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부동 전투 참전용사 이동철 옹 "현충원 안장 논란 마음 아파"
"행군 도중 부하 대신 박격포 짊어지던 백선엽 사단장님"
"부하를 무척 아끼던 사단장님이었습니다.

유명을 달리하신 그분의 명복을 빕니다.

"
6.25 전쟁 최대 격전지였던 경북 칠곡 다부동 전투에 나섰던 이동철(87·대구시 북구) 옹은 14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별세한 고(故) 백선엽 장군을 떠올리며 이같이 말했다.

이 옹는 전투 당시 국군 1사단 소속 만 17살 소년병이었고 백 장군은 30살 사단장이었다.

대구가 고향인 이 옹은 전쟁이 난 지 2개월이 채 안 된 1950년 8월 15일 입대해 단 3일간 훈련을 받고 1사단에 배속돼 전투를 치렀다.

대구 앞산에 있던 훈련소에서 M1 소총으로 실탄 8발을 쏴 본 게 훈련의 전부였던 터라 포탄이 떨어지고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아비규환이었다.

30여년 만의 가뭄과 낮 최고 37도에 이르는 그해 8월 무더위조차 한순간에 생사가 갈리는 전장에서는 느낄 새가 없었다.

다부동과 낙동강에 걸쳐 있는 전선에서 한 달 내내 백병전을 펼친 그는 같은 중대원(80명)은 물론 대대원(320명) 대다수가 전사하는 아픔을 겪었다.
"행군 도중 부하 대신 박격포 짊어지던 백선엽 사단장님"
전투 개시 한 달여 뒤인 9월 16일 전세를 뒤집은 국군과 미군은 대대적인 반격에 나서면서 북진을 거듭했다.

이 옹은 말로만 듣던 백선엽 사단장 얼굴을 직접 본 것도 그 무렵이었다고 회상했다.

38선을 넘어 행군하던 중 사단장 지프에서 내린 백 장군은 82㎜ 박격포를 어깨에 이고 가던 부하에게서 포신을 건네받아 같이 짊어지고 한참을 걸어갔다.

무게가 20㎏은 족히 돼 보이는 무기를 어깨에 짊어지고 마치 사병처럼 씩씩하게 걸어가던 백 장군의 모습이 70년이 지난 지금도 눈에 선하다고 했다.

이 옹은 그 뒤로도 백 장군이 부하 사병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던 모습을 몇 번 더 목격할 수 있었다.

백 장군 별세 소식을 듣고 지난 12일 전우 3명과 함께 다부동 전적기념관에 마련된 빈소를 찾은 그는 '다부동에서 이루신 승리와 영광은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라고 방명록에 적었다.

이 옹은 "사단장님 부하였던 사람으로서 최근 고인의 현충원 안장 문제와 관련한 논란이 마음 아프다"며 "유명을 달리하신 분의 명복을 빌 따름이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