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이 사망한 지 열흘이 지난 가운데 박 시장이 생전에 추진했던 주요 정책이 벌써부터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 사수, 강남·북 균형 발전 등 박 시장이 주도한 ‘시정 철학’은 외부 압박에 좌초 위기다. 다섯 명의 부시장 체제 구축과 같은 굵직한 정책들도 제대로 시작조차 못하고 무산될 처지에 놓였다.
선장 잃은 서울시, 벌써부터 시정 '흔들'
19일 서울시 등에 따르면 민생경제특별위원회와 기후생태특별위원회 등 서울시가 도입하려던 특별위원회 설립이 백지화됐다. 서울시 관계자는 “특별위원회를 구성한다는 내용의 결재 문서가 박 시장에게 올라갔지만 결재하기 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 사실상 위원회 설립이 무산됐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지난 6일 ‘5부시장’ 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사전 단계로 특별위원회를 설치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박 시장은 김병관 전 국회의원을 민생경제 부시장으로,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을 기후환경 문제를 전담하는 부시장으로 앉혀 현재 3명의 부시장에 더해 5부시장 체제를 구축하려고 했다. 또 박 시장과 이태수 꽃동네대학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공동 위원장을 맡는 포스트코로나 기획위원회도 신설할 계획이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시장권한대행 체제에서 큰 폭의 직제 개편을 추진하긴 쉽지 않다”며 “국회에서 지방자치법이 개정되고 새로운 시장이 선출된 이후에나 조직 개편 여부를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가 박 시장 사망 후 외부 압박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것은 그린벨트 정책이다. 서울시는 박 시장의 철학을 유지하며 그린벨트를 사수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당·정·청에서 “해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서울시가 그린벨트 해제에 반대해도 국토교통부가 직권으로 해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시장이 강하게 주장하던 ‘개발이익 광역화’ 정책도 사실상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다. 박 시장은 1조7000억원에 달하는 서울 삼성동 현대자동차 통합 사옥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의 공공기여금을 강북과 나눠 써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국토부와 강남지역 자치구 등이 반대하는 상황에서 서울시 안팎에서는 박 시장의 부재로 동력을 잃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박 시장이 전국 최초로 추진하겠다던 공공의과대학 설립도 표류할 것이란 전망이다.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하는 의료업계를 설득하고 보건복지부, 교육부 등 관련 부처와의 협의를 거쳐야 하는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4차 추가경정예산 편성도 난항이 예상된다. 서울시는 박 시장 지시로 오는 8월 말 열리는 서울시의회 임시회 통과를 목표로 4차 추경안을 준비하고 있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앞서 세 차례에 걸친 추경 편성으로 예산을 한계치까지 끌어 쓴 상황에서 공격적인 4차 추경은 다소 부담스러운 상황”이라며 “기존 기조를 흔들림 없이 이어가겠지만 국·실별로 세부적인 사업 추진 현황을 점검할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박종관/하수정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