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이 일파만파로 커지는데도 여성 피해자 보호에 앞장서야 할 여성가족부가 ‘대책 검토’에만 머물러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여가부 관계자는 그제 기자간담회에서 박 전 시장 사건을 서울시로부터 보고받았느냐는 질문에 “시스템상 확인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주무부처로서 적극적 역할을 부정한 꼴이다. 사태 발생 1주일이 지난 어제서야 이정옥 여가부 장관 주재로 여성폭력방지위원회를 열어 “책임을 통감한다”는 언급을 내놨을 뿐이다.

여가부는 정부조직법상 ‘여성의 권익증진 등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는’ 부처다. 여가부 홈페이지에는 ‘성폭력·가정폭력 예방 및 피해자보호’를 주요 업무로 들고 있다. 그런데도 여가부는 지난 4월 오거돈 전 부산시장 성추행 사건 때도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아 비판을 받았다. 여권 인사들 관련 사건이 터질 때마다 함구하는 게 행동수칙인 듯하다.

여가부 업무가 여러 관계 부처와 협력해야 할 부분이 많은 건 사실이다. 2001년 출범 때부터 여가부의 단독 설립보다는 각 부처의 여성 관련 부서를 육성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많았다. 하지만 페미니즘 정부를 표방한 현 정부 들어서도 여가부가 여성인권에 관해 무슨 역할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2018년 2월 미투 발생 당시에도 한 달이 지나도록 아무런 대책과 대응을 내지 않아 질타받기도 했다.

정부가 겉으로는 여성인권을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젠더 감수성을 언급하기도 민망한 수준이다. 여당 수뇌부부터 박 전 시장 성추행 피해자에 대해 입을 맞춘 듯 ‘피해 호소인’이라고 표현하다가 어제서야 ‘피해자’로 표현하기로 했다. 여당 여성의원 30명이 지난 14일 입장문을 낼 때는 ‘피해자’란 단어를 써야 한다는 일부 의원들의 주장을 묵살하고 ‘피해 호소인’으로 통일했을 정도다. 심지어 국가인권위원회까지 박 전 시장 의혹 조사에 착수하면서 ‘피해 호소인’이라고 부르는 판국이다. 이런 식이면 여가부든 인권위든 존재할 이유가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