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는 출범하며 ‘정의로운 대한민국’이란 구호를 걸었다. 5대 국정 목표를 제시했고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를 그 중심에 배치했다. 국가가 책임지고 교육·보육 등 모든 것을 해결해주겠다는 약속이었다. 정말로 표(票)가 되는 공약이었다. ‘정부가 내 삶을 책임진다’에는 중요한 국가철학이 내포돼 있다. 정부 정책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 그리고 ‘국가 지원 없이는 개인이 합리적 삶을 영위할 수 없다’는 온정주의 정부론의 전제가 깔려 있다.

온정주의 정부에는 윤리적 결함이 내재한다. 국민을 정부에 의존적이고 수동적인 중세적 백성으로 만든다. 근대적 자유 시민이 만들어질 수 없다. 또 정부가 뭐든지 다해주기 위해서 거대한 관료조직,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고 정부의 기능이 커져서 궁극적으로 사회주의화의 길을 가게 된다. 이런 사회주의화에 대한 우려 때문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마지막 저서 《치명적 자만》에서 인간이 면밀하게 디자인해 사회제도를 바꿀 수 있다는 사고를 ‘치명적 자만’의 소산이라고 비판했다.

선의에 기반을 두지만 온정주의 정부는 ‘치명적 자만’의 실패를 범할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를 예로 들자면 첫째, 부동산 가격 관리에 실패했다. 부동산 정책의 핵심은 수요와 공급의 조화로 살 만한 집을 적정한 가격에 제공하는 것이다. 그런데 살 만한 아파트에 대한 수요를 투기로 오판해 적폐로 억누르고 공급을 등한시함으로써 부동산 정책은 총체적 파국에 이르렀다.

둘째로 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를 들 수 있다. 사태의 근본 원인은 청년 일자리 부족이다. 일자리 부족을 정부가 공공 일자리 전환으로 해결하려다 만든 부작용이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불공정’이 개입됐고 채용 지원 기회마저 박탈당한 청년들은 ‘무엇이 공정인가’에 대해 질문하고 좌절하고 있다.

셋째는 재정으로 돈 쏟아붓기 문제다. 지난주 국회는 35조1000억원이라는 역대 최대 ‘초슈퍼 추가경정예산’을 통과시켰다. 문재인 정부 1차 추경 11조7000억원, 2차 추경 12조2000억원에 이은 세 번째 추경이었다. 역대 최대 추경은 2013년의 17조3000억원이었는데 그 두 배 규모를 통과시킨 것이다. 핵심은 세금 나눠주기만으로 성장률 저하를 막을 수 있느냐다. 그래도 효과가 나지 않으면 더 큰 추경을 할 것인가라는 반문도 있다. 이 때문인지 정치권은 3차 추경 통과 직후 4차 추경을 준비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핑계로 재난지원금을 한 번 더 주자는 논리다. 그리스 재정위기의 원인 제공자인 포퓰리스트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 총리가 했던 “국민이 원하는 것은 다 주라”는 지시와 다르지 않다.

더 큰 문제는 헌법 제54조가 보장한 ‘국회는 국가의 예산안을 심의·확정한다’는 예산심사권을 국회 스스로 포기한 것 같다는 것이다. 국회 운영위원회의 47분 예비심사, 상임위원회 차원의 하루 예비심사,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사흘간 35조원 검토를 예산심사라고 하기는 어렵다. 행정부 견제라는 국회의 존재이유가 하나 사라졌다.

다음은 코로나 사태 등으로 제대로 돈 버는 기업이 없는데 국가부채만 늘어나면 누가 책임지느냐는 책임 소재의 문제다. 국가부채는 늘어 가는데 기업이 돈을 벌지 못하면 그 부채는 누가 감당하는지에 대한 당연한 고민이 없다는 것이다. 번영을 약속하지도, 성장도 없이 미래 세대에 부채만 넘기는 무책임한 국민이 되고 있다. 클레이튼 크리스텐슨은 최근 《번영의 역설》에서 번영을 이루고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추동력으로 ‘시장을 창조하는 혁신’을 꼽고 있다. 가난을 잡겠다면 외부 원조기관의 의도와 정부 노력만으로는 안 되고 ‘시장을 창조하는 혁신’이 필요하다고 역발상을 강조한다.

정책은 의도가 아니라 결과다. 문재인 정부는 의도와 달리 부동산 과열, 불공정한 정규직 전환, 부채의 덫이라는 결과를 보여줬다. 온정주의 정부의 정책 실패는 정책들이 시장 원리를 고려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는 무엇이든 해줄 수 있다는 온정주의 거대 정부의 ‘치명적 자만’에서 벗어나 ‘시장 친화’와 ‘시장 혁신’에서 성장과 번영의 길을 물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