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금융산업의 패권을 놓고 ‘디지털 금융 삼국지’가 펼쳐졌다. 네이버 카카오 등 초대형 플랫폼을 무기로 금융 영토에 진격하는 ‘빅테크(대형 정보통신기업)’와 토스 뱅크샐러드 등 기존 금융서비스에 정보기술(IT)을 접목한 핀테크 업체가 금융 천하에 군림해온 ‘빅뱅크(대형 은행)’에 공세를 펴는 형국이다.

핀테크·빅테크 공습에 은행 ‘이중고’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네이버와 카카오는 각각 이르면 올 하반기와 내년 상반기를 목표로 보험사업을 준비 중이다. 네이버가 미래에셋대우에서 8000억원을 투자받아 설립한 금융 자회사인 네이버파이낸셜은 지난달 보험 자회사 NF보험서비스의 법인명을 등록했다. 지난달에는 네이버통장이라는 종합자산관리계좌(CMA) 상품을 출시하기도 했다.

카카오는 카카오뱅크와 카카오페이를 앞세워 ‘투 트랙’ 전략으로 금융시장을 잠식해나가고 있다. 카카오페이는 보험대리점(GA)업체 인바이유와 바로투자증권을 인수한 데 이어 독자 디지털보험사 설립을 추진 중이다.

한 대형 은행장은 “수년 전 은행장들이 모여 ‘우리가 힘을 모아 네이버, 카카오를 인수하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금융의 미래’를 그려본 것이다. 빅테크 공습이 가속화하며 분위기는 180도 바뀌었다. 그는 “여차하면 우리가 빅테크에 먹힐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전 금융권에 퍼지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자본의 산업자본 소유를 막는 ‘금산(은산)분리’ 원칙으로 대형 금융지주와 빅테크가 서로를 인수하는 건 불가능하다. 대신 빅테크는 정부의 핀테크 육성정책으로 느슨해진 규제를 틈타 금융 자회사를 하나둘 세우며 새로운 금융지주회사로 거듭나고 있다. 네이버파이낸셜과 카카오페이의 기업가치는 각각 2조7000억원, 4조원대로 평가된다. 증권가에서는 카카오페이의 기업가치를 7조원으로 추산하기도 한다. 대형 금융지주사 시가총액에 버금가는 규모다.

핀테크의 ‘혁신 서비스’는 잇달아 정책에 반영되며 ‘보편 금융 서비스’로 미래 금융을 그려나가고 있다. 주거래은행과 상관없이 무료로 가능한 토스의 간편 송금은 지난해 말 하나의 금융 앱으로 모든 은행 계좌를 조회·이체할 수 있는 오픈뱅킹으로 보편화됐다. 은행 증권 보험에 차례로 진출한 토스의 기업가치는 2조7000억원으로 국내 유일한 핀테크 유니콘기업(기업 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사)이다. 금융자산 조회와 소비성향 분석으로 큰 인기를 끈 뱅크샐러드의 자산관리 서비스는 마이데이터사업(본인신용정보관리업)으로 거듭났다.

‘플랫폼 전쟁’에 핀테크 직접 육성

다음달 시행되는 마이데이터사업은 ‘디지털금융지도’ 재편을 가속화할 전망이다. 마이데이터는 데이터의 소유권이 기업이 아니라 개인에게 있다는 개념에서 출발한다. 금융사는 개인이 원하는 플랫폼에 데이터를 내놔야 한다. ‘은행 간 경쟁’이던 오픈뱅킹과 달리 마이데이터는 ‘플랫폼 간 경쟁’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대형 금융지주사 임원은 “대형 플랫폼 위주로 금융이 재편되면 기존 금융사는 플랫폼에 상품을 공급하는 하도급업체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대형 금융사들은 빅테크에 맞서 대(對)핀테크 전략을 경쟁에서 육성으로 전환하고 있다. ‘은행 색깔이 옅은’ 플랫폼을 직접 키운다는 전략이다. 기업은행은 올 상반기에만 63개 스타트업을 육성했다. KB금융그룹도 지난 17일 스타트업 모집을 시작했다. 6대 주요 금융지주사와 은행이 스타트업 육성에 투자한 금액은 현재까지 1700여억원에 달한다.

핀테크에 투자하거나 공동 사업을 하기도 한다. 하나금융그룹은 16일 ‘초기 스타트업 경진대회’에서 선발된 6개 업체에 벤처캐피털 자회사 하나벤처스를 통해 30억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우리은행 베트남법인은 15일 핀투비와 제휴해 베트남에서 중소기업 매출채권 할인 서비스를 시작했다. 핀투비는 우리금융그룹이 디노랩 프로그램을 통해 육성한 핀테크업체다.

■ 빅테크 big tech

대형 정보기술(IT) 기업을 뜻하는 말이지만 국내 금융산업에서는 네이버와 카카오 등 온라인 플랫폼 제공 사업을 핵심으로 하다가 금융시장에 진출한 업체를 지칭하는 말로 주로 쓰인다. 송금과 결제뿐만 아니라 자산관리, 보험 판매 시장까지 진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송영찬/김대훈 기자 0full@hankyung.com