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결국 여자가 문제'라는 논리 불과…본질은 권력자 견제·비판기구 부재"
"안희정과 박원순의 공통점은 여자 비서다.

여성의 일관된 주장이 진실이 되는 더러운 세상에서는 펜스룰만이 답이다.

"
지난 10일 숨진 채 발견된 박원순 서울시장이 최근 전직 비서로부터 성추행 혐의로 고소당한 사실이 알려지자 온라인을 중심으로 일명 '펜스룰'을 지지하는 의견들이 다시 올라오고 있다.

'펜스룰'은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하원의원 시절이던 2002년 인터뷰에서 "아내를 제외한 여성과 단둘이 식사를 하지 않고, 아내 없이는 술자리에 가지 않는다"고 밝힌 데서 유래했다.

국내에서는 '미투' 운동 확산 이후 직장에서 여성을 배제하는 현상을 뜻하는 용어로 쓰일 때가 많다.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박 시장이 성추행 의혹 속에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 뒤 '여성 비서를 고용하지 말자'는 취지의 글까지 올라오고 있다.

"굳이 여비서 쓸 필요도 없는데 아예 말 나올 일 없게 이참에 남비서로 다 바꿨으면 좋겠다", "만에 하나 잘못될 수 있으니 직속 비서로는 남자를 쓰는 게 더 낫겠구나 싶다"는 식이 대부분이다.

젠더 문제 연구자들은 이런 현상이 성폭력 원인을 피해자에게 돌리는 전형적 방식이며, 여성의 사회진출을 막고 유리천장을 공고히 만드는 논리라고 비판한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12일 "펜스룰의 전제는 권력구조의 최정점을 당연히 남성이 차지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결국 여자가 문제이기 때문에 여자를 공적 영역에서 추방해버리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펜스룰은 2018년 국내에서 미투(#Metoo, 나도 당했다) 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자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등장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 오거돈 전 부산시장 등의 성추문이 불거졌을 때도 어김없이 거론됐다.

미투 열풍이 한창이던 2018년 4월에는 채용·고용 과정에서 성별에 의해 불이익 발생을 방지하는 내용을 담은 일명 '펜스룰 방지법'이 국회에서 발의됐으나 입법되지 못하고 폐기됐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는 "성별과 관계없이 모두가 평등하게 일할 수 있는 여건을 어떻게 만들지를 고민해야지, 그렇게 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여성과 무작정 거리를 두려고 하는 것은 그 자체로 차별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윤김지영 교수는 "문제는 자치단체장 등 권력자에 대한 견제와 비판을 할 수 있는 기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패턴화된 권력형 성범죄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여성 직원을 자르는 것이 아니라 남성 중심적 조직문화 속에서 이러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대응할 수 있는 체계적인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견제할 감시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