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주식 시장이 뜨겁습니다. 미국 증시는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에도 사상 최고점을 찍었습니다. 국내 주식시장에도 '10연속 상한가'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 종목이 나오기도 했죠.

올 3월 코로나발 글로벌 증시 폭락 후 'V자 반등' 랠리가 4개월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같은 상승장에서 유독 소외된 시장이 보입니다. 바로 '고위험 고수익' 투자의 대명사였던 가상자산(암호화폐) 시장입니다.

글로벌 증시 랠리 속 위축되는 가상자산 시장

박스권에 갇힌 비트코인 시세(사진=빗썸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박스권에 갇힌 비트코인 시세(사진=빗썸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가상자산 시장도 글로벌 증시 랠리와 함께 급등하긴 했습니다. 가상자산 대장주 격인 비트코인도 이때 저점 대비 2배 넘게 올랐죠. 하지만 5월 이후엔 1000만~1200만원 사이 박스권에 갇혔습니다. 최근에는 변동성이 더 줄어 1100만원대에서 1%내외 등락만 반복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증시는 달랐습니다. 5월 이후에도 랠리를 이어갔습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고위험 고수익)' 성향이 짙은 코인 투자자들은 실망한 기색이 역력합니다. 코인 투자자 상당수가 이미 주식·선물시장으로 이탈한 흔적이 보입니다. 코인 관련 커뮤니티에서도 나스닥, 원유 등 해외선물 투자나 국내 증권 시장 종목들에 대해 토론하는 경우도 늘어난 게 눈에 띕니다.

통계가 이를 뒷받침합니다. 지난 12일 금융위원회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4대 가상자산 거래소(빗썸·업비트·코인원·코빗) 합산 기준 일평균 가상자산 거래액은 지난해 1조3367억원에서 올 들어 7609억원(1~5월 기준)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습니다.
"코인보다 짜릿한 수익률"…주식시장 넘어간 '코린이'들 [김산하의 불개미리포트]
증권시장과 비교하면 감소세가 더욱 두드러집니다.

지난해 가상자산 시장 총 거래액은 487조원을 기록했습니다. 같은 기간 코스피 시장 총 거래액은 1227조4925억원, 코스닥 시장은 1060조1205억원에 달했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가상자산 시장은 코스피·코스닥 시장 절반가량의 거래액을 유지해왔습니다.

그러나 2020년 들어 격차가 크게 벌어졌습니다. 올해 1~5월 기준 코스피 시장 거래액은 908조원, 코스닥은 820조원대를 기록했습니다. 반면 가상자산 시장 거래액은 같은 기간 114조9081억원에 그쳤습니다. 코스닥과 코스피 시장의 7분의 1~8분의 1 수준까지 무너져내린 겁니다.

4년만의 최대 호재에도 '시큰둥'

당초 코인 투자자들은 4년마다 돌아오는 ‘최대 호재’인 비트코인 반감기(비트코인 채굴 보상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것)로 인한 시세 상승을 기대했습니다. 매번 반감기가 올 때마다 비트코인은 크게 상승해왔기 때문이죠.

2017년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 시장에 광풍이 분 것 역시 2016년 반감기 이후부터 이어진 상승세가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이 기간 비트코인 시세는 무려 30배 넘게 급등했습니다.
 사진=한경DB
사진=한경DB
이에 올해 4년 만의 반감기를 맞아 다시 상승 랠리를 이어갈 것이란 전문가들 전망이 잇따랐습니다. 그러나 기대는 무너졌습니다. 반감기 이후 비트코인 시장은 도리어 잠잠해졌습니다. 당장 ‘반감기’라는 큰 재료가 소멸하자 상승을 이끌 재료가 없어진 게 주요 원인으로 보입니다.

반면 글로벌 증시는 코로나19로 인한 각국 경기부양책으로 유동성이 풍부해지면서 최대 호황기를 맞았습니다. 격차가 벌어지자 많은 투자자들이 코인 시장에서 이탈해 증권시장과 선물시장으로 옮겼습니다. 일각에서는 “이제 코인시장은 끝났다”는 말도 나옵니다.

가상자산 시장, 엇갈리는 전문가 의견…하반기 방향성 주목

가상자산 전문가들은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진단할까요.

가상자산 공시정보 플랫폼 ‘쟁글’을 운영하는 크로스앵글의 임현민 리서치센터장은 <한경닷컴>과의 통화에서 "글로벌 유동성이 크게 늘어난 상황에서 기관들 접근성이 높은 주식시장이 가장 많이 오른 것은 당연하다"며 "최근 기관투자자들이 가상자산에 투자할 수 있는 인프라가 늘어나고 있어 하반기에는 코인 시장 상황이 나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그는 현재 가상자산 시장에서 '스테이블 코인(화폐 가치 연동 코인)'의 발행량이 급증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스테이블 코인의 발행량은 가상자산 구입을 위해 현금을 예치하는 금액만큼 증가합니다. 반면 가상자산 시장에 투자한 금액을 현금으로 회수할 때는 감소하죠.

