는지를 실증적으로 검토한다.

1960년대 벨기에 총파업, 1968년 반란, 1974~1975년 포르투갈 혁명 등 전후 엄청난 투쟁이 분출했을 때 이들은 어떤 구실을 했는지, 유럽의 심장부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에서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집권했을 때 노동자들의 삶은 얼마나 나아졌는지, 스웨덴, 오스트리아, 독일 등 복지국가 신화의 진정한 교훈은 무엇인지 등을 따져본다.

또 전후 장기 호황과 그 후 경제 위기 시기, 국제적으로 스탈린주의가 쇠퇴하는 과정 등 세계 정치·경제 상황, 세계사적으로 중대한 사건들과 이들의 행보가 어떻게 맞물리는지를 보여준다.

저자는 이렇게 40년간 사회민주주의의 역사를 살펴본 뒤 사회민주주의 형태의 개혁주의가 아직도 엄연히 살아 있고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좌파가 그것에 굴복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결론을 내린다.

원서는 1986년 출간됐다.

저자는 올해 4월에 쓴 한국어판 서문에서 그 이후의 상황 전개에 관해 간략히 언급한 뒤 "사회주의라고 부를 만한 진정한 사회주의는 오직 '아래로부터 사회주의' 뿐이다.

그것은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사회를 운영하고 자신들의 집단적 힘을 이용해서 압도적 다수 인류의 이익이 실현되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투쟁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책갈피. 472쪽. 2만원.
[신간] 반지성주의 시대·몸젠의 로마사 제5권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