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로 간 일본의 수출규제…한·일 갈등 2라운드 돌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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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략 핵심소재 수출 통제
1년 지났지만 규제는 그대로
한국, WTO에 일본 제소했지만
분쟁 해결까진 긴 시간 필요
내달 강제징용 자산압류 앞둬
일본의 2차보복 우려도 커져
1년 지났지만 규제는 그대로
한국, WTO에 일본 제소했지만
분쟁 해결까진 긴 시간 필요
내달 강제징용 자산압류 앞둬
일본의 2차보복 우려도 커져
한국의 무역정책을 총괄하는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5월 12일 긴급 브리핑을 열고 일본 정부에 “(일본이 작년 7월 초) 수출규제를 취하면서 제기했던 세 가지 사유가 모두 해소됐다”며 “5월 말까지 수출규제 원상회복에 대한 구체적인 방침을 밝혀 달라”고 공식 요구했다.
일본 정부는 작년 7월 1일 반도체·디스플레이에 사용되는 세 가지의 핵심 소재·부품에 대한 한국 수출 규제를 대폭 강화했다. 겉으로는 한국 정부의 무역 관리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는 논리를 폈다. 구체적으로 한국 정부가 무기로 쓰일 수 있는 물자를 무기 제조 가능성이 있는 국가(북한 등)에 수출되지 않도록 통제하는 능력이 부족하고, 수출 관리 조직 및 인력이 적으며, 한·일 양국의 수출 관리 정책 대화가 중단돼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실질적으론 2018년 10월 한국 대법원이 강제징용 한국인 피해자들에게 1억원씩 손해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린 것이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한국 정부는 작년 하반기부터 일본이 주장하는 수출규제 사유에 대한 제도 개선에 나섰다. 대외무역법을 개정해 전략물자의 수출 통제를 강화했고, 산업통상자원부 내부에 있는 무역안보 전담 조직을 확대했으며, 한·일 간 비공개 정책 대화를 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5월 12일 브리핑에서 일본의 수출규제 세 가지 사유가 해소됐다고 한 것은 이런 점들을 지칭했던 것이다.
일본의 ‘묵묵부답’에 대응해 우리 정부는 수출 제한 조치에 대한 세계무역기구(WTO) 분쟁 해결 절차를 재개하기로 결정했다. 정부는 작년 9월 WTO에 일본의 수출규제를 제소했다가 양국의 국장급 공무원 대화를 시작하기로 하면서 같은 해 11월 일시 정지해 놨다. 이번에 분쟁 해결 절차를 다시 밟기로 한 것이다. 이로써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는 1년 만에 WTO를 무대로 한 ‘국제적 법리 다툼’ 단계로 넘어가게 됐다.
한국은 1심 재판부에 해당하는 분쟁해결기구(DSB) 패널 설치를 WTO에 요청했다. WTO 분쟁해결기구는 6월 29일 스위스 제네바 WTO 본부에서 패널 설치 요구를 안건으로 논의했지만 일본이 거부해 패널이 바로 설치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7월 말쯤부터는 패널이 본격 가동할 것으로 예상된다. WTO 규정에 따라 7월 말 열리는 다음 회의에선 모든 회원국이 만장일치로 거부하지 않으면 패널은 자동으로 설치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WTO 제소는 국제사회에 수출규제의 부당성을 알려 일본을 압박하는 수단이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실효성이 크지 않을 것이란 반론도 만만치 않다. WTO 상소기구 위원 7명 중 6명이 공석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상소기구 개혁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 점도 앞으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지난 6월 1일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이 일본제철이 갖고 있는 피엔알(PNR·일본제철과 포스코가 합작한 기업) 주식 19만여 주(약 10억원어치)에 대해 ‘압류 명령 결정 공시송달’을 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공시송달은 소송 당사자인 상대방의 주소를 알 수 없거나 상대방이 계속 재판에 응하지 않을 때 법원 게시판 등에 서류를 게재한 뒤 일정 기간이 지나면 내용이 전달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다. 2018년 10월 대법원 판결을 일본제철이 따르지 않아 대구지법 포항지원이 내린 조치다.
대구지법 포항지원은 공시송달 기한을 8월 4일 0시로 정해놨다. 공시송달 효력이 발생하는 즉시 압류명령 결정도 효력이 생긴다. 8월 4일부터는 법원이 PNR 주식을 강제 매각해 현금화하라고 명령할 수 있다는 얘기다. 서면 신문 절차 등을 거쳐 통상 2~3개월 뒤부터는 자산 매각이 가능해진다.
실제 자산 매각 절차가 시작되면 일본은 강력하게 반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은 강제징용 배상 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따라 이미 끝난 문제라고 판단하고 있다. PNR 주식에 대한 자산 현금화 절차가 시작되면 일본은 한국에 대해 즉각적으로 2차 보복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 작년 12월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은 “(현금화를 실행한다면) 한국과의 무역을 재검토하거나 금융 제재에 착수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일 관계가 이처럼 파국으로 치닫는 것은 두 나라 모두에 바람직하지는 않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양국 지도자들이 외교적으로 원만하게 갈등을 해결하는 방안을 찾아내는 지혜가 절실한 상황이다.
이상열 한국경제신문 경제부 기자 mustafa@hankyung.com
2. 국가 간 대립이 있을 때 관세 부과, 수출입 허가제, 수량 규제, 기술·기준 강화, 가격 통제, 투자 제한 등 경제적 보복조치를 취하는 것이 갈등 해결에 도움이 될까.