임 센터장은 "스테이블 코인 발행량 증가는 풍부한 유동성이 공급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면서 "가상자산 시장이 지난 2017년과 같은 대호황 장이 재연되는 것은 어려울 수 있겠지만, 비트코인을 비롯한 주요 코인들에 대한 상승 여력은 생길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사진=크로스앵글
사진=크로스앵글
하루 1조원 규모의 비트코인 선물 거래를 일으키는 호주 프롭 트레이딩 기업 스타베타의 김바올 공동대표는 최근의 코인 시장에 대해 "모든 코인이 조용했던 것은 아니다. 기존 가상자산의 유동성이 이자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디파이(탈중앙화 금융) 관련 코인으로 이동하며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분석했습니다.

'디파이'란 가상자산 생태계 내에서 금융의 영역을 담당하는 분야를 일컫습니다. 가상자산을 예치하는 대가로 이자를 분배하거나, 가상자산 대출을 중계해주는 기능 등을 지원합니다.

김 대표는 "지난 몇 주 동안 디파이 프로젝트로 상당한 자금이 몰리며 이들을 통해 빌린 자금과 예치된 자금의 양도 상당히 증가했다. 코로나19가 안정국면에 들어설 경우 이같은 '잠긴 자금'이 다시 가상자산 시장에 풀리며 유동성 증가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습니다.

물론 긍정적 시각만 존재하는 건 아닙니다. 시카고 선물 프롭 트레이딩 기업 '팩터'의 설립자인 피터 브랜트는 "비트코인이 글로벌 경제 위기 속에서도 홀로 강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점치는 사람들이 많지만, 비트코인 가격은 7000(843만원)~7500달러(903만원)까지 하락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알트코인(비트코인을 제외한 가상자산)의 상대적 강세, 31개월에 걸친 비트코인 가격 하락 이슈 등은 투자자 인내를 시험하고 있다. 신뢰 없는 투자자들을 털어내야 비트코인은 다음 강세장을 위한 길을 닦을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피터 시프 유로퍼시픽캐피탈 최고경영자(CEO)는 "대표적인 비트코인 기반 펀드 '그레이스케일'이 비트코인 신규 채굴량의 100%가 넘는 매수세를 이어감에도 시세는 하락했다"면서 "이는 비트코인 고래들이 그들의 코인을 그레이스케일의 비트코인 투자신탁(GBTC) 매수자들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가격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습니다.

나스닥 '이말올' 부장 언제까지 힘쓸까


요즘 증권가, 특히 선물 투자자들 사이에선 '이말올'이란 용어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말아올린다'의 줄임말로 올 들어 코로나19 악재에도 거침없는 상승세를 보여준 미 증시, 특히 나스닥 시장을 빗대어 표현한 말입니다.

선물투자자들은 나스닥 지수가 하락하는 날이면 "걱정마, 이말올 부장님 곧 오신다" 식으로 농담을 던지기도 하죠.

이러한 '이말올' 현상은 아직까지 유효한 것으로 보입니다. 역대 최고점인 1만1000포인트를 찍은 나스닥100 지수는 이후 하루만에 1만400선까지 무너지며 위태로운 모습을 보였지만 결국 1만600선까지 반등하며 여력을 보여줬습니다.

이 같은 나스닥 시장의 움직임은 가상자산 투자자들에게도 중요한지표가 됐습니다. 지난 3월 대폭락 이후 비트코인 시세가 나스닥 시장과 유사하게 움직이며 커플링(동조) 현상을 보여 왔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자산 시장은 전세계 금융시장과 무관하게 움직여 ‘대체 자산’으로 부각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 발 폭락 이후 전통 금융시장, 특히 나스닥 선물지수와의 동조현상이 급격히 심화됐습니다.

나스닥 시장 상승세가 진정되고 하락장이 올 경우 가상자산 시장도 큰 영향을 받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다만 5월 이후 나스닥 시장의 랠리가 계속됐음에도 불구하고 비트코인 시세가 반응하지 않으면서 커플링 현상이 깨질 기미가 보이고 있습니다. 현재 비트코인 시세는 나스닥 시장의 하락에만 반응하는 '반쪽짜리 커플링' 현상이 나타나고 있으며, 이마저도 점차 영향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에 일부 전문가들은 주식시장으로 넘어갔던 투자자들이 다시 상승 여력이 남아있는 가상자산 시장으로 복귀할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과연 '이말올' 부장은 언제까지 힘을 발휘할까요. 집 나간 코인 투자자들은 다시 코인 시장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요.
[국내외 증권시장과 코인, 선물을 가리지 않는 적극적 성향의 개인투자자 '불개미'들이 주목하는 글로벌 금융 시장 이슈를 들여다봅니다.]

김산하 한경닷컴 기자 san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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