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원해도 못 걸어"…`햄버거병` 후유증에 속 타는 가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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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전인 지난달 12일 안산 A 유치원에서 첫 집단식중독 환자가 발생한 후 총 118명의 유증상자가 확인됐다.
이 중 69명은 장 출혈성 대장균 양성 판정을 받았고, 16명은 합병증인 용혈성요독증후군(HUS·일명 햄버거병) 진단을 받았다.
12일 현재 입원한 36명 중 34명(10일 기준)이 퇴원한 상태지만, 집으로 돌아온 아이들은 생각지도 못한 후유증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A 유치원 집단식중독 피해 아동인 B(4) 양의 엄마 C(43) 씨는 지난 10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아이가 3주간 입원을 마치고 집에 왔는데 말하는 거며, 행동하는 게 쌍둥이 동생과 비교해 너무나도 달라져 버려 보고 있으면 속이 타들어 간다"고 했다.
B 양은 A 유치원 7세 반에 다니던 언니로부터 장 출혈성 대장균에 감염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난달 10일부터 언니와 한 욕조에서 함께 목욕한 것이 유력한 감염 경로라는 게 보건당국의 진단이다. 욕조 밖 대야에서 혼자 목욕했던 B양의 쌍둥이 동생에게선 장 출혈성 대장균이 검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C 씨는 B 양이 복통과 설사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 지난 달 14일까지도 유치원으로부터 별다른 연락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하루 이틀 지날수록 아이의 증상이 심각해졌고, 급기야 심한 혈변이 나오기 시작해 고려대 안산병원 응급실에 갔다가 장 출혈성 대장균 합병증인 용혈성요독증후군 진단을 받았다.

투석 치료를 받은 B 양의 컨디션은 조금씩 좋아졌고 지난 7일 퇴원해도 좋다는 의사의 소견을 받았다.
하지만 C 씨는 퇴원만 하면 끝날 줄 알았던 고통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며 답답해했다. C 씨는 지난 9일 아이와 다시 병원을 찾았다. 피, 소변검사를 하고 빈혈 등 각종 수치가 1주일 전보다 나아졌다는 설명을 듣고 안도한 것도 잠시, 예상치 못한 곳에서 위험한 숫자가 나왔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혈압을 쟀는데, 비슷한 연령대 소아의 고혈압 기준(수축기 기준 100∼110mmHg)보다 다소 높은 123mmHg이 나와 고혈압약을 처방받아야 했다.
C 씨는 "약을 먹고 나면 식은땀을 흘린다"며 "어른들도 잘 먹지 않는 약을 먹어야 해서 걱정이고 무엇보다 일시적인 증상이 아닐까 봐 불안하다"고 했다. 담당 의사는 명확한 답을 주지 않은 채 "일 년간 추적 치료하자"고 말했다고 한다.
B 양 외에도 햄버거병 진단을 받은 아이들 중 고혈압으로 약을 처방받은 아이들이 더 있다고 했다.

안 씨는 "사람들은 아이들이 다 나아서 퇴원한다고 생각하는데, 병원에서 해줄 치료가 없어서 나가는 것일 뿐"이라며 "아이들은 여전히 어지럼증과 복통, 코피 등 후유증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보름간 입원 후 집으로 온 다섯살짜리 막내가 자면서 소변을 가리지 못하곤 한다"며 "입원했던 아이 중 다시 기저귀를 차는 아이가 여럿 된다"고 했다.
또 "자다가 갑자기 깨서 `싫어, 하지마`를 외치며 울부짖기도 하고, `배가 아프다`고 했다가도 다시 병원에 가는 게 두려워서 그런지 이내 `하나도 안 아프다`고 한다"며 "여러 개의 주삿바늘, 반복되는 채혈 등으로 너무나 큰 스트레스를 받은 것 같다"고 했다.
A 유치원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이기도 한 안 씨는 "아이들이 되돌아갈 유치원이 없다는 게 가장 힘들다"고 했다.
그는 "아이들이 다니던 곳에서 같은 친구들을 만나는 게 가장 바람직한 방법인데 학부모 90% 이상이 현재 설립자(이사장) 겸 원장이 바뀌지 않는다면 보낼 생각이 없다"고 했다.

안 씨는 "원장만 새로 뽑는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며 "이사장이기도 한 현 원장이 아예 유치원에서 손을 떼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A 유치원 측은 아직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고 했다.
학부모들은 재발 방지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도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 씨는 "원생 절반 정도가 식중독 증상을 보이고 16명이 햄버거병에 걸렸는데, 원인이 없다는 게 말이 되냐"며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히고 미스터리로 묻히면 안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또다시 이런 엄청난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원인을 찾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고 감시하고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B 양 엄마 C 씨도 "엄마들이 원하면 언제든 유치원 급식실을 공개하도록 하는 점검 기능이 의무화됐으면 좋겠다"며 "또 외부기관에서 유치원 먹거리를 철저히 관리하는 등 대책을 마련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사진=연합뉴스)
이휘경기자 ddehg@wow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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