3. 국제무대에서 국가 간 갈등을 양 당사국 간에 해결하는 것과 세계무역기구(WTO), 국제사법재판소 등 국제기구를 통해 해결하는 방안, 두 가지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효율적일까.
일본 정부는 작년 7월 1일 반도체·디스플레이에 사용되는 세 가지의 핵심 소재·부품에 대한 한국 수출 규제를 대폭 강화했다. 겉으로는 한국 정부의 무역 관리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는 논리를 폈다. 구체적으로 한국 정부가 무기로 쓰일 수 있는 물자를 무기 제조 가능성이 있는 국가(북한 등)에 수출되지 않도록 통제하는 능력이 부족하고, 수출 관리 조직 및 인력이 적으며, 한·일 양국의 수출 관리 정책 대화가 중단돼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실질적으론 2018년 10월 한국 대법원이 강제징용 한국인 피해자들에게 1억원씩 손해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린 것이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한국 정부는 작년 하반기부터 일본이 주장하는 수출규제 사유에 대한 제도 개선에 나섰다. 대외무역법을 개정해 전략물자의 수출 통제를 강화했고, 산업통상자원부 내부에 있는 무역안보 전담 조직을 확대했으며, 한·일 간 비공개 정책 대화를 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5월 12일 브리핑에서 일본의 수출규제 세 가지 사유가 해소됐다고 한 것은 이런 점들을 지칭했던 것이다.
WTO에서 법리 다툼 본격화
하지만 일본 정부는 “다양한 레벨에서 대화해 나갈 것”이라는 원론적 답변을 했을 뿐 5월 말까지 수출규제 원상회복에 대한 구체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사실상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정책을 그대로 이어가겠다는 의중을 드러낸 것이란 평가다.일본의 ‘묵묵부답’에 대응해 우리 정부는 수출 제한 조치에 대한 세계무역기구(WTO) 분쟁 해결 절차를 재개하기로 결정했다. 정부는 작년 9월 WTO에 일본의 수출규제를 제소했다가 양국의 국장급 공무원 대화를 시작하기로 하면서 같은 해 11월 일시 정지해 놨다. 이번에 분쟁 해결 절차를 다시 밟기로 한 것이다. 이로써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는 1년 만에 WTO를 무대로 한 ‘국제적 법리 다툼’ 단계로 넘어가게 됐다.
한국은 1심 재판부에 해당하는 분쟁해결기구(DSB) 패널 설치를 WTO에 요청했다. WTO 분쟁해결기구는 6월 29일 스위스 제네바 WTO 본부에서 패널 설치 요구를 안건으로 논의했지만 일본이 거부해 패널이 바로 설치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7월 말쯤부터는 패널이 본격 가동할 것으로 예상된다. WTO 규정에 따라 7월 말 열리는 다음 회의에선 모든 회원국이 만장일치로 거부하지 않으면 패널은 자동으로 설치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WTO 제소는 국제사회에 수출규제의 부당성을 알려 일본을 압박하는 수단이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실효성이 크지 않을 것이란 반론도 만만치 않다. WTO 상소기구 위원 7명 중 6명이 공석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상소기구 개혁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 점도 앞으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제2의 일본 보복’ 또 나오나
한·일 간 수출규제 갈등이 좀체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두 나라의 갈등은 오는 8월 더 큰 고비를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지난 6월 1일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이 일본제철이 갖고 있는 피엔알(PNR·일본제철과 포스코가 합작한 기업) 주식 19만여 주(약 10억원어치)에 대해 ‘압류 명령 결정 공시송달’을 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공시송달은 소송 당사자인 상대방의 주소를 알 수 없거나 상대방이 계속 재판에 응하지 않을 때 법원 게시판 등에 서류를 게재한 뒤 일정 기간이 지나면 내용이 전달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다. 2018년 10월 대법원 판결을 일본제철이 따르지 않아 대구지법 포항지원이 내린 조치다.
대구지법 포항지원은 공시송달 기한을 8월 4일 0시로 정해놨다. 공시송달 효력이 발생하는 즉시 압류명령 결정도 효력이 생긴다. 8월 4일부터는 법원이 PNR 주식을 강제 매각해 현금화하라고 명령할 수 있다는 얘기다. 서면 신문 절차 등을 거쳐 통상 2~3개월 뒤부터는 자산 매각이 가능해진다.
실제 자산 매각 절차가 시작되면 일본은 강력하게 반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은 강제징용 배상 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따라 이미 끝난 문제라고 판단하고 있다. PNR 주식에 대한 자산 현금화 절차가 시작되면 일본은 한국에 대해 즉각적으로 2차 보복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 작년 12월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은 “(현금화를 실행한다면) 한국과의 무역을 재검토하거나 금융 제재에 착수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일 관계가 이처럼 파국으로 치닫는 것은 두 나라 모두에 바람직하지는 않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양국 지도자들이 외교적으로 원만하게 갈등을 해결하는 방안을 찾아내는 지혜가 절실한 상황이다.
이상열 한국경제신문 경제부 기자 mustafa@hankyung.com
NIE 포인트
1.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따라 일제감정기에 대한 보상이 끝났다는 일본과 강제징용, 위안부 등 개인에 대한 배상이 남아 있다는 한국의 대립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2. 국가 간 대립이 있을 때 관세 부과, 수출입 허가제, 수량 규제, 기술·기준 강화, 가격 통제, 투자 제한 등 경제적 보복조치를 취하는 것이 갈등 해결에 도움이 될까.
3. 국제무대에서 국가 간 갈등을 양 당사국 간에 해결하는 것과 세계무역기구(WTO), 국제사법재판소 등 국제기구를 통해 해결하는 방안, 두 가지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효율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