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병석 칼럼] '인국공 사태' 끝난 게 아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올 3월까지 3년간 공공기관 363곳에서 정규직으로 바뀐 비정규직은 9만1303명이다. 이들이 정규직으로 전환할 때는 조용했다. 그러다 갑자기 ‘인국공 사태’가 터진 것은 왜일까. 여권에선 가짜뉴스 탓을 한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정규직 전환 인원이 1940명으로 기존 정규직 노조원(1361명)보다 많다는 사실에 숨어 있다. 전환 대상이 보안검색요원(1750명) 등 단일 직종에 집중된 것도 그렇다.

정규직으로 바뀐 이들이 별도 노조로 똘똘 뭉치면 인국공의 대표 노조가 된다. 현행 노동법은 복수노조에선 노조원이 한 명이라도 많은 제1노조에 교섭 대표권을 부여한다. 보안검색요원 노조가 사무직의 임금협상까지 좌우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셈이다. 이런 위기감에 사무직 중심의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결사반대한 것이 인국공 사태를 뜨겁게 만든 원인 중 하나다. 절차의 공정성이 부각된 인국공 사태의 밑바닥엔 이런 노노(勞勞) 갈등의 ‘불편한 진실’이 깔려 있다.

인국공 사태의 배경엔 정규직 노조가 지켜야 할 기득권이 다른 공공기관에 비해 크다는 점도 있다. 이 회사는 전통의 인기 공기업 한국전력을 제치고 지난 3년 연속 대학생이 취업하고 싶은 공공기관 1위를 차지했다. 대졸 신입 정규직 연봉이 4589만원으로 공기업 평균(3669만원)보다 1000만원 정도 많아서다. 지방으로 이전한 다른 공공기관과 달리 인천에 본사가 있어 수도권 출퇴근도 가능하다.

정규직의 특권인 호봉제와 정년보장은 기본이다. 해가 바뀌면 자동으로 고액 연봉이 올라가고 아무리 태만히 근무해도 60세까지는 절대 해고당하지 않는다. 이 호봉제와 정년제는 한국의 노동시장을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가른 비극의 씨앗이기도 하다. 호봉제와 정년제에 따른 인건비 부담과 고용경직성 때문에 기업은 비정규직 채용을 늘리고, 정규직 신규 채용은 줄였다. 그게 비정규직 차별과 청년 취업난의 출발점이다.

이렇게 뿌리를 캐보면 인국공 사태의 해결책은 나온다. ‘대통령 찬스’와 ‘로또식 정규직 전환’은 언 발에 오줌 누기일 뿐이다. 모든 비정규직에게 정규직의 특권을 주는 건 비현실적이고 지속가능하지도 않아서다. 노조도 잘 알고 있다. 방법은 정규직의 기득권을 비정규직과 나눠 격차와 차별을 줄이는 게 현실적이다.

호봉제부터 직무급제와 성과연봉제로 바꾸는 게 시급하다. 똑같은 일을 해도 정규직이 비정규직보다 두 배 가까이 월급을 더 받고, 시간만 지나면 자동으로 임금이 올라가는 것은 과정이 공정하지도, 결과가 정의롭지도 않다. 무슨 일을 어떤 강도로 해서 얼마만큼의 성과를 냈느냐에 비례해 임금을 책정하는 직무급제와 성과연봉제가 노동의 정당한 대가란 측면에서 더 공정하고 정의롭다.

정규직의 정년제도 재검토해야 할 과제다. 고령화 시대에 정년 폐지가 웬 말이냐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직무급제와 성과연봉제가 정착되면 나이가 찼다는 이유만으로 동갑내기 근로자가 동시에 해고되는 정년제는 무의미해진다. 정년이 폐지되면 오히려 더 오래 일할 기회도 주어질 수 있다.

이런 유연한 노동개혁을 하려면 낡은 노동법부터 손봐야 한다. 정년과 호봉제가 규정된 현행 노동법은 1953년 제정 당시 틀에서 바뀐 게 없다. ‘1시간에 벽돌 10장을 찍는 사람은 2시간에 20장을 생산한다’는 1차 산업혁명 때의 계산법이 적용된 법이다. 노동의 질과 생산성을 무시한 노동법으로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고용문제를 풀 수 없다.

노조도 양보할 줄 알아야 한다. 전체 근로자의 10%인 대기업과 공공기관 정규직의 철밥통만 지키려는 노조는 비정규직 문제와 청년 취업난 해결의 걸림돌이 될 뿐이다. 상생의 시대에 그런 노조는 설 자리가 있을 수 없다. 정부도 ‘비정규직 제로(0)’만 외칠 게 아니다. 정규직의 기득권을 허물어 노동시장의 왜곡된 이중 구조를 뜯어고치려는 근원적 접근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차별받는 비정규직과 취업난에 절망한 청년들의 눈물을 닦아줄 수 없다. ‘인국공 사태’는 끝나도 끝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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